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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퀴어,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한복판 밝은 거리에 남자끼리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자유의 만끽 수준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버스에서, 주변 건물에서, 길거리에서 우리의 행진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더 반갑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거리로 나서자 우리를 인정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청부터 명동까지 거대한 무지개 띠를 만들며 걷는 건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한 시간을 위해 짧게는 몇 달 동안 혐오 세력에 맞서 싸울 힘이 필요했고, 길게는 지난 열다섯 번의 축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한 시간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 김게이
  • 입력 2015.07.01 06:38
  • 수정 2016.07.01 14:12

지난 한 주간 이른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남편과 나는 예전부터 성수기가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여름 휴가를 다녀오는 편이었는데, 이 년 전 결혼식을 올린 것도 이때쯤이다 보니 올해도 나름대로 결혼을 기념하며 휴가를 다녀왔다.

일주일의 꿀 같고 꿈 같은 휴가를 다녀온 우리는 한국에 떨어진 순간부터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시간 단위로 패닉 상태에 진입해 가고 있었다. 일주일 간 받은 모든 마사지의 효과는 월요일 주간보고를 떠올린 순간 모두 휘발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 상태가 이렇게 메롱이라고 한들 일 년에 한 번 있는 퀴어문화축제에 어떻게 빠질 수가 있나. 더군다나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서울 시청 광장에서의 폐막식과, 시청 주변을 도는 퍼레이드라니. 상상만 해도 꿈만 같은 이 행사에 빠질 수는 없다는 일념 하에 출근 스트레스로 하얗게 둥둥 뜨고 있는 얼굴에 선크림을 처발처발하고 일요일 점심, 시청으로 나섰다.

시청은 지하철역에서부터 이미 북새통이었다. 딱 봐도 우리 팀인 사람들이 요리조리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 옹기종기 다니기도 했지만, 역시 눈에 띄는 건은 다른 팀이었다. 대충 장로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교회에서 오신 분들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치고 박수 치며 권사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아이고, 장로님, 저도 교회 다녀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어그로를 자제하고 던전을 빠져나가듯 지상으로 나가자, 우와. 저 북소리는 대체 뭐야. 무슨 경기장 빌려서 부활절 기념 예배라도 하는 수준으로 모이셨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님들이 사방에 둘러싸 한 마음 한 뜻으로 내 걱정을 그렇게 해주시는 모습에 감격해 도저히 파안대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장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앞 내 바로 옆에 서서 '기다린다 돌아와라' 라고 복식호흡으로 발성하시는 아저씨 앞에서는 무례를 무릅쓰고 면전에서 푸하하 으카카캭 하고 말았다.

광장에 들어선 순간, 수만 명의 퀴어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말 그대로 거대한 무지개. 우리의 동방예의지국, 백의민족의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알록달록 퀴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을까. 내가 평생 본 총합보다 더 많을 것 같은 수의 퀴어들이 대낮에 자기를 드러내고서 모인 모습을 보니, 누가 무엇이 어떻게 이들을 이렇게 모았을까 하는 생각에 신기하다 놀랍다 라는 감흥을 넘어 어떤 신비로움까지 들게 되었다.

뺨에, 팔뚝에, 손등에, 겨드랑이 밑에 하나씩 무지개를 그리고 남남 여여끼리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왁자지껄 부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우리 형의 팔뚝을 잡고 부스 구경을 하고 다녔다. 생각했던 것 보다 세네 배는 많은 규모의 부스들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항상 무지개 분위기만 나면 족족 사 모으는 게 취미인 내 소비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아이템이 천지여서, 빈 채로 들고 갔던 가방은 무지개빛 물건들로 가득해졌다. 아, 성적지향이고 뭐고 상관 없이 그냥 무지개는 항상 옳아. 구글의 무지개 티셔츠를 사지 못한 게 한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고 또 걱정한 몇몇 부스 몇몇 사람도 직접 봤지만, 그 의도와 표현 방법, 수위 수준에 대한 판단을 떠나, 나와 우리 형은 축제 안에서 충분히 즐기고 함께했다. 워낙 여성의 보물을 무섭게 생각하는 나라서 보물모양 쿠키나 그림을 비록 똑바로 쳐다보진 못했지만(무서웡 ㅠㅠ), 무슨 성상숭배 금지도 아니고 '보물을 3D 쿠키로 만들다니! 이것은 이번 퀴어 축제의 꼴뚜기야! 망신 조장이야!' 라는 거부감이나 모욕감보다는, 적어도 내겐 축제 한 가운데의 위트와 유머, 발랄한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요 며칠 좀 핫했던 얘수님이 나중에 알고 보니 아는 형이었다는 건 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나긋나긋 조신조신한 형님이 캐리 브래드쇼 머리를 하고 얘수님이 되다니 덜덜덜.

[얘수님이자 만화가인 변천 작가님 (출처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순교 게이가 되기에 형은 아직 젊어요]

상의 탈의한 근육질 남자분들의 요염한 팝 디바 커버 댄스 공연과 교복 입고 키스신을 보여준 언니들의 합창 등 끊임없이 시청을 들썩이게 만든 공연들을 즐기다 보니 지루할 틈 없이 어느덧 퍼레이드 시간이 되었다. 무대 위 진행자님은 저쪽 팀이 못 듣게 마이크에 대고 귓속말로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가라고 안내를 했는데, 처음에는 웃기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나 계속 그런 걸 보니 진짜로 저쪽 팀을 경계하는 거였다.

7대의 트럭이 순서대로 빠져나가며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또는 취향대로 각각의 트럭 뒤에 따라 붙어 행진하기 시작했다. 광장을 빠져나가는 내내 다른 팀의 북소리와 우리 팀의 꽹과리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는데, 와, 호모와 호모포비아의 소리가, 자부심과 혐오감의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섞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광장의 모습이 신비로웠다면,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춤추고 걷고 뛰는 그림은 훨씬 더 감정적인 움직임을 일으키는 성질의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말하고 보여주는 행진이면서 동시에 이 벅찬 순간을 축하하는 행진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한복판 밝은 거리에 남자끼리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자유의 만끽 수준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버스에서, 주변 건물에서, 길거리에서 우리의 행진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더 반갑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거리로 나서자 우리를 인정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환영과 응원은 가면도 가명도 없는, 태어난 그대로의 우리를 향한 것이었다.

시청부터 명동까지 거대한 무지개 띠를 만들며 걷는 건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한 시간을 위해 짧게는 몇 달 동안 혐오 세력에 맞서 싸울 힘이 필요했고, 길게는 지난 열다섯 번의 축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한 시간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경찰 아저씨들의 튼튼한 사랑 덕분에 저쪽 팀과의 큰 다툼 없이 행진을 마쳤으나, 시청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건 짝사랑만 백만 번쯤 해본 것 같은 프로페셔널 스토커, 여전한 그쪽 팀 사람들이었다. 행진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뒤로하고 다시 광장에 들어서자, 멀리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의 합창 소리가 들렸다.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한국어였는지 영어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멜로디만은 또렷이 들렸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놀라운 은총, 그 소리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은총이 나 같이 불쌍한 이를 구했네.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한때 나는 방황했으나, 지금은 나를 찾았네. 한때 눈이 멀었으나 지금은 보이네.

누군가에게는 이 가사가 '죄 많은 동성애자들이여, 돌아오라, 기다린다, 주님이 은총으로 용서하실지니' 로 들리나 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여운 아들 딸들이여, 고난과 핍박에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고 용기를 가져라' 로 들린다. 지난주 미국의 대통령이 혐오 범죄로 살해당한 흑인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이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노래를 따라 부른 모든 이가 나와 같은 생각 아니었을까.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오바마 대통령]

지난 며칠은 침대에 누웠다가도 심장이 두근거려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라운 날들이었다. 미국에선 동성 결혼이 합헌으로 판결이 나고, 우리나라에선 단군 이래 최대의 퀴어 퍼레이드가 있었다. 이삼십 년 뒤 좀 더 게이가 별 게 아닌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가끔 하기도 하지만, 이런 시대에 태어나 이런 일들을 실감했다는 게 놀라운 은총으로 느껴지는 요 며칠이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도 이 시대가 더 빨리 변화하는 것일 수도.

(www.snulife.com에 게시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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