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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민어를 서울서 맛나게 먹는 방법(사진)

  • 박세회
  • 입력 2015.07.08 18:52
  • 수정 2015.07.09 05:52

“서울에서 이렇게 큰 민어 본 적 있어요? 길이가 110㎝가 넘어요.” 서울 마포구 ‘목포낙지’의 주인장 최문갑(46)씨가 자랑에 나선다. 민어는 92㎏ 거구의 남자라도 한 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13㎏이 넘는 덩치다.

서울서 맛나는 민어를 잡는 남자

그가 두 손으로 꼭 붙잡았지만 살겠다고 버둥대는 녀석의 안간힘을 당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형마트나 민어전문점에서 주로 유통되는 민어는 5~6㎏ 정도가 대부분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지만 민어에게는 안 통한다. 민어는 클수록, 수컷일수록 육질이 좋아 맛있고 가격이 비싸다.

최씨는 파닥거리는 민어 앞에서 홍조를 띤다. 올해 5번째 ‘민어 해체쇼’ 도전이다. 본래 낙지 전문가였으나 몇 해 전 장어에 도전해보고는 더 큰 생선에 눈이 떠졌다. 그가 예리한 칼끝을 민어의 흑갈색 꼬리에 꽉 박는다. 푸드덕 민어의 머리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처럼 천장을 향해 튀어 오른다. 아가미를 따자 피가 솟구치고 줄줄 흐른다.

“아예 산지에서 피를 뽑아 오기도 한다. 맛을 유지하는 데 이 과정이 참 중요하다.” 그가 ‘붉은 광장’의 적색기보다 더 빨간 아가미를 확 들춘다. “이렇게 붉어야 신선한 거다.” 맥을 못 추고 늘어진 민어는 도마에 올라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될 준비를 마친다. 배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르자 개선문처럼 활짝 열린다.

버릴 게 없는 생선 민어

창자, 부레, 쓸개 등 분홍빛 내장이 와락 쏟아진다. 본래 민어는 버릴 게 없는 생선이다. 내장은 젓갈을 담그고, 알은 잘 말려 술안주로 최고인 어란이나 찜을 해먹는다. 신선한 부레는 별미 중의 별미인데, 그것 자체로 맛이 뛰어나 기름장만 살짝 묻혀도 최고의 맛을 선물한다. 덩치가 큰 놈이라 부레도 소 혓바닥 몇 개는 붙여놓은 듯 크다. 최씨가 핏기를 없애고 막을 제거한다. “처음엔 실수도 했다. 부레 손질을 잘 못해 턱없이 적은 양만 나왔다.”

몸통을 반으로 쩍 가르자 곱디고운 흰 살이 찬란한 빛을 발산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최씨가 응축된 외마디를 지른다. “응응!!” 힘껏 민어의 등뼈를 도려낸다. 성인 팔만한 길이다. 뼈는 단단하고 크다. 힘이 필요하다. 임산부나 기력이 쇠한 이들에게 좋다는 민어탕의 재료다. 뼈를 폭 끓여야 마치 오래 끓인 사골처럼 진한 맛이 나온다. 등살을 오려내자 최씨가 “두께 한번 봐라” 말한다. 1㎝ 정도다. 도톰하고 담백한 민어회 맛이 여기서 나온다. 등살은 전이나 탕의 재료도 된다. 주로 회로 먹는 뱃살은 더 고소하다. 등살, 꼬리살, 뱃살, 늑간살 등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민어의 배를 가르자 내장이 쏟아진다.

얼추 1시간이 넘어간다. 최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는다. “처음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워낙 크니깐! 생선처럼 안 보이기도 했다. ‘정성’을 담아 칼질하니깐 나아졌다.” 껍질 손질에 들어가자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이건 정말 우리 집만 있다.” 껍질은 보통 데쳐서 쫄깃한 맛을 즐긴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부위는 껍질이 아니다.

민어 껍질에 붙은 살을 최문갑씨가 잘라내고 있다.

껍질과 딱 붙어 있는 살을 살살 긁어내자 모눈종이와 진배없는 얇은 살이 돌돌 말려 나온다. “여러 번 실패하다가 발견한 거다. 좌절 끝에 얻은 성과다.” 미식가로 알려진 유명 패션디자이너에게 껍질 밑살을 맛보게 했더니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자고로 생선은 머리에 붙어 있는 살 맛이 최고라 했다. 볼살, 이맛살은 활어인데도 몇 시간 숙성한 선어의 고소한 풍미가 풍긴다. “생선은 8시간 이상 숙성시킨 게 맛있다.” 해체 작업은 꼬박 2시간40여분이 걸렸다.

민어는 생선 중의 생선

해체된 민어는 전날 전남 신안군 안마도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다. 어부 강성준(55)씨가 주낙 방식으로 잡은 거다. 여러 개의 낚싯바늘에 새우를 끼워서 바다에 깔아두면 민어가 덥석 문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잡는 방식도 달라진다. 빨라지면 유자망 등으로 잡는다. 주산지로 유명한 곳은 신안군 임자도와 서남해안 일대다. 임자도 타리파시는 일제강점기에 유명했다.

전국에서 수백명의 어부와 어선들이 고가로 일본에 팔려나가는 민어를 잡으러 몰려왔다. 돈이 몰리다 보니 홍등가나 술집들이 들어서고 일본에서 게이샤가 원정영업도 했다고 한다. 흥청망청 불야성이었다. 몰려든 민어 떼가 밤새 울어서 주민들이 잠을 설쳤다는 얘기도 내려온다. 지금은 파시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매년 7월쯤이면 임자도에서는 민어축제가 열린다. 신안갯벌낙지영어조합법인 대표 양태성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오는 이가 많다. 우리 지역 대표축제인데 전국에서 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한다.

민어맑은탕.

민어의 민자는 ‘民’(백성 민) 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일반 백성들보다는 왕이나 고관대작들이 즐긴 고급 생선이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 밥상에도 민어자반이 등장한다. 숙종 때도 일화가 있다. 숙종은 여든이 된 우암 송시열에게 장수를 축하한다면서 민어 20마리와 조기 300마리를 하사했다. 송시열은 당대 최강 정치세력인 노론의 영수였다. 최대 정치계파의 우두머리에게 왕이 아부를 한 셈인데, 당시 민어의 가치를 알 만하다.

민어회.

민어가 금값인 이유

요즘도 민어는 금값이다. 민어 중간상인 도청수산 대표 김양조씨는 “작년에는 1㎏당 5만~6만원 했다. 지금 4만3000~4만8000원대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데 초복에는 6만~9만원대로 오른다. 제일 상급은 8~12㎏짜리로 1㎏당 1만~2만원이 더 비싸다”고 한다. 1㎏당 2만원대가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격이 출렁거리는 이유는 민어의 저장성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동하면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서부 아프리카 어장에서 어획한 민어가 유통되거나 중국산 점성어가 민어로 둔갑하기도 한다. 2000년대 초 남해수산연구소 등지에서 민어 양식이 시도된 적은 있지만 지금은 거의 하는 곳이 없다. 양식 민어가 자연산 민어에 비해 맛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 이른 더위로 보양식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름보양식으로 일품이 민어탕(찜)이요, 이품은 도미탕(찜)이요, 삼품이 개장국이란 말이 있다. 12월께 제주도와 사천시(삼천포) 앞바다 등지에서 민어가 잡히지만 산란기를 앞둔 6월 말에서 9월이 제일 맛이 좋다. 수심 40~120m 바다, 펄(점토) 갯벌인 곳에 주로 서식하는 민어가 제철을 맞았다. 자고로 맛은 식재료가 80%, 요리사의 솜씨 20%라 했다. 해체를 끝낸 최문갑 사장은 “무조건 우리는 재료로 승부한다. 전남 신안에서 잡은 대어만 취급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참고 <천년의 밥상>, 국립수산과학원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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