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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엔 패션 파시스트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벼락 같은 계시를 받았다. 지난달부터 우리 사무실의 한 동료가 평소 좋아하던 AC/DC(호주 출신의 록 밴드)의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괜찮을 텐데 하루는 그날따라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에 긴 양말을 신고 슬리퍼로 온종일 사무실을 누볐다. 그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저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중얼거렸다.

  • 박세회
  • 입력 2015.07.03 10:50
  • 수정 2016.07.05 14:12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허핑턴의 뉴스룸은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다. 졸리면 가끔 자기도 하고 조금 늦는다고 해도 크게 뭐라 하는 일이 없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아주) 조금씩 늦기 때문이다. 빅뱅 인터뷰 좀 잡아오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고, 에디터가 정말 의미가 있다고 설득할 수만 있다면 자기 아버지를 인터뷰한다고 해도 오케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전체주의적인 압박을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허핑턴의 뉴스룸엔 '패션 파시스트'가 있다. 처음에는 마치 일반인인 것처럼 조용히 숨어 지냈던 것 같지만 내가 조직에 들어가자 본색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난 항상 패션 테러리스트니까. 우연히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건 지난달이었다.

6월 12일, 나는 우리 집 세탁기와 의사소통을 잘못하는 바람에 아끼던 스니커즈 두 개를 삶아버렸다. 운동화를 좀 더 깔끔하게 빨아보고 싶은 마음에 '삶음' 버튼을 눌렀는데 나는 그게 문자 그대로 삶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따뜻한 물로 세탁한다는 뜻이겠거니 생각했다. 세탁기가 물을 끓인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하여튼 몇 시간 후 세탁기를 열어봤을 때 따뜻하고 축축한 나의 운동화는 밑창이 온통 뒤틀리고 실밥이 다 터진 채 늘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운동할 때 신으려고 사놨던 뉴발란스를 꺼내 신고 출근했다. 나는 꺼내놓고 이렇게 생각했다.

'흠, 운동하려고 산 거지만 나쁘지 않은데? 역시 여름은 하늘색과 주황색의 계절이지."라고.

그런데 그 파시스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같이 담배를 피우러 가서는 내 신발을 물끄러미 보더니 "신발 좀 예쁜 걸로 사지!"라고 소리를 쳤다. 아니, 내 신발이 뭐가 어때서? 그래서 그 파시스트의 신발을 봤더니 하얀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발끈했다. "선배가 신고 있는 건 고등학교 때나 신던 실내화 아녜요? 패션에 신경 좀 쓰세요!"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 돌아섰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좀 전의 상황을 곱씹어보니 더 화가 났다.

몰래 찍은 패션 파시스트의 신발과 나의 뉴발란스.

생각해보니 그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올겨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린트 셔츠(돛단배 모양이 군데군데 찍혀있는)를 보고는 '제발 셔츠는 그냥 단색으로 입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단색을 좋아하나 보다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스머프가 프린트된 내 반소매 셔츠를 보곤 '개그냐?'고 묻기에 그냥 '아닌데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게 비꼰 거였을 줄이야.

그래서 나는 그 파시스트의 정체를 확실하게 파헤치기로 했다. 자기 입으로 패션 파시스트라는 걸 시인하게 하기 위해 며칠을 연속으로 프린트 셔츠만 입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밴드 스피츠의 로고가 새겨진 감색 셔츠, 루이 CK의 얼굴이 찍혀있는 남색 셔츠, 똘똘이 스머프가 복부 전체에 그려져 있는 네이비 블루 셔츠, 커다란 고양이가 수 놓여 있는 짙은 청색 티셔츠를 번갈아 일주일 정도 입고 가자 드디어 파시스트는 더는 자신을 숨기지 못하고 또다시 감정을 드러냈다.

"제발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하얀색이나 검은색 단색 셔츠를 입어!"

옳다구나. 걸렸다! 이 패션 극단주의자. 아마 다른 모든 사람은 몰라도 이 글을 보는 그 사람은 자기라는 걸 반드시 알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일이 공론화된다면 당시의 상황에 대해 우리 남현지 에디터가 권력에 굴하지 않고 증언해 줄 거라 믿는다. 이제 이 패션 파시스트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나 하나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패션 파시즘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2015년 한국의 패션 전체주의는 정말이지 심각한 수준이다. TV가 그 증거다. 몇 번 인터뷰하는 바람에 애정이 생겨 매번 챙겨보던 <비정상회담>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선 정말이지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기획을 했었다.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의 이성주의자 일리야와 천재 게이머 출신의 기욤 패트리를 '패션 바보'로 만들었던 사건이다. 그 화에서 제작진들은 두 사람의 옷장을 스튜디오로 들고 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끔찍한 수치심을 안겨줬다. 멀쩡한 옷을 잘만 입고 다니는 성인 남성에게 그런 수치심을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나의 가슴이 어찌나 아프던지 당장 상암의 JTBC 사옥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소고기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패션 파시스트들은 우리 패션 테러리스트들을 매우 괴롭게 한다. 현재 나는 아침에 어제 입었던 티셔츠를 입어선 안 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매일 티셔츠를 골라 입어야 하는 고통을 하루하루 참아내고 있다. 이런 압제 속에 계속 살 순 없었다.

패션 테러리스트들의 도원 결의.

그러던 어느 날벼락 같은 계시를 받았다. 지난달부터 우리 사무실의 한 동료가 평소 좋아하던 AC/DC(호주 출신의 록 밴드)의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뿐이라면 괜찮을 텐데 하루는 그날따라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에 긴 양말을 신고 슬리퍼로 온종일 사무실을 누볐다. 그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저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중얼거렸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들어 입을 손으로 막아야 했다. 패션 파시스트의 압제에 시달리는 동안 나도 어느새 다른 이의 옷차림을 비난하는 패션 파시스트가 되어있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그의 복장을 훑어보며 저건 저 사람의 취향이니 존중해줘야 한다며 나 자신을 달랬다. 스머프 티셔츠를 입고 AC/DC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가여워했다. 인생은 가끔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교훈을 던져주곤 한다. 아, 패션 테러리스트인 나도 누군가에겐 패션 파시스트가 될 수 있구나. 파시스트와 테러리스트는 종이 한 장 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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