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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폐단 : 살아남아라 후죠시

'후죠시인 걸 아웃팅 당해서 일반인들이 나를 차별할 것이다'라는 단어 조합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자체가 진짜 사회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자신의 의지 없이 아웃팅을 당해서 사회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친족에게서 자살을 종용 당하는 일까지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는 짓이다.

오노 요코는 1962년, "나는 인류 역사에서 첫 번째로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그가 무엇을 느꼈든지 간에, 나는 그가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었다는 점을 흥미롭게 여긴다"고 말했다. 한국 후죠시(보이즈 러브를 그린 창작물을 좋아하는 여성) 역사에서 가장 최초로, "정부가, 일반인들이 후죠들을 핍박하는 미래를 보았다"며 각종 불필요한 '죄의식'을 심어준 어딘가의 그들에게 나는 조용히 중지를 세우겠다.

2차 창작 BL을 둘러싼 한국의 성인 동인문화는 언제부터인가 하등 쓸모가 없는 길트립(guilt-trip, 타인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말) '고나리(관리의 오타, 특정 대상이나 행동을 관리하듯 하는 행위를 비꼬는 말)'들과 함께 달려왔다. 성인 여덕이 주축이 되는 익명 사이트와 많은 후죠시들이 터를 잡고 있는 '트위터'를 자궁으로 삼아, 뛰어난 망상력을 먹이로하여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키운 관습을 압축해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1. 다른 이가 그린 작품을 차용해 2. 윤리적이지 못한 부도덕한 그림을 그리며 그것을 소비하는 집단. 3. 이런 남들이 보기 숭한 행위가 혹시라도 법적 규제를 받을 위험이 있으니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금하고 외부인들에 일체의 공개를 금한다.'

후죠시의 최대 장점은 망상력이지만, 최대 단점 또한 망상력에 있다. 특히 '윤리와 도덕과 법'에 대한 과대망상을 향해 이들이 하나의 군집을 이루어 힘을 보탤 때,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시궁창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망상은 후죠시들 사이에 폭군처럼 군림해왔는데 현재까지도 그 영향 아래서 벗어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2014년 11월, '실버베어피버'의 두 번째 온리전(해당 장르만 취급하는 행사) 취소를 알리는 공지문에서 주최자는 취소 이유를 밝혔다. "1회 행사는 성인행사임에도 청소년회관에서 열렸으며, 대관을 위해 대관처에는 '만화교류회'라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온리전이 무산된다고 하면 참가인원이 적거나 대관처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예상하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주최자는 "청소년에게 행사 정보가 퍼지는 등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하니 "(동인이 원하는 수위의) 성인물이 합법화 되지 않은 이 대한민국에서" 실버베어피버 온리전은 열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동인이 무엇인지, 동인행사가 무엇인지 모두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의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멘탈의 빤스를 종이 위에 해금하는 것이 목적인 동인문화에서 윤리의 부재를 찾고 그로 인해 생길 법적문제를 이유로 길트립을 시전하는 것이 주최 측이라니. 미성년자에게 정보가 새어나가 그들이 성인의 은밀한 잔치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사서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BL동인지를 보는 이유는, 작가의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보기 위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동인지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판타지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다. BL동인지는 도덕과 윤리까지 대동해야 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나 수위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고만고만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미지들로 채워졌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군사기밀을 팔거나 증권조작을 하다 양심선언을 하는 내부자처럼 비장한 공지글을 올렸는지 알 길이 없다.

실버베어피버 온리전 취소는, '도덕과 윤리와 법의 수호자들'이 자신이 발을 담고 있는 동인문화에 어떤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이를 이용해 타인에게 어떤 길트립을 시전하게 되는지가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사건과 함께 열린 다양한 키보드 배틀을 지켜본 3달이 나에게 공포감을 조성한 이유는, 이러한 사고관을 지닌 사람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사안을 가진 크고 작은 싸움을 하루이틀 본 것이 아니지만, '논쟁' 씩이나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은 2000년 하고도 15년이나 지난 오늘이다. 소설가 김애란의 『비행운』에서 주인공이 제자를 보고 '너는 자라 고작 내가 되겠지'라고 했다면, 후죠시들은 '너... 내가 되라!!'며 양지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제 6회 케이크 스퀘어 홍보 페이지, - 출처 케이크 스퀘어

1월 11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 5회 케이크스퀘어는 폐쇄적인 입장인 코믹월드나 동네페스타와는 다르게 언론의 취재를 허락했다. 이번 행사에 대한 기사는 라비린시아 2X'라는 게임 출시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와 기타 게임매체를 제외하고 뉴시스, 이데일리, 뉴스1, 연합뉴스, 세계일보, 파이낸셜뉴스, 위키트리, 충청매일, 미디어스에 게재됐다. 케이크스퀘어는 "성적인 주제를 불법이나 마찬가지인 2차 창작을 통해 다루는 동인문화의 한 부분을 언론노출과 담론화를 통해 일반인에게 노출시키고, 음지에 있고 싶은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다", "누구 맘대로 후죠시 대표인 척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우릴 관찰하겠다는 거냐"며 집중 타깃이 되었다. '잡지 후조' 발간 소식 이후 해당 매체에 떨어지는 후죠시들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후죠시들이 프레스 매스미디어/언론매체의 존재를 싫어하는 것에는 일전에 있었던 국민일보의 동인문화에 대한 왜곡기사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이번의 언론보도는 친절하게도 동인행사를 단순한 창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만화 행사 정도로 비추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은 잦아들지 않았다. '물 위로 끌어올리는 순간, 차별과 배척과 핍박의 대상이 될 터인데, 언론을 막지는 못할지언정 프리 프레스를 내세웠다. 보도된 기사들에 불특정 다수의 얼굴이 깨알같이 찍히긴 하였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도 않은 채로 공개됐다. 동인들의 사생활과 초상권을 침해했음에도 앞으로도 프레스를 금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얼굴이 나가버렸고 이것이 일터에 알려지면 어찌할 것'이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모자이크가 들어가 있는 경우에 더 화를 내야 마땅하다. 언론에서의 모자이크는 좋지 않은 일로 언론에 공개되어 사생활을 보호해 줘야만 하거나 범죄자일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크스퀘어의 기사가 올라간 언론사들은 모두 부모님이나 사회인들의 관심 밖인 몇 인터넷 언론매체들이다.

후죠시와 덕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일반인은 관심이 없는 기사에 흥미조차 생기지 않으며 실수로라도 클릭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속성이다. 흥미가 생기는 쪽은 이미 덕후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데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 그 세계에 대해 몰랐을 뿐이라는 것. 자신이 관심 없는 분야의 기사를 굳이 클릭해서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깨알 같은 군중 샷에서 혹시라도 자신이 아는 얼굴을 발견할, 그런 덕후 아닌 일반인은 없다. 덧붙이자면 언론매체의 기사에 쓰인 보도목적의 보도사진, 그것도 공공행사 등에서의 군중에게는 초상권이 성립되지 않는다.

2차 창작이 불법이기 때문에 언론에 알려지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선, 모든 법적 문제는 비공식이 공식을 전유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에 일어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의 동인계는 일본처럼 세금신고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괜한 김칫국을 마시지 않아도 좋다. 사실상 이런 대기업들은 일반인들의 지갑을 터는 것보다 오타쿠의 지갑을 터는 쪽이 더 편하고 쉬우며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안 보이는 척을 해주는 것이다. 대기업과 사법기관들은 이러한 뻔히 보이는 시장도 못 보고 지나칠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예매를 하려고 검색창에 엑스맨 퍼스트클래스라고 치기만 해도 이미지 검색에 동인짤이 공식짤과 나란히 검색된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코믹월드나 기타 이벤트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교류와 소통을 인터넷 공간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조가 구덩이에 머리를 처박는다고 타조가 없어진다고 우기는 것처럼 웃기는 일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민일보에 실린 내부고발자가 쓴 기사 때문에 다들 그렇게 질려하는 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후죠시들은 자신들이 아마존의 조에족 같은 희소성을 가지며 만약 대중에게 노출이 된다면 '아마존의 눈물'에 육박하는 그런 관심(하지만 마이너스적인)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곤 한다. 후죠시의 문화란 일반인들에겐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의 명장면 중 하나인 '명함대결'처럼 평생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엔진이라고는 네이버 외엔 존재 하는지도 모르며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사찰을 해봤자 정말 실제로 아는 친구의 카스를 그냥 들어가기만 할 뿐, 정말 열심히 현실을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약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같은 후죠시다. 많은 1차벨(순수창작) 행사들과 2차 창작 온리전 등의 홈페이지와 대관처 등은 내부자의 고발로 인해 사라졌다. 그 중에 한 번이라도 일반인이 소음이나 쓰레기 투기 이외의 문제를 들어 취소되거나 백지화가 된 적은 없었다.

일반 대중들로부터 핍박과 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부터, 사회에서 몰이해와 부조리로 인해 실제로 차별받고 핍박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 할 망상이다. '후죠시인 걸 아웃팅 당해서 일반인들이 나를 차별할 것이다'라는 단어 조합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자체가 진짜 사회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자신의 의지 없이 아웃팅을 당해서 사회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친족에게서 자살을 종용당하는 일까지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는 짓이다. 만약 정말로 이까짓 동인지 좀 그렸다고 사회적으로 차별과 배척을 당한다면 우리는 사회인으로서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맞서야 한다. 데즈카 오사무가 처음으로 PTA(학부모 교사 연합회)에 대항해 맞섰던 것처럼. 그러지는 못할망정, 사회에서 일진짓을 당할 것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조용히 물 밑에서 자체적으로 검열을 하며 살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작 사법기관에 끌려갈 위험이 있는 중국의 후죠시들은 아무리 후죠시들이 잡혀간다는 기사들이 떠도 꿋꿋하게 고추에 김칠(모자이크) 하나 하지 않은 동인지들을 당당하게 찍어내고 있다.

'한국은 해외 야동사이트 막겠다고 정부부처와 통신사가 협력해서 사이트를 하나하나 다 막는 나라'지만 내부자 고발이 없는 한, 만화교류행사로 좋게 포장한 우리의 문화가 까발려질 일은 없다. 까발려진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응당 자위행위를 하고 포르노를 보니 그 이상의 쪽을 당할 일이 없는 평범한 성인의 취미일 뿐이다. 또한 정부나 사법기관이 2차원 처녀청년막을 보호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할 정도의 디테일에 신경 쓸 정신적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일본과는 다르다. 19금 동인지를 제작한다거나 이러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남들에게 들켜 패가망신 할 확률보다는, 임대차보호법을 숙지하지 못해 패가망신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2차 창작 동인지란 원작자가 있는 작품의 캐릭터들을 차용해 캐주얼한 개그 망상에서부터 섹스와 신체절단까지 다종다양한 취양의 스펙트럼을 반영하는 그릇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성적 표현의 특성상 '아프신 분들'이 '아픈 논리'를 펼치기에 아주 좋은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연하게도 동인문화의 특성일 뿐인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한 자리에서, 그것도 유교사회와 만나 길트리퍼들이 주변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부리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동인문화의 해악을 굳이 꼽는다면 아마존우림의 삼림파괴다. 탑골공원 할아버지들의 시점으로 봤을 때에는 '하루 빨리 결혼을 하여 신선하고 젊은 자궁에 아기를 만들어 온 세상을 '한국인'으로 뒤덮지는 못할지언정 어디 여자가 되서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며 멘탈의 딸이나 치나!'를 들 수 있겠다. 벨동인지는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강철팬티보다도 효과적인 정조대니까. 오로지 최애캐와 최애캐의 섹스를 바라보며 현실과 인연을 끊고 수절하며 사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넘어선다는 것을 나는 경험상으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인구감소를 야기해 700년 이후 한국인이 멸종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든다면 난 아무 말 없이 진정성 넘치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일본에서 물 건너 온 취미문화와 반도의 유교적 가치관이 만나 탄생한 아름다운 시너지 효과는 '윤리와 도덕과 법의 이름으로' 퇴마/ 박멸/ 고나리를 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죽지 않고 미성년 후죠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제 좀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언제까지 후죠질을 하게 될까? 만약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하게 된다면, 후죠질은 어떤 형태를 띄게 될까. 어떤 발전을 이루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와중에 절대 다수의 가치관의 실체와 마주하고 이들 다수와 함께 하면 내리막길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은 참 쏠쏠한 것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부디 모두가 일상생활을 포기하면서도 좋아했던 이 물이 썩지 않고 잘 이어지길 바란다.

글_ 진챙총/테니스와 야오이로 육욕을 억누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예비작가 후죠시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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