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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사귄 친구들

북에서의 '고난의 행군'에 이은 '고난의 행군' 시즌 투는 그녀들의 실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코리아의 남쪽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긴 용기. 이건 내게 심히 부족한 자질이라서 그녀들이 존경스럽다. 한편 이질적인 문화와의 격돌로 상처받고 끙끙거리는 자녀들을 안쓰럽게 여기지만, 스스로 출구를 찾아내리라 믿고 있는 낙관주의 기질. 이것들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지켜온 이들만이 갖는 자신감일 것이다.

  • 정경아
  • 입력 2015.07.20 12:49
  • 수정 2016.07.20 14:12
ⓒgettyimagesbank

동네 친구 진영씨가 왔다. 올 여름 일박이일 캠프에 가서 만난 50대 중반의 그녀를 우리 집 저녁 밥상에 초대한 날이다. 손님은 한 분 더 있다. 50대 초반의 정미씨. 조금 먼 곳에 사는 그녀와는 올봄에 만났다. 손님끼리는 첫 만남이지만 그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것.

내 딸과 함께 밥상을 차린다. 메뉴는 마늘 간장 양념한 돼지등갈비, 도토리묵 무침, 인도식 향신료를 넣은 닭볶음, 두부깻잎전에 유부초밥이다. 하도 더워 국은 생략. 정미씨는 직접 만든 고추장 병 세 개와 매실장아찌 무침을 들고 왔다. 작년에 이온수로 담근 고추장보다 수돗물로 담근 올해 고추장이 훨씬 맛있다는 주장. 맛을 보니 정말 그렇다. 아니, 서울 수돗물 '아리수'가 이렇게나 우수하다는 건가. 놀랄 지경이다. 레드 와인 한 잔으로 우선 건배. 살아온 이야기가 시작된다. 코리아란 나라의 국적 두 개를 바꿔가며 살아온 여성들이니 두 사람 다 엄청난 스토리 텔러가 아니겠는가.

진영씨를 만난 건 한 여성단체가 주관한 '남북한여성 친구 되기 캠프'였다.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 거리인 한 캠프장, 북한 이탈주민 세 명과 남쪽 여성 세 명이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수다판을 벌인다. 세미나장과 찜질방을 넘나들며 여성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자니 친해질 수밖에 없는 포맷이랄까. 독일 통일 후 '진짜 통일'을 위해 기획 실행된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특징은 각자의 개인사를 30분 동안 발표하게 돼있다는 것.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부터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까지 거의 미니 자서전을 써야할 지경이었다. 각자 30분 간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까지 배정됐다. 그러니 서로 초면에 비교적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그때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초대한 자리라 진영씨에게 궁금한 게 많다. 남쪽으로 들어오기 전의 경위보다 막상 들어 온 후가 더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녀. 임대주택 지원이나 정착금 등 관계 당국의 배려로 한숨 돌리기 무섭게 들이닥친 문화 충격과 가족 갈등 때문이란다.

북쪽에서 잘 나갔던 남편은 남쪽 사회 적응에 힘들어 했다. 탈북 과정에서 다친 발등뼈의 감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장애로 이어진 게 결정적이었다. 상처받은 남편의 마음을 돌볼 만큼의 여유가 진영씨에겐 없었다. 생계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진 건 옷 만드는 기술과 손바느질 솜씨. 인사동의 한 가게에 손바느질로 만든 작품들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인기가 있었다. 요즘 주문은 줄어들었지만 직접 옷을 디자인해 자신도 입고 원하는 이에게 만들어 준다. 최신 패션 트렌드 파악을 위해 가끔 백화점을 돌아보기도 한다. 눈썰미가 뛰어나 한 번 본 옷은 웬만큼 다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실력파다. 그만큼 '명품 옷'이라는 물건들의 브랜드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진영씨의 딸은 20대 후반의 작가 지망생이다. 하루 온종일 집에 쳐박혀 블로그 글쓰기와 TV 오디션 프로그램 논평을 일삼는 딸이 못마땅한 진영씨. 역시 거의 온종일 집에서 시사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지내는 진영씨 남편도 진영씨의 맘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란다. 진영씨 남편은 "돈 벌어다 주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설설 기며 여자들을 떠받드는" 남쪽 풍조를 많이 싫어한다나. 게다가 북한 이탈 여성들이 남쪽 여성들을 부러워하는 경향을 개탄한다니. 우리 모두 하도 우스워 깔깔대다 의자에서 뒤로 넘어질 뻔한다.

정미씨는 두부와 술 만들기 전문가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포함한 발효·저장 식품의 대가이기도 하다. 북에 살 때 남편의 수입으로 시부모 모시고 아들 딸 키우기가 힘들어 시작한 일이었다. 요즘도 오디술, 복분자술을 직접 집에서 담그며 남쪽 술 만들기를 독학하고 있다. 남편의 퇴직 후 귀촌을 목표로 온갖 홈 메이드 음식의 기술력을 축적 중. 4년 전 그녀는 남쪽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미얀마, 태국을 거쳐 8년 전 혼자 몸으로 남쪽에 온 후 북에서 아들딸을 데려왔다. 고향을 떠난 정미씨의 오딧세이는 전쟁에 가까운 투쟁이었다. 그러나 진영씨처럼 그녀의 진짜 전쟁은 남쪽 정착 후에 터졌다. 아들딸과의 갈등이었다.

정미씨의 아들은 20대 후반. 정미씨가 먼저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을 때 아들은 사춘기였다.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느낌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엄마의 도움으로 남쪽으로 무사히 도착한 후에도 '배신감'은 그를 괴롭혔다. 전혀 낯선 문화 속 이방인의 외로움이 비난하기 가장 손쉬운 존재인 엄마를 향한 적대감으로 폭발한 것이었을까. 엄마의 재혼도 그에겐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여졌을 터. 사소한 일에도 모자 사이에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결국 아들의 언어폭력에 견디다 못한 엄마는 아들을 거의 포기할 뻔했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정미씨의 딸은 검정고시를 거쳐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얻었다. 이제 정미씨는 아들딸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북에서의 '고난의 행군'에 이은 '고난의 행군' 시즌 투는 그녀들의 실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코리아의 남쪽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긴 용기. 이건 내게 심히 부족한 자질이라서 그녀들이 존경스럽다. 한편 이질적인 문화와의 격돌로 상처받고 끙끙거리는 자녀들을 안쓰럽게 여기지만, 스스로 출구를 찾아내리라 믿고 있는 낙관주의 기질. 이것들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지켜온 이들만이 갖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녀들의 관심사는 이제 미래로 향한다. 남북여성이 함께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진영씨의 핸드 메이드 블라우스, 바지, 스커트와 베스트 같은 패션 아이템들과 정미씨의 홈 메이드 된장, 고추장에 술, 그리고 남한 친구들이 함께 만든 다른 아이템들을 함께 전시하고 마케팅할 온라인, 오프라인 통합 매장을 구상해 본다. 북한 음식과 남한 음식을 함께 만들어 파는 식당은 어떨까? 크라우드 펀딩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몸집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으로 더 만나 구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해보기로 한다.

무더위 속 거의 다섯 시간의 저녁식사가 끝난다. 이제 헤어질 시간. 다음에는 각자 딸과 함께 모이기로 약속한다. 자기 집 바깥의 중립적인 장소에서 그들 모녀간에 조금 더 객관적인 태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든 기꺼이 밥상을 차릴 생각이다. 각자 음식 한 가지씩을 가져와 나눠 먹는 수다 밥상도 좋을 것이다. 거창한 남북대화 담론 보다 생활밀착형 남북여성 대화,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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