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요리 성적은 1등이죠"...‘셰프의 꿈' 키우는 아이들

‘쿡(cook)방’의 인기로 대중 스타의 반열에 오른 최현석 셰프는 고졸 출신의 비유학파다. 유명 셰프 대부분이 유학파 엘리트라는 점에 비춰 ‘국내 실력파’라는 호감도가 더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청소년들에게 ‘제2의 최현석’이 되는 길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요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려운 환경인데다, 관심이 있다 해도 주방의 알바생 경험으로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돌봄 없이 자랐거나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배회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셰프의 꿈’을 키우는 곳이 있다. 사회적 기업 ‘오가니제이션 요리’(이하 오요리)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년제 요리 대안학교 ‘영셰프스쿨’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2010년 3월 개교한 이 학교는 올해 6기 신입생을 받았다. 초기(1·2기)엔 학교라는 틀이 갖추어지기 전 프로젝트 방식으로 운영했다. 3·4기 때는 각각 1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5기는 올해가 2년차 과정이다. 매년 12명을 선발해 전일제로 교육하고 있다.

‘영셰프스쿨’의 커리큘럼은 일과 학습을 병행하면서 현장 인턴십을 체험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1년차엔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안에 위치한 ‘영셰프 밥집’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요리 실습교육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요리 인문학, 요리 감성학, 도시 농사 등 요리와 관련한 학습도 병행한다. 2년차부터는 외부 현장 실습이다. 홍대 카페슬로비, 제주슬로비, 성북슬로비,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등 실제 식당 주방에서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홍대·제주·성북의 ‘슬로비’ 체인점은 오요리가 설립한 ㈜슬로비생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다. 주요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사용하고, 로컬 식재료로 메뉴를 개발한다. 이들 슬로비의 수익금이 ‘영셰프스쿨’의 운영비로 지원된다. 슬로비는 ‘느리지만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슬로비 영셰프스쿨은 요리 배움터인 동시에 건강한 일터이기도 하다. 특히 제주슬로비의 경우엔 영셰프스쿨을 수료한 3기 출신 2명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서 만들고 직접 운영하고 있는 로컬푸드 레스토랑이다. 이들 영셰프는 직접 로컬 식재료로 메뉴를 개발하기도 하고 지역의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함께 나누며 생활한다. 3기 졸업생들이 1년 반가량 일을 했고, 지금은 영셰프 출신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워 일하고 있는 ‘순환 일터’다. 영셰프스쿨엔 부모가 없는 시설 청소년, 가정폭력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 대학 입학을 거부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청소년 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모인다. 수료 뒤 곧바로 레스토랑에 취업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며 고등학교로 돌아간 친구, 요리를 더 깊게 공부하겠다며 유학을 떠난 친구 등 진로 역시 다양하다.

영셰프스쿨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자신의 밥상을 스스로 차리는 법을 배운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밥상을 차려주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은 요리를 통해 자립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한영미 오요리 대표는 “영셰프스쿨에서는 취업을 위한 요리 기술에 앞서 자립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고 강조한다.

해외에도 요리를 통해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피프틴’(Fifteen)과 베트남의 ‘코토’(KOTO)가 대표적이다. 피프틴은 스타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가 만든 레스토랑이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2002년 런던에 문을 열어, 15명의 견습생이 25명의 전문 셰프에게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피프틴에서는 12개월의 견습 기간 동안 요리 실습과 함께 식재료의 원산지를 직접 방문해 생산 과정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의 사회적 기업 코토는 돌봄이 필요한 거리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요리 기술과 사회에서 자립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형 레스토랑’이다. 지금까지 1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설립자인 지미 팜 대표가 학대받고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을 보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 어머니에게 빌린 돈으로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차린 것으로 시작됐다.

이들 사회적 기업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터라는 현장에서 아이들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책임있게 일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돕는 데 있다. “노동자로 시작해서, 기술직으로 점점 익어가다가, 예술직으로 전환하라.” 최현석 셰프가 그의 첫번째 요리책에서 후배들에게 건넨 조언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요리 #셰프 #교육 #학생 #사회적기업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