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청년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이중적 시선

청년 동정론은 청년을 '억압받는 사람들'로 본다. 미안하고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청년 희망론은 청년을 '새로운 노동력'으로 본다. 더 많은 생산을 해내며 사회를 도와줄 기대주로 인식한다. 둘 다 '청년'과 '청년 아닌 사람들'로 사회를 나누고 '청년 아닌 사람들'의 시선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실은 청년의 문제를 '청년문제'로 인식해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로 정의하든, '희망의 수퍼맨'으로 인식하든 모두 환상일 뿐이다.

  • 이원재
  • 입력 2015.07.20 10:00
  • 수정 2016.07.20 14:12
ⓒ연합뉴스

그들의 좌절과 분노는 컸다. 20대 법학도들과 만난 자리였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가 밉다. 누릴 것은 모두 누리고 청년들에게는 이런 사회를 물려주고 가려 한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럼 청년들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이야기는 봇물이 터졌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사회 변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지난 3월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컨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청년들에게 던졌었다. '30년 뒤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이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최근 희망제작소는 이 행사에서 청년들이 제시한 한국사회 비전을 분석해 <청년이 제안하는 광복 100년 한국사회>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간했다. (보고서 링크)

제약조건 없이 정말로 원하는 사회를 그려보라는 질문을 던지니, 청년들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간 것이 많았다.

일자리 문제를 보자. 기성세대에게 청년 일자리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일자리의 숫자와 소득과 안정성이 낮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청년 당사자에게도 현재 일자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아마도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른바 '정직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30년 뒤 한국사회 일자리가 어떻게 변화하면 좋겠는지를 물어보니 대답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존중받는 일자리'였다. '좋은 일자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직장에서 내 이름이 불린 횟수', '내가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횟수'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일자리를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원으로만 보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들에게 '30년 뒤의 비전'을 물어보니, 교육, 복지, 정치 같은 다른 이슈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청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돈 대신 행복을 버는 직장, 회사를 그만두어도 생계 걱정이 없는 사회를 원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대신, 마을마다 조성된 '스마트워크 센터'에서 필요한 일을 자유롭게 하고 홀로그램으로 회의를 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사회를 꿈꾸었다.

15세 국회의원이 나오고 생애주기별로 각 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있는 민주주의를 상상했다.

당장 오늘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세대와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30년 뒤 자신들이 주도할 사회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첫번째 시선은 '동정'이다. 세대 전체를 불쌍한 시대를 맞아 고통받는 사람들로 규정하는 시선이다.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론은 이런 시선을 대표한다. 이 세대가 받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반영한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오고 이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두번째 시선은 '희망'이다. '청년이 일어서야 나라가 일어선다' 류의 눈길이다. 노인창업과 40-50대 창업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청년창업은 늘 정부와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40대 위원회도 50대 위원회도 없지만, 청년위원회가 정부조직으로 존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두 가지 시선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한 가지 점에서 만난다. 청년 바깥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점이다.

청년 동정론은 청년을 '억압받는 사람들'로 본다. 미안하고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청년 희망론은 청년을 '새로운 노동력'으로 본다. 더 많은 생산을 해내며 사회를 도와줄 기대주로 인식한다.

둘 다 '청년'과 '청년 아닌 사람들'로 사회를 나누고 '청년 아닌 사람들'의 시선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실은 청년의 문제를 '청년문제'로 인식해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로 정의하든, '희망의 수퍼맨'으로 인식하든 모두 환상일 뿐이다.

한국사회가 불쌍한 청년의 문제를 다루자는 관점에서 봐서는 문제가 안 풀린다. 이들을 기존 체제가 작동하는 데 기여하도록 억지로 유도해서도 안 된다.

문제를 풀려면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청년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게 아니라,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질서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자는 관점에서 다뤄야 문제가 풀린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 한국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청년세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한국사회 특성과 청년세대가 잘 맞을지를 살펴보고, 그렇지 않다면 변화의 방향을 잡고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청년 #베이비붐 세대 #사회 #이원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