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방통심의위, 대통령·정부 비판 선제적 차단 나서나?

  • 허완
  • 입력 2015.07.14 07:37
  • 수정 2015.07.14 07:54
ⓒ한겨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야당 쪽 심의위원들과 언론·시민단체 등의 반발에도,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제3자가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개정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방심위가 ‘총대’를 메고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격론 끝 심의규정 개정 일단 보류

지난 9일 방심위 전체회의에서는 현행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가운데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하여야 한다”(10조 2항)는 친고죄 조항의 삭제를 추진하겠다는 안건이 보고됐다. ‘친고죄’ 조항이 삭제되면 ‘반의사불벌죄’로 바뀌게 된다. 즉 제3자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심의를 신청할 수 있고, 방심위가 심의 결과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할 경우, 당사자의 반대의사만 없으면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접속 차단 조처를 취할 수 있다. 3자 신청 없이 방심위 자체 판단으로 심의에 착수할 수도 있다.

'명예훼손' 관련 법률·심의규정 내용

방심위는 이 ‘친고죄’ 규정을 2013년까지는 내규 형태로 운영하다 지난해 1월 심의규정 형태로 변경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박효종 방심위 위원장이 사무처에 별도로 지시해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서 장낙인·박신서·윤훈열 등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안건보고 자체를 반대했다. 반면 함귀용 위원 등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개정을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는 내부 검토와 공청회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친 뒤 다시 전체회의에 상정하는 걸로 논의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다수인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개정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일정만 조금 늦춰질 뿐 애초 보고대로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 무리한 추진 도대체 왜?

방심위 사무처와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이 내세우는 주요 개정 논리는 “심의규정을 상위법(정보통신망법)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보통신망법형법은 명예훼손을 당사자 고소가 없어도 공소 제기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또 방심위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민병주 의원(새누리당)이 “심의규정을 상위법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개정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개정을 추진하는 논거와 배경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 친고죄를 심의규정으로 변경한 것은 “제3자가 명예훼손 신청을 하면 해당 사실이 당사자 의사에 반해 공개돼 오히려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이런 결정을 되돌리려면 이 규정이 현실적으로 어떤 결함이나 부작용을 드러냈는지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며 “만약 반의사불벌 형태로 간다면, 오히려 방심위가 재량권을 자의적으로 남용하는 등 우려의 소지가 훨씬 더 많다”고 비판했다.

‘상위법과 맞춘다’는 논리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방심위가 명예훼손 사안의 심의 착수 기준을 상위법보다 좁게 적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심의의 기본원칙인 ‘최소 규제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행정력 낭비도 논란의 대상이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규정개정이 될 경우 연예인·정치인·종교인 등에 대한 제3자의 명예훼손 심의 신청이 쏟아지면서 엄청난 행정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지난 9일 공동성명을 내고, “방심위의 규정 개정은 인터넷상의 국민의 비판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며 “심의규정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들은 “지난해 검찰이 못한 ‘명예훼손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대신해 대통령이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심의규정 개정의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언한 직후(9월18일), 인터넷상 명예훼손에 대해 전담팀을 꾸려 ‘선제적 대응’(당사자 고소 없이도 수사)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의 발표는 “정권 비판에 대한 입막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검찰이 내놓은 대응방안에는 검찰이 인터넷 게시물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포털에 삭제 요청을 하는 방침이 포함됐는데, 이는 직후 10월에 열린 국정감사에서 “방심위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검찰이 ‘월권’을 하는 대신 방심위가 직접 ‘명예훼손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선 모양새가 된 셈이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정치 #청와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명예훼손 #검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