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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슈퍼카와 '자동차 혁명'

이번 시제품 섀시 조립에 소요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DM쪽은 그러나 어느 정도 숙련되면 몇 분이면 조립을 끝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탄소섬유관을 이용함으로써 강도와 내구성은 더 뛰어나면서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다. 무게가 기존 섀시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새로운 섀시 덕분에 자동차는 세 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첫째는 높아진 연료 효율이 높아진다. 둘째는 도로 마모율을 줄인다. 셋째는 사고 발생시 치사율을 낮춘다.

  • 곽노필
  • 입력 2015.07.08 08:07
  • 수정 2016.07.08 14:12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슈퍼카 '블레이드'. divergentmicrofactories.com/

한 신생기업이 만든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슈퍼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생기업이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방식을 뒤엎어버리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거대한 자본투자와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기존 방식 대신, 3D프린팅으로 제작한 섀시(차대)를 기반으로 한 분산형 소량생산 방식을 들고 나온 것. 디버전트 마이크로팩토리스(Divergent Microfactories=DM)라는 이름의 이 기업은 이런 방식을 이용해 최근 슈퍼카(성능이 뛰어난 스포츠카) 시제품 '블레이드'(Blade)를 제작해 공개했다.

3D 프린팅 슈퍼카의 가장 큰 특징은 차의 기본 뼈대인 섀시 제작에 값비싼 금형단조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3D 프린팅 방식을 이용해 간편하게 끝낸다는 점이다. 3D 프린팅이란 재료를 층층이 쌓아올리는 식으로 물건을 만드는 적층가공 기술을 가리킨다. 섀시 제작 과정은 이렇다. 먼저 3D 프린터를 이용해, 알루미늄 재질의 이음쇠를 만든다. 이 이음쇠는 섀시를 구성하는 탄소섬유관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업체는 독자 개발한 이 이음쇠에 노드(Nod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다음 레고 블록으로 조립을 하듯, 탄소섬유관들을 이음쇠에 연결시켜주면 섀시가 완성된다. 그 위에 차량 덮개, 엔진을 비롯한 주요 부품들과 각종 전자 모듈을 차례로 장착하면 차량이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D 프린팅 섀시...더 강하고 가볍고 더 질기다

3D 프린팅을 이용해 만든 섀시의 장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음쇠 덕분에 부품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크게 절약했음을 뜻한다. 이번 시제품 섀시 조립에 소요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DM쪽은 그러나 어느 정도 숙련되면 몇분이면 조립을 끝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탄소섬유관을 이용함으로써 강도와 내구성은 더 뛰어나면서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다. 무게가 기존 섀시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기존 차량에 쓰이는 섀시는 보통 1000파운드(453㎏)가 넘는다. 반면 노드 섀시는 약 100파운드(알루미늄 노드 61파운드, 탄소섬유관 41파운드)이다.

새로운 섀시 덕분에 자동차는 세 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첫째는 높아진 연료 효율이 높아진다. 둘째는 도로 마모율을 줄인다. 셋째는 사고 발생시 치사율을 낮춘다.

완성된 3D 프린팅 카의 성능은 말 그대로 슈퍼카 수준이다. 가스와 가솔린 두 종류를 연료로 사용하는 4기통 700마력 바이퓨얼 엔진을 장착해, 출발 2초만에 시속 60마일(약 10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하지만 700마력 엔진이 실현은 가능하지만, 차의 안정성에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차량 총중량은 1400파운드(약 635kg). 기존 슈퍼카가 대략 1톤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3D 프린팅 슈퍼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회사 설립자 케빈 칭거. divergentmicrofactories.com/

전기차 실패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이번에 선보인 차량 제조 방식은 3D 프린팅 방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또다른 신생기업 로컬 모터스(Local Motors)가 지난해 선보인 차와 비슷하다. 하지만 차대와 덮개 모두를 일체형으로 3D 프린팅한 로컬 모터스(로컬 모터스 차 보기)와 달리, 디버전트는 기본 뼈대인 차대만을 3D 프린팅으로 제작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차량의 핵심 뼈대인 섀시 제작 시스템을 차량 제조 플랫폼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다. DM은 "이 플랫폼을 갖추게 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저비용으로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DM이 이런 자동차 제조 방식을 구상하게 된 건 회사 설립자이자 대표인 케빈 칭거(Kevin Czinger)의 쓰라린 실패 경험 때문이다. 칭거는 원래 전기차 제조업체인 코다 오토모티브(Coda Automotive)란 업체의 공동설립자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13년 파산신청을 했다. 값비싼 전기차 제조장비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산업 환경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는 이 경험이 그로 하여금 새롭고 더 유연한 제조 방식을 연구하게끔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동차 제조 혁명의 두 축, 탈물화와 민주화

그는 자신이 고안해낸 방식이 두 가지 측면에서 자동차 제조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는 꿈을 꾸고 있다. 그가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혁신의 하나는 탈물화(Dematerialization)요, 또 다른 하나는 민주화(Democratization)이다.

'탈물화'는 어떤 물건을 제작하는 데 투입하는 재료와 에너지를 최소화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탈물화가 진행될수록 자동차제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줄어든다. 미래 자동차산업에서 탈물화는 왜 중요할까? 세계 경제의 성장과 함께 자동차 생산이 크게 늘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석컴퓨터과학자인 스티븐 에모트(Stephen Emmott)가 2014년 출간한 미래예측서 <100억>(Ten Billion) 개정판을 보면, 1901년 자동차 양산이 시작된 이후 110여년 동안 생산된 차는 약 20억대에 이른다. 하지만 향후 35~40년 동안 만들어질 차는 그 2배인 40억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물량의 차들이 쏟아져 나올 경우 환경과 건강에 끼칠 영향은 충분히 미뤄 짐작할 만하다. 최근 개발돼 나오고 있는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수소차 등은 자동차의 환경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칭거는 그러나 자동차 제조와 운행, 폐차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일생에 걸쳐 발생하는 유해가스 배출량을 고려하면, 자동차 운행 중 배기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운행중에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스가 자동차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와 에너지 제조과정에서 나온다.

미 국립과학원 부회장이자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모린 크로퍼(Maureen Cropper)는 "전통적인 가솔린차를 이야기하든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를 이야기하든, 환경 피해의 대부분은 차의 운행이 아닌 다른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자동차 생산대수가 20억대에서 60억대로 늘어날 경우, 자동차에서 유래되는 유해가스는 3배 이상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연료를 뭘 쓰느냐보다, 차를 만드는 방식 그 자체가 더 큰 환경 문제라는 사실이다.

차량 운행(파란색띠), 연료 제조(노란색띠), 차량 제조(빨간색띠) 각 단계별 환경 피해 정도. 왼쪽부터 가솔린차,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전기차, 플러그인 전기차 suv.

따라서 자동차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와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탈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국립과학원의 2009년 보고서 <에너지의 숨은 비용: 에너지 생산과 이용의 비가격적 결과>는 탈물화가 왜 필요한지를 잘 설명해준다. 이 보고서는 자동차 이용의 다양한 단계, 즉 차량 및 연료 제조, 차량 운행에서 비롯되는 건강 및 환경 피해를 추정한 것인데, 이를 보면 운행중 배출되는 가스는 전체 배출량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솔린이나 전기 같은 자동차 구동 방식에 초점을 맞춘 혁신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전자분야의 아두이노처럼...카두이노를 지향한다

다른 하나의 혁신은 자동차 제조의 민주화이다. 이는 대자본, 대기업이 아닌 소기업, 소자본으로도 복잡한 차량 구조물을 얼마든지 설계하고 제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칭거의 목표는 공통의 플랫폼을 전 세계 소기업들에게 공급해, 실력 있는 소기업들 스스로 작은 공장을 세워 각자 개성있는 자동차를 조립,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칭거는 탈물화를 하려면 먼저 제조 방식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선보인 3D 프린팅 섀시가 바로 그 자동차 탈물화와 민주화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칭거는 믿는다.

이는 전자기기 분야에서 아두이노(ARDUINO)가 발휘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것이다. 아두이노는 겉모습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복잡한 마이크로 컨트롤러(micro controller)를 내장한 모듈형 기판을 가리킨다. 아두이노 덕분에 사물인터넷, 홈 오토메이션 등의 분야에서 첨단기술제품 다수가 대기업이 아니라 소기업, 신생기업에서 개발돼 나올 수 있었다. 칭거는 "디버전트 마이크로팩토리스에서 우리는 자동차 분야의 아두이노, 이를테면 카두이노(CARDUINO)를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 실체가 바로 노드(이음쇠)이다. 그는 이 단순한 도구가 숱한 소기업들로 하여금 스포츠카에서 픽업트럭에 이르는 다양한 차들을 설계, 제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섀시를 구성하는 노드와 탄소섬유관은 배낭 속에 쏙 들어갈 정도로 단출하다. 자동차 산업이 중후장대형 산업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다.

3D 프린팅 노드는 큰 가방 안에 쏙 들어간다. divergentmicrofactories.com/

설비투자 규모는 기존 공장의 50분의 1이면 된다

전통적인 자동차 공장을 세우려면 수억달러(수천억원)가 들어간다. 그러나 DM은 새 방식의 공장은 2천만달러(2백억원) 안쪽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노드 제조방식을 더 개선하면 5백만달러 안쪽에서도 마이크로공장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물량은 기본적으로 소량생산 방식이지만 한 해 1만대까지는 너끈하다.

피시가 컴퓨터 산업을, 아두이노가 전자산업을 민주화시켰듯이 이들은 노드라는 방식을 통해 자동차산업을 민주화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수천개의 작은 기업들이 나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동차산업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칭거는 첫 사례가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슈퍼카 '블레이드'라고 말한다. 이 업체 계산에 따르면, 블레이드는 가스 배출량은 전기차(85kWh)의 3분의 1, 설비투자는 5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중량대비 출력은 이탈리아의 슈퍼카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의 2배이다.

divergentmicrofactories.com/

DM은 일단 전 세계 예비 혁신기업가들에게 시범 모델을 보여줄 작정이다. 18개월 안에 1천만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직접 생산공장을 짓고 차량을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자신들의 혁신 아이디어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직접 보여주고 평가받겠다는 얘기다. 그런 다음 이를 토대로 전 세계의 자동차 혁신기업가들에게 노드 플랫폼 시스템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그 구상대로 3D프린팅을 활용한 노드 플랫폼이 자동차 제조의 탈물화, 민주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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