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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반대주의자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가. 모두가 결혼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유서 깊은 결혼 반대주의자다. 특히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몹시 반대한다. 어떤 의미에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초청하지 않으면 나중에 섭섭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서 비슷하게 생긴 예식장에 몰아넣고는 '저희 지금 이 순간부터는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가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의식에 가깝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좀 부끄럽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주례 선생님 앞에 서서 "네!"를 외치셨습니까?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우면서 그날 밤 거기에는 고무를 끼울 생각을 하면서?

  • 김도훈
  • 입력 2015.07.13 07:03
  • 수정 2016.07.13 14:12
ⓒ마이 페어 웨딩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가. 모두가 결혼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유서 깊은 결혼 반대주의자다. 특히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몹시 반대한다. 어떤 의미에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가족과 친지와 친구와 초청하지 않으면 나중에 섭섭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서 비슷하게 생긴 예식장에 몰아넣고는 '저희 지금 이 순간부터는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가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의식에 가깝다. 아,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좀 부끄럽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주례 선생님 앞에 서서 "네!"를 외치셨습니까?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우면서 그날 밤 거기에는 고무를 끼울 생각을 하면서?

자, 당신도 나 같은 결혼 반대주의자라면 아마도 올해 상반기는 무시무시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젠 심지어 동성애자들도 결혼을 선언하고 있으며, 심지어 각 국가의 헌법이 그것을 보장하고 있지 않은가. 서유럽은 반도국가(=이탈리아)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됐다. 미국도 지난달 동성결혼을 완벽하게 법제화했다. 그 동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대도시들은 유서 깊은 '게이 타운'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인단다. 동성애자들은 서로의 안전과 화합을 위해 도심의 특정 동네를 중심으로 모이는 성향이 있다. 이를테면 뉴욕의 첼시나 한국의 이태원 같은 동네가 그렇다. 그런데 첼시의 동성애자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입양한 뒤 고즈넉한 교외에 집을 사서 더욱 안락한 중산층의 삶으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소식이다. 맙소사. 결혼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 진절머리 나는 동성결혼이 아직은 한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 안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바닥을 치고 북을 치며 대성통곡을 할 날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감독이자 동성애자 인권센터 '신나는 센터'의 대표 김조광수와 그의 남편이자 '레인보우팩토리'의 대표인 김승환이 이미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법정투쟁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은 2013년 9월 결혼식을 올리고 서대문구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으나 "동성 간 혼인은 민법에서 일컫는 부부로서의 합의로 볼 수 없어 무효"라는 이유로 혼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연히 두 사람은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냈다. 이것은 언젠가 출간될 '한국의 동성결혼 역사'의 첫번째 챕터에 나올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니 일단 다들 기억을 해두도록 하자. 세상의 수많은 결혼 반대주의자들의 보루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니, 확실하게 기억해야 한다.

마이 페어 웨딩

심지어 김조광수와 김승환은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영화도 하나 만들었다. 얼마 전 개봉한 장희선 감독의 '마이 페어 웨딩'은 2013년 9월에 있었던 두 사람의 결혼을 담아낸 영화다. 카메라는 5개월 동안 아주 징글징글하게 두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들은 결혼을 결심하고, 인권단체들과 회의를 하고, 결혼식 예고편(응?)을 촬영하고, 결혼식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결혼한다. 사실 그들의 결혼식이야 잘 알려져 있다. 청계천에서 거행된 그들의 결혼식은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와 인권선언과 결혼식이 하나로 합쳐진, 놀라운 이벤트였다. 요즘 나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한국 엘지비티(LGBT) 인권 관련 기사를 쓰다가 게티나 에이피(AP) 등 국제적인 사진 에이전시 사이트에서 사진을 종종 고르는데, '코리아'(KOREA)와 '게이'(GAY)라는 단어를 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진이 두 사람의 결혼사진이다. 하도 많이 써서 이젠 두 사람의 사진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지경이다. 제발 누군가 다른 동성커플이 제발 공개 결혼식을 벌여서 더 많은 사진을 우리가 쓸 수 있게 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아 참, 나는 결혼 반대주의자지?

하여간, 이 두 사람의 다큐멘터리는 지금 당신이 상상하고 있는 그런 영화와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다르다. 클라이맥스에 터져나오는 그들의 결혼식은 꽤 감동적인데다가, 연단으로 올라와 똥물을 투여하는 한 교인의 깜짝 퍼포먼스까지 합쳐져 아주 영화적인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스릴과 서스펜스는 모두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아파트, 그것도 소파 앞에서 벌어진다. 고정된 카메라 앞에서 두 사람은 결혼식 준비 과정의 즐거움과 고통을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즐거움은 적어지고 고통은 배가한다. 이 영화에 부제를 붙이자면 '소파 앞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정도다.

정말 재미있는 건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의 역학관계다. 나는 김조광수 감독을 꼬맹이 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그는 매우 재미있고 즐거운데다 드물 정도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넘치는 사람인데, 한 가지 커다란 단점이 있다. 김조광수는 1980년대를 열혈 운동권으로 보낸 386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에 대학 시절을 보낸 나는 운동권 선배들과 단 한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왜냐면 나는 그들이 정권보다 혐오하던 엑스세대의 화룡점정이었으니까. 어쨌든 운동권 출신인 김조광수 감독에게 이 결혼식은 사랑의 증명이지만 일종의 운동이다. 18살이 어린 김승환 대표에게 이 결혼식은 일종의 운동이기에 앞서 사랑의 증명이다. 영화가 뒤로 가면 갈수록 근원적인 차이점 사이에는 점점 틈이 벌어지고, '대체 이 결혼이 가능할까?'라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마이 페어 웨딩'만큼 '결혼'이라는 것의 맨얼굴을 잘 드러낸 한국 영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영화는 결혼을 앞둔 이성애자들이 이성애자 결혼식을 다룬 어떠한 영화보다도 더 열심히 참고서로 삼아야 마땅하다(대체 이성애자 감독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마이 페어 웨딩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 스크린을 보며 결혼에 대한 공포를 슬그머니 옆으로 젖혀두고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김조광수가 "깊은 관계를 가져봐야 나중에 또 다른 깊은 관계를 가질 수가 있기 때문에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로, 결혼에 회의를 느끼는 김승환을 위로하는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은 싸우고 투쟁하고 몸서리치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기어코 사람들 앞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턱시도며 드레스를 입고 괴상한 예식을 올리는구나. 뭔가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것이 그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리는 거대한 '쇼'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나도 결혼을 하고 싶어졌냐고? 아니. 나는 지금 (결혼 프로파간다) '마이 페어 웨딩'의 후반부에 젖어서 잠시나마 결혼을 해보고 싶어졌던 나약한 마음을 다잡으며 (결혼 공포영화) '마이 페어 웨딩'의 전반부를 다시 돌려 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수많은 당신들이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이유는 순전히 당신들이 겪은 그 지옥을 남도 겪게 만들고 싶은 심보 때문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절대로 당신들에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한겨레 토요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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