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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격리자를 위하여 | 메르스 공포 속에 당신의 인간성은 안녕하셨습니까

6월 3일에서야 격리자에 대한 최초 지원 조치로 이루어진 긴급 생계비 지원도 초기에 그 자격 요건과 관련하여 혼란이 있었고, 6월 17일부터 유가족과 격리자에 대한 심리지원서비스가 이루어졌지만 전화상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름 후에 이루어진 생계지원, 한 달 후에 이루어진 심리 상담, 격리로 발생할 수 있는 혹은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피해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이들의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연합뉴스

메르스의 공포 속 격리자는 누구입니까, 무엇입니까

'감기'와 같은 감염병 관련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감염병이라기보다는 국가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의 잔인성입니다. 그러나 영화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메르스에 대한 공포 속에 국가폭력과 사람들의 무관심, 잔인성은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있는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격리자를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을 거부합니다. 격리자는 단지 격리시켜야할 공공의 적,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되는 바이러스, 격리자의 생명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나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커지지 않기 위해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일 뿐입니다.

격리자는 본인들의 잘못이 전혀 없이 치사율 20%의 전염병에 노출된 피해자이자 가정, 직장, 사회생활 모두가 급작스럽게 중단되어 그 누구보다도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장 취약한 최악의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춰진 격리자는 감염병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켜서는 안 되기에 감금된 잠재적 가해자이자 최악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공식적으로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히고 생존을 위해 국가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심리적,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어 숨죽인 채 오열하고 있는 최악의 가해자입니다.

감염병의 극복은 격리자의 비인간화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진실에 대한 권리, 정보접근권, 그리고 감염병의 예방과 억제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비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법제와 관행의 개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격리자를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이중 삼중 격리시킴으로써 격리자 및 비격리자 모두의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켜 온 우리의 모습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모습입니다.

미국의 경우 2001년 관련 학자들이 공공보건을 위한 국가 혹은 주의 격리권한과 개인 권리의 균형을 지향하는 긴급보건권에 관한 모범 주법(Model State Emergency Health Powers Act, MSEHPA)을 기초하였고, 39주에서 유사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MSEHPA와 관련 주법, 판례 등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격리자는 병원체에 실제로 노출되었거나 감염된 상태여야 하고, 감염가능기간에 있어야 하며, 공공보건상 위험을 유발하지 않는 개인은 인신보호청구로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보건당국의 개입은 합리적으로 효과적이어야 합니다. 즉 보건당국은 공공보건상 위험의 정도, 감염의 형태, 격리방법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 최소한의 제한을 가하는 격리방법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격리는 헌법상 개인의 평등한 보호와 적법절차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격리는 특정 사회집단이나 특정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차별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적법절차의 보장상 격리는 적절한 통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구두진술권, 이의제기권 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격리가 가지는 중대한 권리 제한 및 잠재적 낙인효과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절차적 보호는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격리의 이유, 방법, 기간, 장소, 이의제기 방법 등에 대한 충분한 서면 설명이 있어야 하고, 격리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절차와 그 절차의 최소침해성에 대하여 구두로 설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넷째, 격리자에게는 적절한 의식주와 의료조치를 포함한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경우 격리자는 자가격리 또는 시설격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격리시설은 가능한 편안하고 제약이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다섯째, 격리자에게는 격리로 인한 수익 감소에 대하여 합리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해고나 임금감액 가능성, 직장에서의 낙인효과 등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합니다.

격리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격리의 기준은 여러 조항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즉, "감염병환자등" (제41조 제1항, 제2항, 제42조), "감염병환자등과 접촉하여 감염병이 감염되거나 전파될 우려가 있는 사람" (제41조 제3항 제2호), "감염병병원체에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사람" (제47조 제2호) 등이 그 기준입니다. 그러나 "감염병병원체 감염 의심"의 기준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합니다. 또한 법률은 "감염병환자등과 접촉"한 경우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다수의 메르스 격리자라고 볼 수도 있는 감염병환자등과 "접촉이 의심"되는 사람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나 언론, 의료기관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설 격리는 법적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격리의 통지가 유일하게 보장받는 절차적 권리입니다(제41조 및 제43조). 그런데 시설 격리의 경우 인신보호법이 적용되어 관련 행정주체는 격리자가 법원에 그 격리의 위법성을 다투는 구제청구를 할 수 있음을 고지해야 하고(인신보호법 제3조의2), 이를 어길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 됩니다(인신보호법 제20조). 그러나 시설 격리자 중 인신보호법상의 구제청구 고지를 받은 이가 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습니다.

격리자가 격리 중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전염병(의심)에 격리가 더해진 격리자의 상황은 그 어떤 재난 상황보다도 취약한 재난 상황으로 봐야 하고 관련 법령을 적극적인 해석·적용을 통해 단순한 생계뿐만 아니라 기존 가정, 직장, 사회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7월 6일 시행된 개정법은 격리 및 치료 등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규정함). 개정법은 진단, 치료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이를 격리자 본인이나 그 보호자로부터 징수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적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습니다(법 제69조, 같은 법 시행령 제45조). 6월 3일에서야 격리자에 대한 최초 지원 조치로 이루어진 긴급 생계비 지원도 초기에 그 자격 요건과 관련하여 혼란이 있었고(6월 10일부터 소득 관계없이 지원), 6월 17일부터 유가족과 격리자에 대한 심리지원서비스가 이루어졌지만 전화상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보름 후에 이루어진 생계지원, 한 달 후에 이루어진 심리 상담, 격리로 발생할 수 있는 혹은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피해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이들의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격리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

인권이 문제가 되는 때는 다수가 불편해하고 권력이 싫어할 때입니다. 특히 공포가 사회를 뒤덮고 있을 때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밖에 없고, 평소에 인권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조차도 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침묵하게 됩니다. 공포와 배제의 대상인 격리자에 대한 극단적인 관심과 무관심을 넘나들며 우리는 이들을, 그리고 우리의 인간성을 공포의 이름으로 격리시켰습니다. 이들에 대한 물리적인 격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격리의 극복, 그리고 상실되어버린 우리의 인간성의 회복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글_황필규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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