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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춰 팥빙수를!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

타에코(카모메 식당의 주인인 바로 그녀! 고바야시 사토시)가 커다란 짐을 질질 끌며 어딘진 모르지만 아무튼 작은 남쪽의 섬(으로 보이는 곳. 실제는 요론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하마다를 찾아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혼자만의 휴식과 관광을 예상했던 이번 여행이 타에코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들과 엮이면서 그녀는 이곳 사람들만의 사색하기를 일컫는 '젖어들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 박우현
  • 입력 2015.07.20 11:16
  • 수정 2016.07.20 14:12

영화 <안경>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처럼 이른바 힐링 시네마 계열의 작품으로 슬로우 무비라고도 불린다. 대개의 영화처럼 뭔가를 이루려는 주인공이 등장하여 고난과 역경을 딛고 결국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공시키는 극적 드라마나 스펙타클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마치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키나와 요론섬이 일본 본토에서 떨어진 거리만큼.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따분할 여지가 있지만 한 번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에코(카모메 식당의 주인인 바로 그녀! 고바야시 사토시)가 커다란 짐을 질질 끌며 어딘진 모르지만 아무튼 작은 남쪽의 섬(으로 보이는 곳. 실제는 요론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하마다를 찾아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혼자만의 휴식과 관광을 예상했던 이번 여행이 타에코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들과 엮이면서 그녀는 이곳 사람들만의 사색하기를 일컫는 '젖어들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느꼈던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마치 안경을 처음 끼면 불편하고 어질어질한 어색한 광경이 시간이 지나면 편해지는 것처럼. 이 영화는 결국 사색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인생이지만 왠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잠시 멈춰 '젖어들기'를 해보라는 거다. 젖어들기의 대상이 낚시든 팥빙수든 맥주든 체조든 상관없다. 이런 측면에서 <안경>은 영화 속 유지가 그려준 '약도'가 핵심이며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이 약도 한 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슬슬 불안해지는 시기에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마사코가 팥을 삶을 때처럼 말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한국에 왔을 때, 관객들이 왜 영화의 제목이 안경이냐고 묻자 감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마 오기가미 감독은 관객들이 저마다 느끼는 생각들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어차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설정이겠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은 안경을 썼다. 그런데 안경을 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타에코가 유일하다. 그녀가 잠잘 때와 거의 마지막에서 바람에 안경이 날아갈 때. 그런데 이렇게 안경이 없을 때 그녀는 가장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즉, '안경'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틀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프레임에 스스로 속박 당한다. 그리고 이 속박으로부터의 벗어나기가 바로 '젖어들기'다. 오기가미 감독은 전작 <카모메 식당>에선 이러한 속박을 짐으로 표현했었다. 마사코가 잃어버렸고 동시에 찾으려고 했던 그 여행 가방 말이다. 재밌는 건 <안경>에선 거꾸로 마사코가 타에코(카모메에선 사치코)에게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눈짓한다. 게다가 타에코가 처음 하마다 게스트하우스에 왔을 때도 유지는 그녀의 가방을 방치했었고. 이처럼 <안경>은 당신이 짐을 내려놓고 함께 식탁에서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팥빙수도 먹기를 바란다. <카모메 식당>의 시나몬 롤이 여기선 팥빙수인 셈이다. 자, 당신의 이번 여름 휴가, 팥빙수와 맥주에 흠뻑 젖어들기 바란다! (언제 우연히 만나면 함께 메르시 체조라도 합시다.ㅎ)

*젖어들다: たそがれる[黄昏れる] 원뜻은 황혼 때가 되다. 저녁때가 되다.지만 옛날엔 저녁때가 되면 저 사람이 누군지 어두워 잘 보이지 않기에 누굴까하고 생각을 하는데서, 생각-->'사색'이란 의미로 변용되었고 이걸 '젖어들다'로 의역한 것이라 한다. 번역이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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