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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청춘의 고운 결 | 하라 히데노리, 아다치 미츠루

'직구'로 승부하는 투수는 아다치 미츠루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H2』에서 죽마고우이자 연적인 최고의 타자 히데오와 승부하는 투수 히로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한다. 공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 변화구일까. 직구일까. 단서는 하나. 히로는 언제나 직구로 승부하는 녀석이었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공처럼, 어떤 단서나 이유를 달지 않고 결과에 승복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주인공은 늘 직구로 승부하는 청춘의 수호자들이다.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 그리고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야구로 비유한다면, 그 중에서도 투수로 대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주자가 없을 때에는 잘 던지다가 안타 하나를 맞고 나면 급격하게 흔들리는 투수가 있는가 하면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신을 내며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는 투수도 있다. 변화구로 타자의 리듬을 뺏는 투수가 있는가 하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직구로 승부하는 투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유형이라면 깨끗한 직구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언제나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패배의 순간에도 깨끗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설 줄 아는.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에 등장하는 코이찌가 그런 타입이다. 중학교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코이찌는 명문고의 스카우트를 마다하고 야구부도 없는 학교로 진학한다. 그리고 야구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코이찌는 어린 시절 그 학교 야구부의 투수였던 효우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효우가 부원들과 싸운 사건으로 야구부는 폐쇄되고 그 역시 떠나간다. 효우를 보내며 코이찌는 반드시 야구부를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학교의 누구도, 작은 마을의 그 누구도 야구부의 재건을 원치 않는다. 도시로 가 야쿠자가 된 효우 역시 그 약속을 잊었다. 오로지 코이찌만이 끈질기게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직스러운 직구 승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직구'로 승부하는 투수는 아다치 미츠루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H2』에서 죽마고우이자 연적인 최고의 타자 히데오와 승부하는 투수 히로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한다. 공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 변화구일까. 직구일까. 단서는 하나. 히로는 언제나 직구로 승부하는 녀석이었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공처럼, 어떤 단서나 이유를 달지 않고 결과에 승복하는. 아다치 미츠루의 주인공은 늘 직구로 승부하는 청춘의 수호자들이다.

『창공』의 묘미는 우직한 승부다

직구와 청춘. 나에겐 이 두 단어가 동의어로 다가온다. 하라 히데노리와 아다치 미츠루는 청춘의 나른함과 서늘함을 가장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들이다. 『내 집으로 오세요』에서 하라 히데노리는, 사진작가를 꿈꾸는 나카하라의 망설임과 호기심에서 청춘의 불꽃을 발견한다. 『터치』에서 아다치 미츠루는 쌍둥이 동생의 그림자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야 하는 타츠야의 고된 어깨에서 청춘의 눈물을 담아낸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이 의도적으로 '소년 만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에 비해, 하라 히데노리는 조금씩 '지독한 현실'을 담아낸다. 하라의 만화는 현실에 근접하고, 아다치는 판타지로 상승한다. 하라의 『청공』에서 강간과 폭력 같은 극악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에 비해, 아다치의 『미소라』에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등장한다. 모두 좋다. 하라 히데노리의 만화는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여전히 아다치 미츠루의 열렬한 팬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에는'열혈'로 대표되는 승리제일주의가 말끔하게 증발되어 있다. 아무리 '승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과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 세상은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터치』의 주인공은 쌍둥이 카즈야와 타츠야. 카즈야는 공부도 야구도 최고다. 타츠야는 정반대로 여자 탈의실이나 훔쳐보는 열등생. 대조적인 형제 사이에, 어릴 때부터 옆집에서 살아온 미나미가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에는 그 어디에도 칙칙한 구석이란 없어 보인다. 순정한 슬픔부터 황당무계한 개그까지 종횡무진으로 툭툭 내던질 뿐이다. 타츠야에게는 열등감도 없고, 승부근성도 없다. 그러나 어쩌면 타츠야 자신조차 몰랐을 사실을 미나미만이 알고 있다. 그가 도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평생을 도망쳐도 그는 아무런 후회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누구나 타츠야에게서 카즈야의 그림자를 보고 있지만, 미나미만은 아주 오래 전부터 타츠야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타츠야는 카즈야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짊어진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운명, 도망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터치』의 주인공. 쌍둥이 타츠야와 카즈야 그리고 미나미

타츠야와 미나미의 미묘하고 아스라한 감정은 해설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아다치 미츠루는 모든 것을 그림과 절묘한 구도와 그림과 그림 사이에 놓인 거대한 우주 속에서 표현한다. 언제나 똑같은 얼굴 같지만, 필요한 순간에 정말 적확한 표정을 짓는 타츠야와 미나미를 보고 있으면, 농담처럼 만화 곳곳에 깔아놓은 아다치의 '나는 천재'라는 익살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보일 듯 말듯 파스텔 톤을 연상시키는 감정의 일렁임과 가슴이 곤두박질치는 예리한 심리묘사는 아다치 미츠루의 전매특허다. 이렇게 말로만 하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는, 정말로 '만화적'이다. 말이 필요 없이 그림과 여백만으로도 충분히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 『터치』에서 카즈야가 죽고, 타츠야가 그것을 부모에게 알리고, 장례식 후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아다치 미츠루는 정말 무심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처럼 무심해 보이면서, 이처럼 격렬한 무너짐의 찰나를 극명하게 그려내는 만화를 그 순간에 만났다. 아다치 미츠루의 '명랑만화체' 인물들이, 그토록 심오하고 그토록 처절한 순간과 직면하리라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다치 미츠루의 또 다른 야구만화 『H2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은 거의 청춘물 일색이다. 그런데 변주가 기막히다. 재즈의 스탠더드넘버가 수없이 되풀이해서 연주될 때마다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재창조되듯, 아다치 미츠루가 그려내는 일상적인 사춘기 시절은 단 한 번도 겹치지 않는 순간의 기억과 살을 베어내는 듯한 찰나의 감정들을 자신만의 '터치'로 잡아낸다. 『H2』는 『터치』의 90년대 판이다. 그들은 새로운 유형의 만화주인공이자 일본인,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이다. 지나치게 심각해지지 말기, 승부에 목숨 걸지 말기. 바람에 스치듯 순리를 따라갈 것. 착각하지 말 것은, 그것이 패배주의자나 도피주의자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의미를 찾을 때에만, 싸울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집단의 흐름에 끌려가기보다는 자기의 내면을 중시하는 인간형. 그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타인의 시선에 묶여있는 남루한 삶을 살지 않는다.

글_ 김봉석/에이코믹스 편집장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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