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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수사, '청와대 지침'대로 끝났다

  • 허완
  • 입력 2015.07.02 16:18
  • 수정 2015.07.02 16:25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수사 결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이 2일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재판에 넘기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며 대대적으로 수사팀을 꾸린 지 82일 만이다. 그러나 결론은 수사 초기에 ‘예상된 범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수사팀의 칼끝은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 앞에서 번번이 무뎌졌다.

수사팀은 이 전 총리를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보선에 나선 2013년 4월 성 전 회장한테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홍 지사를 옛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2011년 6월께 성 전 회장의 측근을 통해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에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팀은 리스트에 적혀 있는 8명 가운데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제외한 6명은 모두 무혐의 또는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리스트나 성 전 회장의 언론 인터뷰 내용에 부합하는 증거가 없거나, 돈을 줬다는 시점이 공소시효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성 전 회장은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 7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홍문종 2억, 유정복 3억, 이병기, 이완구’라고 적은 메모를 남겼다.

고 성완종 전 회장이 남긴 메모.

관련기사 : 성완종리스트 : 특별수사팀이 밝혀내야 할 5가지

수사팀은 또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73)씨가 2007년 말 성 전 회장 쪽에서 특별사면 청탁과 함께 그 대가로 5억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사실을 확인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판단에 따라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성 전 회장한테서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됐으나 출석 요구에 불응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재배당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성 전 회장한테서 2억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는 김근식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에 대한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리스트 속 인물들 가운데 2명만 처벌 대상이 된 데 대해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예견된 부실 수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공여자가 숨진 상황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친박’ 실세들 쪽으로는 수사가 한발짝도 더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이 전 총리와 홍 지사 외에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만 소환조사했고, 김기춘·허태열·이병기 전·현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서면조사만 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시도하지 않고, 해명을 듣는 데 주목적이 있는 조사에 그친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8인. (왼쪽 윗줄부터 이완구 국무총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서병수 부산시장,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애초 수사의 본류로 지목됐던 2012년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팀은 “대선자금 부분은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며 ‘털어주기’를 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조직)본부장을 맡았잖아요”라며 “조직을 관리하니까 내가 한 2억 정도 이렇게 현금으로 줬다.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 말한 바 있다. 수사 결과는 결과적으로 청와대나 여당의 ‘기대 수준’에 맞춘 셈이 됐다.

더욱이 수사팀은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성 전 회장 특별사면 의혹과 관련해 참여정부 쪽 인사들을 조사하며 여권의 ‘물타기’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사팀은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의 공소시효(7년)가 지났는데도 노건평씨가 사후에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기소를 적극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 등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선을 그은 것과 대조적이다. 막판에 김한길 전 대표에 대해 공개수사에 나서면서 ‘친박 실세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라는 사건의 파장이 희석되는 효과도 낳았다.

결과적으로 친박 실세들을 피해간 이번 수사 역시 ‘청와대의 가이드 라인’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15일 세월호 1주기 관련 현안점검회의에서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문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일”,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부패 문제를 뿌리뽑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개혁을 이루는 두가지를 제대로 해내는 게 우리의 소명이자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 3명과 총리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을 여야 구분 없는 정치개혁 문제로 치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같은 달 28일 “고 성완종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별사면에 대한 수사를 직접 공개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는 또한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민감성이 컸던 다른 사건들의 처리 결과와 맥락이 닿는다. 검찰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한테 돌려 정부 책임론을 희석시킨 바 있다. 지난해 연말 불거진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은 수사 끝에 ‘청와대 문건유출’로 사안의 성격이 바뀌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이 곤혹스러워하는 사건들에서 잇따라 구원투수로 등판한 모양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부가 검찰을 이용하는 방식이 편파적이고 노골적이다.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리란 점은 충분히 짐작하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이 원한 모습 그대로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검찰 중간간부는 “수사팀이 예측 가능한 수사 범위 안에서만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상황 돌파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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