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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면의 바다, 두 면의 시선 (화보)

사진집 <두 면의 바다>는 오직 사진 감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배려한 보기 드문 사진집이다. 장정이나 내지의 고급스러움 때문이 아닌 디자인과 사진의 배치로 독자들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시도가 참신하다. 이 사진집의 편집상의 가장 큰 특징은 표지에 책 제목이 없다는 것이다. 표지에 제목이 없는 책(사진집)은 적어도 나는 처음 보았다. 게다가 사진가의 이름조차 없다. 이 놀라운 시도의 의도는 분명하다. 독자들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나온 발상이다.

  • 박균호
  • 입력 2015.07.17 09:49
  • 수정 2016.07.17 14:12

한국사진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그 주제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입이 딱 벌어지는 멋진 풍경사진에 치중되어 있고, 풍경사진이 아니더라도 주름진 얼굴의 노인얼굴, 스님이나 동자승, 지역 축제가 주류를 차지하는데 그것마저도 대다수가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이 더 문제다. 불편하고, 보기에 멋지지 않은 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 그런 사진은 빛도 안나고 고행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로 등단하는데 그닥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30년간 줄곧 골목사진에 몰두한 김기찬 선생이나, 평생을 낮은 위치에서 고통 받는 서민들만 담은 최민식 선생 같은 사진작가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최민식 사진상의 수상자마저도 최민식 선생의 휴머니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겠는가? 이러한 우리 사진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박진영(Area Park)작가의 존재 가치는 각별하다. 현해탄을 오가며,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장면을 줄기차게, 충실하게 '기록'하는 외로운 길을 걷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출간된 그의 사진집 <두 면의 바다>는 시대를 기록하는 사관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박진영 작가의 렌즈로 기록한 우리 시대의 실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집 <두 면의 바다>는 오직 사진 감상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배려한 보기 드문 사진집이다. 장정이나 내지의 고급스러움 때문이 아닌 디자인과 사진의 배치로 독자들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시도가 참신하다. 이 사진집의 편집상의 가장 큰 특징은 표지에 책 제목이 없다는 것이다. 표지에 제목이 없는 책(사진집)은 적어도 나는 처음 보았다. 게다가 사진가의 이름조차 없다. 이 놀라운 시도의 의도는 분명하다. 독자들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나온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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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면의 바다> 표지

내용상 세 부분으로 구별되는 이 사진집의 사진의 배치도 독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했다. 첫 번째 부분의 한국에서 찍은 사진은 페이지의 하단에, 두 번째 부분인 '바다'사진은 중간 위치에, 그리고 일본에서 찍은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원전 피폭지역을 촬영한 세 번째 부분은 페이지의 상단에 위치시켜 전체적으로 사진이 '부양'하는 효과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중간에 있는 현해탄을 좀 더 '바다'스럽게 보이도록 의도했다. 심지어 페이지 번호도 독자들이 사진을 좀 더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고의적으로 잘려나간 것처럼 디자인한 편집자의 노력은 주도면밀하다.

사진집 <두 면의 바다>는 삼부작으로 나눠지는데, 그 첫 번째가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가 걸어온 도시와 개인, 권력과 국민, 개발과 가난 간의 갈등과 부조리를 조명한 부분이다. 1990년대 초반의 시위현장을 용감하게 담았는데, 비록 현장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눈을 이글거리면 노려보는 조폭을 정면에서 촬영한 컷은 박진영작가가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가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진집의 두 번째 부분인 시리즈 'Moving nuclear'는 두 달 동안 한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라카해협을 항해한 사진이다. 바다 밑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출한 오염수가 바다를 통해 지구상을 돌고 있고, 그 위로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해서 인간이 만든 물건들이 유통되고 있는 시대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마치 한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에 있는 현해탄처럼 그의 처지와도 비슷하다. 박진영 작가에게는 어머니의 품과 다름없는 바다를 통해 본 인간의 흔적을 다룬 사진들이다. <두 면의 바다>의 마지막 부분은 일본의 자연 재해를 다뤘다. 2011년 쓰나미가 남긴 잔해와 2014년 모두가 떠난 원전 피해지역인 후쿠시마 마을을 취재한 사진이 주를 이룬다.

쓰나미현장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것은 피사체와의 동질감을 중요시하는 박진영 작가로서는 당연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는데 잔해 더미에서 한 앨범을 발견한다. '카네코 마리'라는 여성이 그 앨범의 주인공이었는데 모두 사진을 취미로 삼았던 아버지가 딸을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아마도 쓰나미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측이 되었지만 박진영 작가는 그 여성을 찾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여성의 사진 일부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담겨있는데 결국 사진이라는 작업은 결코 인간을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매체이어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예전에 읽었던 박진영 작가의 작업 노트 중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진화를 거듭하는 디지털 기술이 싫다. 그리고 무엇이든 쉽게 찍고 쉽게 지워버리는 요즘 사람들의 세태도 싫다. 그것들은 작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찍을 때의 상황과 의미들을 머지않아 잊어버리게 만든다. 어릴 적 자전거 타기를 한 번 배우면 몇 십년을 안타다가 타도 잘 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이란 몸으로 체득한 것은 오래가지만 머리로 습득한 것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나는 수십명의 친구집 전화 번호를 외웠었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최근 사진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을 보며 표현하고 진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제발 내 몸이 느꼈던 것, 몸소 체험했던 것부터 다시 생각하고 시작해보자. 사실, 우리들은 필름을 넣으며 오늘 무엇을 찍게 될지도 모르는 그저 바보 같은 인간일 뿐이다.

박진영 사진집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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