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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수상한 '전기 할인 판매'

부풀려진 수요예측 기준에 따라 신규설비투자가 이뤄지면서 발전소는 이미 공급과잉 상태다. 올해는 한계피크가 없이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전력생산비용이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가동을 중단하는 민간발전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번 '전기 할인 판매'가 "원자력발전소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 또는 "민간발전사의 수익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gettyimagesbank

정부가 22일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택용은 7~9월 세달 간 누진단계 4구간(월 301~400kWh)에 3구간 요금을 적용하고, 산업용은 8월 1일부터 1년 간 토요일 요금을 인하한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으로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원료비용이 낮아지면서 한전이 1조원 넘는 흑자를 기록했고, 이 같은 영업성과를 소비자인 국민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요금을 인하한다고 밝혔다.

한 푼이라도 깎아준다면 환호가 나와야할 텐데, 오히려 원칙 없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 여론이 만만찮다.

그간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첫 번째 이유는 전기의 요금이 원료 가격보다 싸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막으면서, 2차 가공품이 원료보다 싼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발전사의 적자는 고스란히 부채가 됐다. 그나마 최근 유가 하락과 드문드문 전기요금을 올린 덕에 원가회수율이 향상되었다고는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유류나 가스에 비해 전력의 상대가격이 저렴해서, 전기 소비가 늘어나고 과도한 전기화를 촉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10여년 사이 웬만한 난로나 라디에이터 자리는 시스템에어컨이 차지했다. 겨울철 전기장판과 온풍기는 필수품이 됐다. 심지어 용광로까지 전기로 가동하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매년 냉난방 수요가 피크에 달하는 여름·겨울에 번번이 블랙아웃 위기가 재현되고, 이는 또다시 발전소 증설의 알리바이가 된다. 적절한 수준으로의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과도한 전기 수요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수요 증가와 설비 증설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물가 상승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조심스럽게 전기요금 현실화 여론을 형성해왔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조치가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제 무슨 명분으로 요금을 다시 올려야 한다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기업이 수익을 내면 무엇을 할까? 주주에게 배당을 하거나 설비와 R&D에 투자를 할 수 있다. 과도한 부채를 줄이는데 쓸 수도 있고, 판매 촉진을 위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1+1' 프로모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기란 일반적 소비재와 다른 준공공재다. 프로모션으로 소비자가 더 많이 쓰게 해야 할 제품이 아니라, 철저한 수요관리가 필요한 재화다. 흑자가 났다고 전력 수요가 높은 7~9월에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요금 인하책을 쓴다는 것은 업종의 특성 자체를 망각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위축된 소비에 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며 흉흉해진 민심을 일시적으로 달래보자는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전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최근의 일이다. 국제유가 하락 덕이 크다. 부채는 여전히 세 자릿수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박근혜 정부가 강력한 공공기관 개혁을 천명한 후, 대대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추진 중이다. 한전은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를 매각하고, 자사주를 매각하고,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고 있다. 해외 광산 지분 매각 얘기도 나온다. 부채감축 압박에 알짜 자산을 팔아치우며, 결과적으로 공기업의 민영화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의혹마저 있다.

에너지 부문은 경제는 물론 환경, 안보까지 연결된 분야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 그래서 5년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큰 틀을 수립하고, 매 2년마다 보다 상세한 수요예측을 담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에너지·기후변화 대응 흐름에 역행하는 기조와 수요예측 과다 산정 등은 늘 문제로 지적된다.

6월 초 발표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심 기조도 변함없는 원자력 중심이다. 온실가스 감축 차원에서 기 예정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취소하고, 원자력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전력예비율 22%라는 기준을 OECD 주요 국가 수준인 15%로만 낮추면 원전 추가 건설이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 부풀려진 수요예측 기준에 따라 신규설비투자가 이뤄지면서 발전소는 이미 공급과잉 상태다. 올해는 한계피크가 없이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전력생산비용이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가동을 중단하는 민간발전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번 '전기 할인 판매'가 "원자력발전소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 또는 "민간발전사의 수익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곧 가동 예정인 경주 방폐장의 안전 문제 논란, 신규 원전 부지 선정과 송배전망 증설 과정에서 불거졌던 사회적 갈등의 기억까지 어우러져, 에너지 정책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메르켈 총리의 탈핵 선언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과감한 선택을 부러워했다. 단계적 원전 폐쇄와 신재생에너지 비율 확대,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전기요금 인상을 국민들과 산업계가 감내하면서 '탈핵'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선 실현가능한 정책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독일의 이런 '에너지 전환'이 하루아침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70년대 반핵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시민사회의 역량,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을 통한 탈핵 구상의 정책화,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 환경 정책 목표를 추구하는 에너지 정책'이라는 개념이 후속 정부에서도 유지되며 신뢰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이다.

글_ 최해선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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