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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유승민 중 누가 승자인가?

박근혜와 유승민의 건곤일척 승부에서 패자는 없다. 두 사람이 모두 승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얻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조금 먼 미래를 얻었다. 자칫하면 새누리당이 일본의 자민당처럼 장기집권할지도 모르겠다. 야당이 지금 유승민 걱정하고 응원할 때가 아니다.

  • 이태경
  • 입력 2015.07.09 05:41
  • 수정 2016.07.09 14:12
ⓒ연합뉴스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퇴임사는 비장하고 처연했다. 그가 한 유일한 잘못은 스스로를 전제군주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것 뿐이다. 역린을 바꾸어 말하면 심기다.

유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대죄를 지었다. 그 대죄들을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자기 발로 서려고 한 죄,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고 한 죄, 대통령과의 관계를 주종이 아닌 동지로 여긴 죄, 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대한민국을 꿈꾼 죄. 절대군주에게 대죄를 지은 자가 무사할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유 전 원내대표는 세상이 좋아져서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거나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 같은 재앙은 면했다.

박근혜 VS 유승민의 싸움은 처음부터 승패가 자명했다. 관건은 유 전 원내대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질서있는 퇴각을 할 수 있을지였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무려 2주를 버텼고, 질서 있는 퇴각에도 성공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패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박 대통령은 눈엣가시 같던 유승민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새누리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김무성 대표를 굴복시켰으며, 차기 공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했다. 어차피 박정희교 신도들 덕분에 대통령 지지율은 30%아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얻을 건 다 얻고 달리 잃을 것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승자다.

그렇다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패자인 것도 아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가 된 이후 보인 행보와 대통령과의 맞짱을 통해 품격있는 개혁보수의 아이콘으로 비상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헌법을 존중하는 법치주의자, 의회주의자, 원칙론자, 따뜻하고 공정한 시장경제론자 같은 이미지들을 획득했다. 여느 정치인은 평생 가야 하나도 얻기 힘든 정치적 자산이다.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개혁보수의 간판이 돼 메인스트림의 정치적 호민관인 새누리당을 이끌어 갈 수도 있다. 더구나 유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으로부터도 면죄부를 받기 쉽다. 유 전 원내대표는 여당 속 야당의 포지션을 완벽히 선점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시절 차지했던 자리다.

정리하자. 박근혜와 유승민의 건곤일척 승부에서 패자는 없다. 두 사람이 모두 승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얻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조금 먼 미래를 얻었다. 자칫하면 새누리당이 일본의 자민당처럼 장기집권할지도 모르겠다. 야당이 지금 유승민 걱정하고 응원할 때가 아니다.

* 미디어오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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