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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요리는 노동이다" | 요리사 박찬일 인터뷰

노동자로서의 요리사라는 측면이 있다. 통계는 정확히 모르지만 노동자 중에서 일용직 노동자 이외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요리사일 것이다. 분식집에서 떡볶이 볶는 아주머니도 요리사 아닌가.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30%가 넘는데, 그 자영업자 대부분이 요리사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의 문제, 노동자의 권리, 소득의 문제까지 다 얽혀 있는 측면에서 요리사를 봐야한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문제에서 소외되어 있다.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대세다. 언제부턴가 TV속 연예인의 자리를 셰프가 차지했다. 이제는 요리 프로그램을 넘어 예능, 다큐멘터리 주인공까지 셰프들이 꿰차고 있다. 그야말로 '셰프 전성시대'다. 그런데 이런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와 조금 다른 이유로 유명한 셰프가 있다. '글 쓰는 셰프' 박찬일이다. 훤칠한 외모를 하고도, 그는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쓴다. 저자로 이름을 올린 책도 20여 권에 달한다. 그의 글에는 항상 음식과 문화, 역사, 정치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다.

요리사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 그리고 음식 문화는 어떤 것일까. 셰프의 삶은 그가 일하는 이탈리안 식당의 이름처럼 꿈길 같기만 한 것일까. 궁금증을 가득 안고 박찬일 셰프를 만나기 위해 서교동 '로칸다 몽로(夢路)'를 찾았다. 하루의 영업 시작을 두 시간 앞둔 오후 4시, 벌써부터 접시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 요리사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로 작은 레스토랑 홀은 들썩이고 있었다.

'까탈스러운 완벽주의자'라는 소문 때문에 우선 호칭부터 정리하고 질문을 시작하기로 했다.

- '셰프'라는 말이 워낙 유행하다보니 오염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혹시 선호하는 호칭이 있나?

= 셰프라는 말은 프랑스 말로 부엌의 대장(chief of the kitchen)이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 주방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요리 실력이 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이 말을 요리사로 오해해서 사용했고, '파트 셰프,' '막내 셰프' 같은 말들이 생겨났다. 뭔가 세련된 느낌을 주는 말이 된 후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어감상 주방장이라는 말이 좋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셰프라고 부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그럼 '셰프님'이라고 부르면 되나?

= '셰프님'이라는 말이야말로 정말 이상하다. 주변에서 그렇게 부르니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호칭하지 말고 이야기하자.(웃음)

박찬일 셰프

- 노력을 해보겠다.(웃음) 글 쓰는 요리사로 알려져 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있나? 음식에 대한 글은 주로 맛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글을 쓰시는 것 같다.

= 사회적인 발언만 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었고(그의 전직은 잡지사 기자다) 요리사가 되고 나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글을 썼다. 월급은 적고 언제든지 실직 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글을 썼던 것이지, 무슨 발언을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청담동에 레스토랑을 냈을 때 영업이 잘 되지 않았나?

= 가게를 낸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였다. 한 번도 가게를 낸 적이 없다. 다들 오너 셰프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내가 책임을 지고 일을 하고 내 이름을 걸고 하니까 오너 셰프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이곳 몽로도 <문학과 지성사>가 주인이다. 나는 월급 받고 일한다. 이런 내용은 이야기해도 기사로 안 쓰더라.

- 문예창작과를 나와서 글쓰기를 병행하는 거라 생각했다.

=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것에는 쾌락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대개 매체에서 발주하는 글이다. 에세이 같은 글을 돈과 바꾸려고 쓰는 것이니 괴롭다.

물론 쓰다보면 즐거울 때는 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문인으로서의 욕망을 갖고 쓰는 건 아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 이른바 셰프 전성시대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셰프와 음식들이 예능 소재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 지금처럼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것도 좋다. 예능을 통해서 요리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또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만 나까지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소비하는 것도 대중들의 권리다. 무엇이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돈이 되니 미디어가 공급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춰지는 측면과는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다른 측면이란 무엇인가?

= 노동자로서의 요리사라는 측면이 있다. 통계는 정확히 모르지만 노동자 중에서 일용직 노동자 이외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요리사일 것이다. 분식집에서 떡볶이 볶는 아주머니도 요리사 아닌가.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30%가 넘는데, 그 자영업자 대부분이 요리사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의 문제, 노동자의 권리, 소득의 문제까지 다 얽혀 있는 측면에서 요리사를 봐야한다.

- 노동자로서의 요리사라...

=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문제에서 소외되어 있다. 셰프 유니온 없이 아주머니들이 개별적으로 조합에 가입되어 있거나, 특급호텔 위주로만 요리사들 조합이 있어서 조합원 숫자가 미미하다.

요리사들부터가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지 않는다. 새로 진입하는 요리사, 요리사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저임금 비숙련 요리사들은 더 그렇다. 아주머니들은 4대 보험 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대신 일당을 더 달라고 한다.

-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 사업장이 대부분 영세하니까 부도가 잘 나고, 사장의 양심에 따라 대우받게 된다. 돈을 떼이면 그만으로 알고, 3년 일해도 가게가 망해서 문 닫으면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쉽지 않더라.

조직화가 안 되어 있으니 선거 때 권리행사도 못한다. 택시 노동자 수는 요리사보다 훨씬 적지만 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 국회의원들이 온갖 공약을 한다. 요리사들의 경우는 그런 이야기를 요식업중앙회라는 단체에 가서 하는데, 업주 중심이라 요리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요리사가 너무 보호받지 못 하는 문제에 대해 누군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연예 오락으로 요리사가 인기를 얻는다고 해서 실제로 혜택을 받는 요리사가 몇이나 되겠나.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은 그대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라는 직업을 십 수년째 하고 계시다. 본인에게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는 어떠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괜찮다. 할 만한 직업인 것 같다. 요리를 하면 시간도 빨리 가고, 젊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좋다. 음식을 만들 때 과학적이고 숙련된 작업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글은 피드백이 느리지만 음식은 손님 입에 딱 들어가서 승부를 내지 않나. 만약 내가 철강회사에서 영업을 한다면 내 손을 거친 쇠가 건물이 되어 올라가도 보람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음식은 누가 먹었는지 바로 알고, 20분 지나면 접시가 비었는지 알 수 있다. 손님들은 음식이 맛 없으면 안 오지 않나. 그런 특징이 상대적으로 즐겁다.

레스토랑 로칸다 몽로

- 창의적인 메뉴가 많다.

= 이런 얘기는 좀 웃기지만, 내가 똑같은 음식을 하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메뉴를 다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전통을 물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0년 된 식당의 7대손이 아버지가 했던 걸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 목표라고 해도 중요한 것이고, 아버지 음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대로 이어가는 것도 역사의 일부이지만,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역사이지 않은가.

- 그렇다면 몽로의 음식에는 어떤 역사적 의미를 담으려고 하고 있나?

= 내 음식에 역사성까지 담아보진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은 담으려 한다. 대자본이 생산하는 재료는 안 쓰겠다거나, 닭은 협동조합이 생산하는 닭만 쓰겠다고 한다면 이런 게 정치성이다. 서양에서 사오는 육계의 기준이 아닌 우리나라 닭으로만 팔겠다는 건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런 걸 내가 깊이 있게 고민해보거나 실천해 보지는 못 했지만, 거기에 정체성이 있으면 담보해보려고 한다.

- 몽로의 치킨요리가 유명한 건 그런 고민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의미를 담고 있는 또 다른 요리가 있나?

= 소 내장요리를 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양식당에서는 원래 소 내장요리를 하지 않는다. 예전에 귀족들과 왕족들, 부자들이 소고기 등심스테이크를 먹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버린 내장을 주워서 요리해 먹었다. 그러면서 맛있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조리법이 개발된 것이다. 내가 그 조리법을 배워서 한국에 와서 팔 때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첫째, '서양요리는 고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서민요리를 우리도 맛 볼 즐거움을 나눕시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 내장요리가 서양에도 있다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창작요리들에는 내가 독점적인 요리를 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는다는 자본주의적 욕망도 담겨 있다. 이처럼 요리 하나에도 많은 것이 결합된다.

- 그렇게 보면 음식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역사가 있는 것 같다.

= 4.3항쟁 터지고 나서 그 땅에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또 제주도에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일본으로 넘어간 제주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징용 끌려갔다 한국에 못 오고 일본에 눌러 앉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구성했다. 그 사람들이 일본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불고기와 소 내장요리를 파는 것이었다. 원래 고기 먹는 법을 몰랐던 일본인들에게 한국식 불고기가 전파되어 일본의 야끼니꾸가 되었고, 일본인들이 냄새나서 버렸던 내장을 얻어 와서 조리해서 판 내장요리가 일본의 주요리가 되었다. 일본의 야끼니꾸와 내장요리는 지금 엄청 비싼 요리들이다.

-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요리를 카피(copy)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표절이 한창 사회적 문제가 됐는데, 요리 표절에 따른 문제는 없나?

=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내 요리를 베끼는 곳도 있다. 출처를 안 밝히고 베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쩌겠나. 요리는 저작권 개념이 훨씬 덜하다. 어찌 보면 우리는 계속 윗세대를 표절하고 있지 않나. 예술로서의 음식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당연히 저작권 문제가 두드러질 것이다.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서양 음식을 그대로 베끼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 말도 안 넣으면 속상하다. 내가 보면 저건 어떤 것을 베꼈는지 다 안다. 외국의 유명한 셰프 것을 베꼈다가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면 얼마나 창피하겠나. 외국에서는 음식표절도 문제가 되지만, 문학과 같은 장르만큼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알아서들 신경 써야 하는 문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모방하게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 <백년 식당>이라는 책을 냈다. 우리나라에 그런 식당이 없었고, 앞으로도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 우리가 식당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에 별로 의미를 안 가졌다. 식당 뿐 아니라 건축물도 마찬가지로 다 때려 부쉈다. 오죽하면 청계천 같은 역사적 장소를 다 시멘트로 바르지 않았나. 왕조들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것도 쓰고 잘 기록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왕조가 몰락한 이후에는 정부나 민간이나 그런 기록 문화가 없는 것 같다.

오래된 식당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근대적 식당을 갖게 된 것이 일본보다 늦었고, 정치적 격변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실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아서 잘 보존하고 기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구한말, 일제침략, 한국전쟁과 같은 정치격변기가 너무 많아서 식당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7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밥집해서 뭐하나, 때려치우고 다른 것 하자' 이런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분야도 똑같다. 60년대 영화 호황기 때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재활용하고 버리고 이랬다고 하더라.

- 우리나라의 대표음식이라고 할까. 한식세계화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했지만,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음식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 한식세계화라는 발상 자체를 거부한다. 왜 우리 것을 내놓아야 하나. 그 사람들이 찾아서 먹다보면 무엇이 맛있는지, 무엇이 국제적인 감각에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외국인이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음식을 먹거나 외국 현지에서 먹고, 그것이 자체적으로 분화 확장되고 진통을 겪으면서 성장하든지 쇠퇴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적으로 어떤 것을 해줄 게 있다면, 그것을 보고 즐거워해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

- 정부의 한식세계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인가?

= 그렇다. 정부가 한식세계화 추진단을 만들어 세금 쓰는 것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 막아야 한다. 청문회를 열어 책임자를 구속하고 예산낭비에 눈감은 공무원은 징계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하나도 안 했다. 청문회를 열자고 말만 하고 열지 않았다.

한식세계화로 인한 수많은 오류의 발단이 거기에 있다. 이것은 4대강 문제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인식이 없다. 야당도 이해가 굉장히 부족하다. 한식세계화라고 하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방식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식세계화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못한다. 세계화에는 반대하는 진보 정치인들이 왜 한식 세계화는 찬성하나?

-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3년 했는데, 해외에서 활동하는 셰프들이 우리나라 재료를 쓰는 것도 한식의 세계화 아닐까?

= 그렇다. 한식의 세계화란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정부에서 해외로 셰프 지망생을 송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완전 엉터리다. 인위적으로 해외에 송출해서 거기에서 성장하는 요리사는 없다. 한식이 인기가 있으면 외국에서 알아서 오라고 하고 월급도 많이 주니 자연스럽게 가게 된다. 지금도 이미 한식이 인기를 끌면서 조금씩 가고 있다. 한식세계화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다.

- 해외에서 한식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봐야 할까?

= 한식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문화적 수준, 그리고 국제적 틀 안에서의 보편적인 맛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홍보가 너무 안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보라는 말 자체가 관제적 의미를 갖고 있어서 안 쓰고 싶지만, 어쨌든 중국요리와 일본요리의 천만분의 1도 홍보가 안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너무 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알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앞으로는 K-POP 같은 문화적 여파로 인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먹는 장면이 나오면 그 음식이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산낙지도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 유명해졌다. 앞으로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기폭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하는 요리사들이 해외로 나가면 된다. 꼭 한식 요리사가 나갈 필요도 없다. 중식에 한식 섞으면 왜 안 되나. 전통한식을 갖고 나가야 한다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과 토론할 의지가 있다. 나는 이태리식+한식, 또는 한식+이태리식도 가능하다고 본다.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앞뒤가 바뀐다. 그리고 한+중+일+이식, 이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 걸 갖고 외국 나가서 하면 된다. 이런 건 퓨전요리가 아니다. 상업적인 요리를 퓨전요리라 한다면 모든 요리는 다 퓨전이다. 프랑스 요리에도 간장을 쓰는데 그럼 프랑스 요리가 아닌가? 가지고 나가서 하면 된다. 아무래도 한국인이면 한국적 정체성을 요리에 더 드러내게 될 것이다. 어디에 중심을 두는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현지에 식당을 내고 싶은 사람에게 정치•사회적인 툴을 개발해 공급해주면 좋을 것 같다. 한식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교포 중심의 극히 미미한 규모인데 앞으로 10배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일 것 같다.

- 한식세계화가 이뤄지면 좋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 한국이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면 우리나라에 나쁜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묻는다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된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냐 묻는다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안 해봤다.

그걸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있다. 한식을 외국인이 모른다고 우리 삶이 치명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한식세계화를 국익이라는 모호한 말로 포장하는 게 난 이상했다. 우리나라는 전제주의, 전체주의의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다.

- 최근 해외파 셰프와 국내파 셰프의 갈등이 미디어에서 많이 부각되고 있다.

= 그런 갈등은 없다. 나는 그런 논쟁자체가 허무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싸움이 붙으면 미디어가 재미있기 때문에 부추기는 것 같다. 셰프를 꿈꾸는 사람이 외국에 나가서 나쁠 건 없고, 갈 수 있다면 가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 나가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할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는 좀 복잡하다. 예를 들어 요리에는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이 반영되기도 한다. 이태리식을 하는데 이태리 가서 공부했던 게 뭐가 나쁘겠나. 그런데 거기에 이상한 국수주의가 반영이 되면, 대중들을 선동하는 건 외국 안 나가는 쪽이 된다. 물론 외국에 가서 배우지도 않고 돈만 쓰고 오는 사람들은 문제이지만, 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 사람들이 진짜 열심히 하고 거기서 인정받는다고 하더라. 이처럼 최근에는 외국에서 한국요리사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엉망으로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도 해외파라며 거들먹거리고 그러는데, 그런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해외파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 미디어가 부추기는 또 하나의 싸움이 설탕이나 MSG에 대한 논쟁인 것 같다.

= 그것은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이고, 분야별로 나눠서 설명해야 한다. 산업의 측면에서 보느냐 개인의 취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면을 하나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의 한식조리사 실기 시험은 레시피(요리법)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잡채 레시피에는 설탕 몇 그램, 간장 몇 그램, 이렇게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 한식에 설탕 안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 있나. 이미 설탕을 빼고 한식을 말할 수 없다. 매실청을 넣더라도 매실청 자체에 설탕이 1:1로 들어가 있다. 설탕을 안 쓰면 물엿을 쓰는데 그것도 당이다. 단맛이 안 들어간 한식은 이미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설탕이 들어가면 한식이 아닌가? 백종원이 설탕을 넣어서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그가 나쁜 사람인가? 그건 전혀 다른 것이다. 백종원의 레시피 자체가 굉장히 훌륭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 않나. 레시피가 뻔한 음식이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먹어보면 그게 맛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먹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생각 속에 수용이 된다. 그게 궁중요리니, 철학이니 하는 게 아닌 걸 안다. 그건 그 레시피로서 합당한 것이다.

박찬일 셰프 제공

- '음식은 쾌락'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 그렇다. 백종원 음식은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높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지방이 많이 들어가고, 설탕이 들어가고, 미원이 들어가면 맛있다. 그건 쾌락을 제공해주는 것이고, 몸이 그 감칠맛에 반응을 한다. 그건 훈련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모유에 설탕을 넣어서 애를 줘봐라. 환장을 한다. 우리의 미각은 그렇게 타고난 것이다. 흰 쌀밥도 씹으면 당의 단맛이 난다. 어떤 당이냐가 다를 뿐이지 당인 건 똑같다. 그걸 과학으로 안다면 쾌락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요리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 내가 쓰는 글과 발언에 여러 가지 측면이 다 드러나 있다. 나는 한 마디로 정의하지 않는다. 슬로푸드(slow food, 조리나 먹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에 철저히 동의하거나 반대하지도 않고 사안별로 다르게 보는 것도 많아서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백종원씨처럼 '달고 맛있으면 그만이쥬'라고 보지는 않는다.

- 백종원 셰프의 요리에는 철학이 없다고 봐야 하나.

= 아니다. 철학이 무엇인가. 일관된 자기 주관이 있다면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굉장히 높고 거창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그건 철학인 것이다.

-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 '어른이 되는 맛'이라고 표현한 콩나물국밥에 대한 글이 많이 회자된 것 같다.

= 다 좋아한다. 한국 사람이니 한식을 자주 먹지만, 좋아한다는 것은 상황마다 감정이 다른 것 같다. 무겁고 격식에 억눌리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 확실하다. 그 외의 음식은 다 좋아한다. 정서적인 부분의 음식을 많이 생각한다. 친구랑 먹는 음식, 추억이 있는 음식, 그런 것들이 내가 늘 해왔던 이야기다.

- 인터뷰 전에 글을 보면서 굉장히 까다로울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 까다롭다. 성의 없는 음식, 돈 벌려는 생각이 노골적인 음식, 교만한 음식, 베낀 음식, 그런 거 다 싫어한다. 시건방진 음식 같은 거.

- 시건방진 음식은 어떤 것인가?

= '너 한번 먹어봐' 하는 시건방진 음식이 있다. 음식엔 만드는 사람의 기운이 다 반영된다. 보통 어린 요리사들이 그러는데, 나는 요리사이기도 하고 나이도 좀 있으니 그런 것들이 잘 보인다. 다니다보면 남겨먹으려고 발악한 음식은 딱 보이지 않나.

뷔페식당을 내가 안 가는 이유가 있다. 남겨먹으려고 잔머리 굴린 게 다 보인다. 근데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 안 가는 것이지,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뷔페를 좋아하니까 공급하는 것이고, 공급하려면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 내가 한다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뷔페음식은 나쁜 음식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갖고 있는 숙명인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다 보니 결혼식 가서 음식 먹는 걸 너무 싫어한다. 결혼식에 가기 전에 미리 밥을 먹거나 참고 나와서 빨리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 메뉴를 짠 사람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보고 싶지 않다.

- 우리나라는 무슨 직업을 가지든 결국은 치킨집을 하게 된다는 '기승전 치킨집'이란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사회경제적 여건 때문에 명예퇴직 후 식당 창업을 하거나 젊어서부터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서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보면 삶에 치여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기 어렵고, 때로는 성의 없는 요리도 내놓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음식문화도 하향평준화 되지 않을까?

= 내가 그들에게 정답을 줄 수는 없지만, 힘들수록 참고 기술적으로 숙련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충 배우면 안 된다. 그리고 단순한 요리에 집중해야 한다. 복잡한 요리를 할수록 오래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단품 하나를 잘 해야 한다. 떡볶이 하나, 혹은 순대 하나를 최대한 기술적으로 프로에 준하게 잘 배워야 한다. 품목마다 다르겠지만, 비교적 손쉬운 단품이라도 최소 1년은 직접 현장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투자할수록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그래야 프랜차이즈의 덫을 피해갈 수 있다. 프랜차이즈는 성공확률이 높지만 이익률은 떨어진다. 열심히 노력하고 더 오래 연구를 하라. 치킨 하나를 하더라도 치킨 브랜드를 찾지 말고 치킨이 무엇인지를 찾아라.

- 몽로에서 요리를 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행복한가?

= 행복하지 않다. 생존하려고 일하는데 뭐가 행복하겠나. 즐거움은 다른 데에서 찾는다. 아침에 와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끝나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일로써 즐겁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다 뻥이거나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 그런 느낌이 올 뿐이지, 인생은 고행이고 일이 고(苦)의 핵심인데 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새벽에 나와서 일하는 게 뭐가 즐겁겠나. 놀고먹는 게 즐겁지, 일은 하나도 안 즐겁다. 이 내용은 꼭 써 달라.

- 그래도 일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 냉정하게 직시해보면, 일은 행복하면 안 된다. 일이 행복해지면 종교가 된다. 그러면 남에게 강요를 한다. 행복이 있으니 하루에 20시간 일하라고 한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박정희시대의 산물이다.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는 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일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절대 행복하다고 안 한다. EBS의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은 힘들어 죽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체험하지 않고 쓰면 '쇳물이 뻘겋게 녹을 때 도공의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번진다'는 식의 말을 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저거 만들었는데 깨지면 어쩌지, 이번에 못 팔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을 한다. '기계작업을 거부하고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래야 비싸게 팔 수 있어서 하는 것이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기계로 해서 비싸게 팔 수 있으면 기계로 만들지 미쳤다고 발로 돌리겠나. 어쨌든 일은 괴로운 것이고 그래야 정석이다.

선진국의 핵심은 일을 덜 하는 데에 있다. '일을 덜 하고도 행복하다'가 아니라 '일을 덜 하니까 행복'한 것이다. 스웨덴 요리사는 안 힘든가? 스웨덴 장거리 트럭운전사는 안 힘든가? 그들도 힘들다. 하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8시간 쉴 때 그들은 16시간 쉬니깐 행복한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애들하고 놀고, 와이프와 여행 가고, 그런데 나라에서 놀라고 돈을 더 주니 행복하다.

- 마지막 질문이다. 꿈이 있다면?

= 좀 놀고 싶다. 난 통계적으로 길면 30년, 짧으면 10년 정도 더 살 것이다. 많이 안 남았다. 말년은 병마에 시달리고, 돈도 별로 없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슬픔이 많은 시기일 것 같다. 그 기간을 빼면 남은 인생은 더 짧다. 돈 버는 행위를 덜 해야 한다. 요리를 통해서만 먹고 살 수 있으면,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돈을 그렇게 벌지도 못했다. 집도 없다. 노후준비도 전혀 안 되어 있다. 그런데 일을 해도 저축을 못 하니 답답하다.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간 후에 가족은 어떻게 하나. 그러니 절망스럽다.

그래서 내게 꿈이 있다면 돈을 좀 버는 것,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일을 좀 덜 하는 것이다. 이런 실현되기 힘든 꿈을 꾸고 있으니 미치는 것이다.

셰프 전성시대에 셰프라 불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박찬일 셰프. 너무나 솔직해서, 또 정치적이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인터뷰였다. 그의 글을 보며 '치유'의 느낌을 받았던 독자들이라면 이번 인터뷰를 보면서 필자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이크업을 걷어낸 누군가의 얼굴을 볼 때 느끼는 묘한 쾌감과 실망, 혹은 공감도 있게 마련이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까칠한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한 입 베어 물면 그가 고민하는 정치와 사회가 입안에서 알싸하게 씹힐 것 같지만(그의 책 <백년식당>에서 "한 입 베어 물면 한 시대가 입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라고 한 말을 차용해봤다), 사실 그의 요리는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맛있다. 그가 오너 셰프가 되면 실험적이고 맛있는 요리가 더 많이 메뉴에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인터뷰 및 정리: 심나리, 성치훈, 최해선 선임연구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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