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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의 국회탈출기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였으며 야근과 주말근무 또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에 따른 추가수당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나가!'라는 한마디에 해고되는 비정규직 신분이라 보좌진들은 불만을 삼키고 일에만 매진했다. 밖에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원이 정작 자기 곁의 사람들에겐 무심한 모습에 K는 몇 차례나 실소하곤 했다.

  • 홍형진
  • 입력 2015.07.13 10:20
  • 수정 2016.07.13 14:12
ⓒ한겨레

※실화에 근거해서 소설 느낌을 버무려 쓴 글입니다. 한겨레에 게재됐습니다.

K는 묵묵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의원실에서 궂은일에 매진해왔지만 이제 미련 없이 국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차례의 승진 기회에서 그는 연달아 미끄러졌다. 정책 역량만 놓고 보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의원의 선택은 늘 다른 이들이었다. 의원은 보좌진을 자신의 오랜 지인으로 차례차례 채워 넣었다. 보좌진의 채용과 해고는 의원의 전권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국회에서 없었던 건 아니지만 흐지부지되었다. 19대 국회가 들어설 때 쇄신안으로 발의되었으나 제대로 논의되진 못했다. 도리어 일탈행위만 드러났을 뿐이고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여당 의원은 자신의 친아들을 성씨까지 바꿔가며 마치 남남인 체 4급 보좌관에 채용했다가 들통이 났고, 야당 의원은 의붓아들을 5급 비서관에 채용해 정책 업무 대신 운전기사를 맡겼다가 논란을 빚었다. 보좌관과 비서관의 연봉은 각각 7200만 원, 6300만 원이고 재원은 물론 세금이다.

지금도 국회에선 흉흉한 뒷이야기들이 나돈다. 언론에 보도된 이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치마저 세습하려 드는 세태에 많은 보좌진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그들 대부분은 그런 뒷배 없이 정치에 뜻을 품고 역량을 갈고닦은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의 정치 주역을 꿈꾸며 국회의 문을 두드린 그들로선 높은 성벽을 체감하며 박탈감만을 느낄 따름이고 K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영혼까지 쥐어짜이는 파리목숨 비정규직이라고 할지라도 뜻을 갖고 버티면 길이 열리리라고 K는 믿어왔다. 그러나 자신이 모시는 의원마저 근래 들어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자 그 포부를 송두리째 의심하게 되었다.

의심은 피폐해진 자신의 일상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다. 실무에 어두운 낙하산 상사는 일처리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이는 각종 비효율을 야기했다.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였으며 야근과 주말근무 또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에 따른 추가수당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나가!'라는 한마디에 해고되는 비정규직 신분이라 보좌진들은 불만을 삼키고 일에만 매진했다. 밖에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원이 정작 자기 곁의 사람들에겐 무심한 모습에 K는 몇 차례나 실소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국회 청소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노동3권이 보장되어 파업이나 해댈 것이라고 말했던 이도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K는 이곳 국회에 적어도 그 자신의 미래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때는 여당으로 옮겨가는 것도 잠시 고민했었다. 신진 정치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이 야당엔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여당은 그나마 시늉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 정치인을 육성할 의지가 없는 야당을 떠나는 걸 두고 K는 고민했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비웠다. 단지 조금 더 환경이 낫다는 것일 뿐 여당 역시 세습 기류는 뚜렷했던 데다 애초 정치적 지향이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국회를 탈출하는 것. 지금 K는 30대 중반이다. 삶의 기어를 바꾸기에 아직은 늦지 않은 나이다. 국회에서의 5년 경력을 기반으로 적당한 자리를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로스쿨 등에 한번 도전해볼 수도 있다. 더 늦으면 힘들다. 지금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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