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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마주하는 방법

물론 거꾸로 생각을 더듬다 보면 내가 가지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목소리나 그 억양들에 근거한 나름의 통계작업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몇 배 이상 사람들의 본질을 가깝게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외모는 어떤 방법으로든 바꾸고 감출 수도 있지만 말투와 말씨는 상대적으로 그러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의도적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 속에서 기본적 성향들이 드러나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 안승준
  • 입력 2015.07.13 12:27
  • 수정 2016.07.13 14:12
ⓒgettyimagesbank

'마주보다'라는 기획 전시에 참여했다.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인생스토리와 가치관을 담아내는 독특한 시도였다.

사실적인 사진들과 작가의 의도대로 재해석된 커다란 인물화 그리고 깊은 대화 속에서 끄집어낸 사람들의 생각들이 묘하게 공존하는 전시회였다.

나의 얼굴은 작가 릭이 느낀 대로 새로운 모습과 색을 입고 있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완벽히 새로운 그림들을 보며 클로징 파티에서는 작가의 의도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색의 선택과 인물의 선정, 그 밖의 복잡한 작가의 의도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묻고 있었지만 릭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대상을 보고 느껴지는 색, 느껴지는 감정대로 그려낸다는 것이 약간은 당황스러운 그의 답변이었다.

가시광선을 통해 바라보는 각자의 상들은 본질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주관적 생각을 덧입혀 또 다른 상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그것조차 본질이 아닌 릭만의 허상일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질문이 나에게로 옮겨지면서 사람들은 앞을 볼 수 없는 나만의 마주하다라는 느낌에 대해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느끼는 마주함의 느낌 또한 여느 사람들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사람들을 앞에 마주할 때마다 나 나름의 영상들이 떠오르고 그것으로 각자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개인적 특성들이 이미지 속에 담기지만 의도적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본능적 사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나 또한 잘 알 수가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눈 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어떤 과학적 원리에 의해 내 앞에 떠오르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차이라고 한다면 내가 마주한 것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정도일 것 같다.

물론 거꾸로 생각을 더듬다 보면 내가 가지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목소리나 그 억양들에 근거한 나름의 통계작업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몇 배 이상 사람들의 본질을 가깝게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외모는 어떤 방법으로든 바꾸고 감출 수도 있지만 말투와 말씨는 상대적으로 그러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의도적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 속에서 기본적 성향들이 드러나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판단들 속에서 마주한 상대를 그려내고 느끼고 기억한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사람들을 마주하지만 나라는 렌즈를 거치고 난 뒤 가공된 이미지는 각자 다르다.

스스로 가진 편견들과 선입견들, 그 밖의 논리들을 거치고 나면 완벽히 다른 것을 보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애초에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가 소중한 대체불가능한 소우주이다.

객관적으로 마주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 견고하게 만들어진 나만의 언어들은 타협할 수 없는 주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마주하게 될 모든 대상들 또한 각각의 소우주라는 것이다.

본질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외형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판단하는 대부분은 그것들을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목소리도 외모도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늘 그것들을 본질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극단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의 외형이나 목소리가 어느 날 알아볼 수 없게 바뀌어 버린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그를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마주치고 나름의 생각들로 바라보고 판단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본능적으로 우열을 나누기도 하고 서열을 매기기도 한다.

불행한 것은 나조차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근거 없이 평가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본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하나 하나의 소중한 세상들인 우리는 최소한 그에 가까워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 상대방의 생각들과 언어들로 그를 이해해 보려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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