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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때 끌려가 맞으며 일했다. 이게 강제노동 아니면 뭐냐"

ⓒ한겨레

“1944년 5월30일에 마사키라는 교장 선생님과 곤도라는 헌병이 교실로 와서 ‘일본에 일하러 가면 학교에 보내준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도장을 훔쳐냈습니다. 그런데 겁이 나서 가만히 있으니, ‘이렇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경찰서로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참의원회관 지하 1층에서 열린 ‘미쓰비시중공업 6·24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보고회에 참여한 양금덕(85) 할머니는 “오늘 와주신 일본 시민들께 인사드립니다”라며 차분하게 증언을 시작했다. 그러나 70년간 눌러온 한을 이기지 못한 듯 이내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그는 “(나 같은) 국민학교 6학년짜리 애들을 데려가서 1년 8개월 동안 일을 잘 못한다고 발로 차고 때렸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기들 나라가 세계적으로 제일 훌륭하고 정직한 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월급도 주지 않고 보상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증언 말미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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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하시마(군함도) 등 일본 메이지 시대의 근대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계기로 식민지 시기에 벌어진 일본 정부에 의한 조선인 ‘강제노동’을 둘러싼 양국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주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것이 강제노동은 아니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경험은 강제노동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양 할머니 등은 1999년 3월 일본 나고야 지방법원에 강제노동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할머니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2008년 11월 최종 패소 판결했다.

좌절하고 있던 양 할머니가 다시 희망을 갖게 된 것은 2012년 5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2012년 10월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내 2014년 4월 1심, 이후 지난달 24일 2심에서도 승소했다. 양 할머니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나는 강제노동을 당했다. 아침 7시 반부터 하루에 10시간 넘게 맞으면서 일했다. 일본 아이들과는 업무도, 밥도, 변소 가는 데도 차별을 받았다. 내 목숨을 걸더라도 내가 당한 것은 강제노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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