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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후 10년 : 내가 살아있는 이유

ⓒgettyimageskorea

7/7 런던 테러리스트 공격 10주년을 맞아, 허핑턴 포스트 UK는 그 이후 영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인터뷰, 블로그, 심층 기사, 단독 연구로 구성된 특별 시리즈 '폭탄 테러를 넘어 Beyond the Bombings'를 준비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K 뉴스 에디터 자클린 하우스덴의 경험이다.

내 육아 휴직이 곧 끝나게 되어, 화요일에 나는 13개월 된 아들을 전철에 태우고 런던 중심부로 데려가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에 갈 것이다. 아들을 40분 정도 유모차에 앉아 있게 하는 어려움과 몇 시간 동안 떼어놓아야 하는 마음 아픔을 빼면 특별할 것이 없을 일이다. 우리는 여러 번 다녀본 길이다. 내가 10년 전에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일을 했다면 지금 여기에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 날 나는 늦게 일어나서 서둘러 준비하고 아스널 전철역으로 급히 갔다. 보통 나는 앞쪽 차량에 타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겨드랑이들 밑에 서서 가곤 했다. 피곤했던 나는 앞쪽이 아니라 뒤쪽에 있는 차량에 타기로 즉석에서 결정했다. 그러면 어쩌면 자리에 앉아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차가 조금 연착했기 때문에 플랫폼 끝까지 가는 게 더 수월했다. 나는 내가 보통 기다리는 곳에 서 있는 승객들을 잠깐 쳐다보았다. 저기서 타는 게 나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쪽에 타면 홀본에서 센트럴 라인으로 갈아타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었다. 센트럴 라인을 타고 화이트 시티 역으로 가면 내가 일하던 BBC까지 갈 수 있었다.

10분 후, 내가 만원 전철에 서서 출근하던 중, 내 평범한 출근길은 영국의 최악의 테러 공격 중 하나의 현장이 되었다. 엄청나게 큰 쾅 소리와 함께 열차가 흔들렸고, 밝은 흰 빛이 번쩍였고, 열차가 선로에서 떨어져 나와 터널 천장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사방에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즉시 이건 폭탄이라고 생각했다. 패닉으로 가득한 끔찍했던 사건 직후에 다른 승객들은 서로 "그냥 전기 문제일 거야."라고 말하며 서로를 위안하려고 애썼다. 난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유머를 발휘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중 교통망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런던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가 있지? 동시에 나는 우리 중에는 살아서 밖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 우리는 몰랐지만, 불과 몇 미터 앞에는 26명이 쓰러져 죽어있거나 죽어가고 있었고,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았다.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해, 대원들은 찌그러진 열차 문을 비틀어 열고 우리를 으스스한 철로를 따라 킹스 크로스까지 걸어가게 했다.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저널리스트라는 내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아드레날린과 안도감이 온 몸에 번졌고, 나는 아무 승객들이나 붙잡고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서 BBC 웹사이트에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지상에는 피와 유리를 덮어쓴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매표소에, 나중에는 버스에 앉아서 의료진과 경찰들이 우리를 자세히 살피고 이야기를 들을 대까지 기다렸다. 정말 폭탄이었을까? 나는 뉴스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설명했다.

나는 그게 아마 최초로 나온 직접 목격자 보도였을 거라는 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호주에 있는 내 가족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도 그 기사 때문이었다. 회사에 전화를 건 이후, 몇 시간 동안이나 전화망이 다운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기억은 왜곡되고 풍화되었지만, 머릿속에 남은 묘한 일들이 있다. 우리가 멍한 상태로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내 옆의 여자에게 얼굴에 마스카라가 흘러내려 그 날은 '남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그을음이었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마침내 지하철 밖으로 나오는데 열차 반대편으로 날아갔던 내 헤드폰을 다른 승객이 건네 주었다. 얼굴의 더러운 것을 씻으려고 펍에 들어갔다가 바 위의 TV에서 대학살 현장 모습이 나오는 것을 얼빠진 채 서서 바라보았다.

공포와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 다시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 나는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테러는 런던에게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내 조상들은 집에 폭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방공호에 앉아 있었다. 묘하게도 나는 이 도시에 새로운 유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지하철에서 패닉에 빠질 때가 있고, 밀실 공포증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고,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린다. 하지만 나는 부정적인 것이 내 인생을 규정하거나,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도망가고 방향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폭발로 죽을 뻔한지 10년이 지난 뒤 아기를 데리고 시내로 가면 상당히 불안해지겠지만, 동시에 저항하고 있다는 기분도 느끼게 되길 바란다.

허핑턴포스트UK의 A Decade on From 7/7 - Why I'm Still Her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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