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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사태 재발방지, 방역의 기본부터

해외유입 감염병에 대한 방역시스템을 강화하자며, 전문가들의 해외파견과 연구강화를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좋은 방안입니다. 그러나 막말로, 걸을 줄 알아야 뛸 줄 압니다. 진짜 문제는 국제기구로부터의 공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조차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낙타를 피하라는 지침을 내고 있는 동안 누리꾼들은 직접 외국사이트에서 정보를 나르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해외여행질병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쓸모 있는 정보는 전문가도 탐색하고 연구해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우디아라비아를 눌러보면, 중동에서 주의해야 할 질병에 메르스는 없고 '한타바이러스'만 제시되어 있습니다.

  • 장재연
  • 입력 2015.07.09 10:50
  • 수정 2016.07.11 14:12

들어가며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어 가면서 재발방지를 위한 다양한 개선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큰 사건은 잘못된 판단이나 행위, 그리고 실수가 중복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메르스 사태도 예외가 아닙니다. 따라서 각각의 요인을 개선하려는 모든 제안과 대책은 효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병원감염에 대한 취약성, 응급실의 기능 상실, 지나친 병문안 문화, 보건의료행정의 전문성과 독자성 부족 등 '의료계와 보건행정'의 오랜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제안은 옳은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런 조치만으로 앞으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신종감염병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모든 감염병이 메르스와 같은 경로로 전파되지는 않습니다. 공기감염이나 모기나 진드기 같은 매개체를 통해 전파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메르스사태를 통해 확인된 '해외에서 처음 유입된, 정보가 매우 부족한 신종감염병'에 대한 국가적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발도 막고 다른 대안들도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필수적인 개선안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1. 해외유입 감염병, 방역의 기본부터

1번 환자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온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비난은 1번 환자가 사우디아라비아가 메르스 위험지역이라는 것과 자신의 증상이 메르스 때문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역당국의 홍보도 없었고, 우리나라 의사들도 대부분 처음 들어본 질환과 감염위험지역을 환자 개인이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요즘은 해외에 나가면 휴대폰에 위급상황시 연락 전화번호, 해외로밍 광고까지 자동으로 뜹니다. 중동지역 방문자들에게 "이 지역은 메르스 위험지역입니다. 귀국 후 2주일 내에 발열증상이나 호흡기증상이 발생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병원을 방문해 중동지역 방문사실을 말씀해주십시오."라는 문자를 보내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비행기에서의 기내방송이나 안내문을 배포하는 방법도 가능하겠지요. 이런 시스템이 있고 1번 환자가 그중 하나라도 보고 병원을 찾았다면, 메르스사태는 1명의 환자로 종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대처방안을 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인데,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발상입니다. 향후 '해외여행자의 경로를 정부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항공사 등이 보유하고 있는 탑승자 자료와 신용카드 사용내용 등 국민들의 개인신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 등의 제안들도 인권과 사생활보호를 침범하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입니다.

해외유입 감염병에 대한 방역시스템을 강화하자며, 전문가들의 해외파견과 연구강화를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좋은 방안입니다. 그러나 막말로, 걸을 줄 알아야 뛸 줄 압니다. 진짜 문제는 국제기구로부터의 공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조차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낙타를 피하라는 지침을 내고 있는 동안 누리꾼들은 직접 외국사이트에서 정보를 나르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해외여행질병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쓸모 있는 정보는 전문가도 탐색하고 연구해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우디아라비아를 눌러보면, 중동에서 주의해야 할 질병에 메르스는 없고 '한타바이러스'만 제시되어 있습니다.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방안들도 일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아주 간단한 정보조차 맞춤형으로 제공하지 못하는 해외유입감염병 방역시스템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하고 난 후 다른 방안을 추가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2. 감염병 의심환자의 기초적 문진을 빠뜨리지 말자. 잘 모르겠으면 일단 격리부터

환자들은 질병명을 진단받고 치료받기 위해 병의원을 찾습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번 사태 초기에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1번 환자는 5월 11일 발병한 이후 열흘 동안 네 군데의 병의원에서 진료와 입원을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메르스 확진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수십 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의사는 1번 환자가 바레인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듣고 메르스를 의심하여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의사들은 진료를 보면서 여행력을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여행력을 물어보고, 관련 질병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게 '매우 훌륭한' 의사만 할 수 있는 고도의 의술인가요? 만일 그런 것이라면 1번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대형병원에 가서야 '매우 훌륭한 의사'를 만나 올바른 진단을 받았다는 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병원쇼핑, 닥터쇼핑이라는 관행이 너무 심해서 이번 사태가 커졌다는 지적은 근거를 잃게 됩니다.

5월 20일, 첫 환자가 확진되고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에 대한 대응을 '주의'로 올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곧이어 메르스에 대한 언론보도가 봇물 터지듯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5월 22일에는 대청병원, 5월26일에는 서울아산의원, 5월 25일에는 평택굿모닝병원, 5월27일에는 동탄성심병원과 삼성서울병원, 5월28일에는 건양대병원에서 3차 감염이 발생합니다.

메르스란 질병이 생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 환자가 발생하고 질병관리본부가 주의보를 발령한 마당에, 각 병의원은 메르스에 대해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평택성모병원 이름이 공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이 메르스를 집중 보도하고 있는데도, 병의원이 무방비로 당한다면 도대체 정부의 '주의' 발령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더구나 1번 확진 과정을 통해 메르스에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던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추후에 발생한 환자들을 감별해 내지 못해 전국으로의 확산의 근원지가 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온 나라가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 6월 5일에도 강동경희대병원과 건국대병원을 비롯한 몇몇 병의원에서 추가 감염이 발생햇습니다.

기대에 부응한 병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병의원의 부주의가 더욱 안타깝습니다. 5월 26일,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6번 환자가 방문했을 때, 최수미 교수는 메르스를 의심하여 질병관리본부에 즉시 연락을 취하고 환자를 1인실 집중치료시설로 옮겼습니다. 또 하나의 대형병원 감염을 막고 질병관리본부가 이전에 실시한 역학조사와 격리조치에 큰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여 추가 확산 방지의 계기를 만든 성과입니다. 그럼에도 최 교수의 조치는 본인의 말대로 "의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 것"입니다.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신종감염병은 앞으로 계속 우리를 위협할 것입니다. 신종감염병에 대한 대응은 의료 현장의 의사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만 가능합니다. 1번 환자를 확인한 의사나 최교수처럼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 환자의 직업, 여행경력, 치료경력 등 다양한 정보를 물어보고 의료당국의 주의 사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실제 진료과정에 활용해야 하는 태도가 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확인된 사실은 초기에 의심환자를 격리시킨 병원은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음압병실이 아니더라도, 접촉자를 최소화 한 격리만으로도 확산방지에 매우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감염의 위험이 있어 보이는 환자는 일단 다른 환자들로부터 격리시켜 진료하는 것이 '상식적인' 의료행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중요한 신종감염병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간부들이 직접 초동역학조사를 실시해야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자료를 보면 5월 28일 역학조사관 3명이 평택성모병원에서 역학조사를 다시 실시했고, 5월 29일에는 질병관리본부 감염병센터장, 질병예방센터장, 역학조사과장 등이 집단으로 방문하여 병원상황을 점검했다고 합니다. 혹시 질병관리본부 간부들의 현장 방문은 이 날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5월 20일의 역학조사와 격리조치는 평택성모병원 내에서 감염된 환자들을 모두 놓치고, 오히려 일부는 다른 병동으로 옮기거나 퇴원하게 만들어 수많은 3차 감염자를 발생시킨 실패작입니다. 병원 내에 메르스 환자가 다수 있었음에도 평택성모병원으로 하여금 발열확인 등 간단한 조사와 메르스 검체 조사조차 실시하도록 조치하지 못했습니다. 성의도 없고 기본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역학조사 경험이 부족해서 고도의 판단력도 없고 자율권이 없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이라도 매뉴얼대로 안했다 문제가 생기면 본인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의 취약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간부들입니다. 특히 5월은 그나마 역학조사 3년의 경험이 있는 공중보건의들은 제대하고 신규배치가 이뤄지는 기간이어서 역학조사관들의 능력이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첫 환자가 확진되자마자 바로 긴급기자회견을 가질 정도로, 본인들도 중차대하게 생각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자신들도 능력을 염려하는) 역학조사관 3명만 파견해서 10명을 격리조치하고 수많은 환자들을 놓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런 점에서 질병관리본부의 경험 많은 간부들이 5월 20일 당일은 경황이 없어 못 갔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현장 판단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을까 우려하며 현장을 찾았어야 합니다. 만일 감염병위기대응 책임자들이 5월 28일 이전에 현장을 찾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의 책임을, 가보고도 사태의 심각성과 환자 누락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요성이 부각된 역학조사관을 질병관리본부가 몇 명이나 정규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설사 많은 인원이 신규 채용되더라도 상당기간 경험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종감염병이 최초 발생하면 부하직원들만 보낼 것이 아니라 질병관리본부 간부들을 포함한 국내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초기 상황을 평가하고 대응하는 전통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4. 제대로 된 전문가들의 역할

이번 사태를 통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언론에 등장했지만 보건당국의 방역대책 업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진 정보가 적어 평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단히 적고자 합니다. 흘러 다니는 이야기처럼 일부 감염병전문가에 너무 의존하다가 사태가 악화된 것이 사실이라면, 향후에는 다양하면서도 꼭 필요한 구성으로 감염병 위기대응 전문가회의가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초 환자 발생 직후 열린 수차례의 회의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오판에 책임이 있는 전문가가 있다면, 정부와 병원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본인도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5월 28일, 방역에 엄청난 구멍이 뚫린 사실이 확인되었는데도 병원공개를 반대해 온갖 소문과 불안감이 커지게 만들고 모든 병의원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데 기여한 전문가는 향후 방역업무에 다시는 개입하지 못하도록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방역 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병원정보 공개를 막은 것이 이번 사태에서 환자의 확산만이 아니라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분기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전직 질병관리본부장들은 언론을 통해 '맹렬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보다는 직접 초기 대응에 참여했더라면 귀중한 경험을 더 적합하게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 유사한 위급사태가 벌어질 경우에는 이분들이 직접 초기 역학조사를 공동으로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것입니다. 역대 질병관리본부장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경험과 지혜를 모아 위기극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면서 국민과 언론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보기 좋습니다.

마치면서

메르스 사태는 크게 네 가지 이유로 확산되었습니다. 해외유입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방역시스템, 의료계의 감염환자 조기발견 및 조치능력 미흡, 질병관리본부 간부들의 무책임과 탁상행정 방식의 역학조사, 비전문가의 잘못된 자문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그 이유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책이어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 제시한 개선안들은 사태 후반에 확산을 막으며 저력이 있음을 보여준 의료계와 보건당국은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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