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힐러리 클린턴 긴장시키는 버니 샌더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개혁하고, 1% vs 99%의 불평등 현실을 바꾸자는 월가점령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 독점적 금융구조를 해체하고 권력자들을 추방할 것 같던 캠페인은 무참하게 좌절됐다. 그 많던 '점령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을까. 샌더스에 대한 지지열풍이 월가점령운동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의 보상심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상위 1%가 하위 90%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누구도 옹호하기 어렵다"는 샌더스의 언명은 그때 뉴욕의 주코티 공원을 가득 채운 좌절한 희망에서 발화하고 있다.

  • 고광헌
  • 입력 2015.07.06 10:40
  • 수정 2016.07.06 14:12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의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73살인 샌더스는 지난 1일 위스콘신 메디슨 베테랑스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열린 첫 집회에서 1만 명의 지지자들을 불러들였다. 무명이나 진배없는 샌더스로서는 대성공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쟁자가 없어 싱겁게 끝날 것 같던 민주당 경선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언론의 조명이 샌더스 캠프를 눈부시게 밝히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앞서 뉴욕에서 열린 자신의 대선 캠페인 발대식에서 5천5백여 명을 불러 모았다. 공화당의 선두주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3천여 명이 찾아왔다. 샌더스는 그간의 정치적 지명도나 인적 네트워크에서 클린턴이나 부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대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그 둘보다 2, 3배 많은 지지자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미국언론들이 그 이유를 찾아 26년 동안의 샌더스 정치를 찾아 나섰다.

6월 27일 미국 뉴햄프셔주 내슈어에서 연설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그의 정치적 자산과 매력은 진보의제에 있다. 26년의 정치인생을 진보적 의제의 법제화에 바쳤다. 유권자들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다. 샌더스에게 '미국의 적'은 독점금융 권력의 성역인 월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개혁대상으로 꼽혀오다 어느덧 사라진 의제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변화시켜야 할 정치적 화두다. "대형은행을 해체하고 조세제도를 개혁해 극소수 재벌에 편중돼 있는 부를 중산층과 빈곤층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그의 진심이 공감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더 큰 비전은 대형은행 등의 국유화를 염두에 둔 듯한 그의 정치적 상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금융기관의 개혁을 통한 부의 재분배와 의료, 교육 개혁은 상시적 고용불안과 저임금, 저복지 상태의 유권자들에게는 복음과 같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빨갱이 타령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개혁하고, 1% vs 99%의 불평등 현실을 바꾸자는 월가점령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 독점적 금융구조를 해체하고 권력자들을 추방할 것 같던 캠페인은 무참하게 좌절됐다. 그 많던 '점령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을까. 샌더스에 대한 지지열풍이 월가점령운동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의 보상심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상위 1%가 하위 90%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누구도 옹호하기 어렵다"는 샌더스의 언명은 그때 뉴욕의 주코티 공원을 가득 채운 좌절한 희망에서 발화하고 있다.

샌더스의 돌풍은 과거 제3 후보로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개혁당의 로스 페로 후보나,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와도 다를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자발적 충성도가 남다르다. 정치자금 모금과정도 힐러리 클린턴이나 젭 부시와 다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샌더스는 지난 4월 29일 공식출마 선언 이후 약 1천5백만 달러(1백6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후원금을 낸 지지자들은 40여 만 명. 고액후원자는 거의 없다. 99%가 2백50달러 이하에, 1인 당 평균 34달러(3만5천원)를 후원했다.

6월 26일 미국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힐러리 클린턴.

클린턴은 4월 이후 세 달 동안 4천5백만 달러를 모금했다. 샌더스보다 3배가량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하면 풀뿌리 서민들의 참여가 중심을 이룬 샌더스의 모금 결과는 의미가 작지 않다. 마치 지난 2002년 한국의 대통령선거 때 황금돼지저금통장을 통해 모금과 지지운동을 펼친 노무현 후보의 캠페인과 닮았다. 재미언론인 김현 씨는 "노무현 후보 캠페인과 유사하다"며 "민주당 내 진보의 상징 엘리자베스 워런이 러닝메이트로 나서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또 샌더스가 "사회주의를 이상이 아닌 현실로 보여주는 인물 같다"며 클린턴의 네트워크와 돈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클린턴과의 지지율도 많이 좁혔다. 샌더스는 지난달 초 위스콘신주에서 행한 스트로 폴에서 지지율 41%로, 클린턴(49%)과 차이를 8%로 줄였다. 같은 달 중순 뉴햄프셔 주민 대상 2개 설문조사에서는 각각 31%와 32%를 얻어 클린턴(41% 44%)과 차이를 10%대로 유지했다. 샌더스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이민 온 유대인 2세 정치인으로 개혁적 유대교 신자다. 낙태와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노조를 육성하고 시간당 15불까지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성평등과 대학 무상교육, 보편의료 정책도 유권자들의 눈길을 붙잡는 요인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국제 #고광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