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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에 편승한 왜곡 보도가 부추긴 '허위 분노'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었느냐를 따지는 재판에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났는데, 어떻게 이를 두고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어도 배상 못 받는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실제 판결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맥락으로 보도함으로써 일선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료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게 되었고, 의료계와 정부의 오랜 갈등까지 덧붙여져 묘한 대립구도를 빚기도 했다. 네티즌들 또한 애먼 사법부와 국가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과 분노를 조성한 건 사법부의 판결이 아니라 잘못된 기사였다.

  • 홍형진
  • 입력 2015.07.01 10:39
  • 수정 2016.07.01 14:12
ⓒgettyimagesbank

파이낸셜뉴스가 6월 7일에 송고한 기사 하나가 의료계의 공분을 야기했던 일이 있다. '방역에 동원된 의사, 병 걸려 사경 헤매도 배상 못 받는다'라는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익을 위해 헌신하다 피해를 입은 의사에게 국가가 배상하지 않는 것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메르스가 창궐하던 시점이었던 만큼 금세 공분이 일었다. 기사는 전국의사총연합회 등을 통해 공유되어 빠르게 퍼져나가며 의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네티즌 역시 사법부와 국가를 비판했다.

하지만 실제 판결문을 통해 해당 사건을 살펴보면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건의 경과부터 최종결론까지 모두 차이가 크다. 해서 둘을 비교하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도록 하겠다. 파이낸셜뉴스의 기사를 간략히 요약해서 먼저 전하고 그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방식을 취하겠다.

< 파이낸셜뉴스 기사 요약 >

신종플루가 극성이던 2009년의 일이다. 보건소에서 복무하던 공중보건의 최씨가 방역에 동원되어 환자들을 진료하다 자신도 의심 증상을 보였다. 타미플루를 처방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보건소 2층의 숙소에서 혼절했다. 60여 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약혼녀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병이 심해져 상당한 뇌손상 등을 입었다. 더 이상 의사생활이 힘들어져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2심까지 패소. 국가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복무 대신인 공중보건의로 봉사하다 사고를 당했고, 전염병 예방이라는 공익을 위해 동원되었고, 타미플루 처방 후 경과를 살피지 않았고, 60여 시간 동안 동료들이 찾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되었지만 국가는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판결대로라면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병원의 의사들 역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에 의료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1)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었는가?

판결문에는 기사에 누락된 중요한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최씨는 치과의사로 보건소 내에서 치과진료에 임해왔다는 점이다. 사건 직전 보름가량(9월 1일~16일) 최씨는 총 3명을 진료했고, 해당기간 동안 보건소에 내원한 환자 중 신종플루 감염 환자는 없었다고 한다. 기사는 "최씨가 근무하던 곳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대거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지만 이는 판결문의 내용과 완전히 배치된다. 의심 환자는 있었지만 감염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결문은 밝히고 있다. 따라서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인데 기사엔 이 내용이 쏙 빠진 채 (인정되지 않은) 원고 최씨의 주장만이 담겨 있다.

2) 정말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는가?

최씨의 최종진단명은 신종플루가 아니라 (기사에 언급되지 않은) 급성뇌수막염이다. 제3자 성격의 권위 있는 의료인인 아주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최씨가 당시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당시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거나 신종플루가 원고의 급성뇌수막염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지만 역시 기사에는 누락되었다.

3) 경과를 살피지 않고 소재를 찾지 않은 책임

최씨가 고열 등의 증상을 호소한 건 9월 14일이고 15일까지는 정상적으로 근무를 했다. 16일에 출근하지 않았고 17일 오전 00시 43분에 119구급대원에 의해 발견되었다. 최씨는 이에 대해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책임을 묻고 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아래와 같다.

"신종플루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의료 당국이 뚜렷한 치료방법을 알지 못"했던 현실에서 "타미플루 등을 처방하는 외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으며, "원고에게 신종플루 외 다른 병증, 특히 뇌수막염 등을 의심할 수 있을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최씨는 15일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여 근무하면서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알"렸다. 따라서 최씨가 주장하는 만큼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16일에 출근하지 않았지만 소재를 찾지 않은 것 또한 "사건 지침 등에 의하면 신종플루 의심 증상을 보이는 보건의료인에게는 자가치료 및 외출 자제가 권고되고 있었"음을 근거로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건소의 다른 근무자들로서는 최씨가 지침 등에 따라 숙소에서 자가치료 또는 외출 자제 중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4) 60시간 행방불명?

기사에 언급된 60시간도 의아한 대목이다. 판결문 어디에도 그런 숫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자. 최씨는 15일까지 근무를 했고 17일 00시 43분에 발견되었다. 16일의 24시간과 17일의 1시간을 합치면 25시간이다. 15일에 몇 시까지 근무를 했는지는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만약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했다면 총 31시간이 되고, 정오까지 오전근무만 했다면 37시간이 된다. 뭐가 되었든 60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기사는 어떤 근거에서 60시간이라는 숫자를 계속 언급하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이를 재판부가 인정하고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5) 입증방해 주장

최씨는 또한 자신에 대한 진료기록에 일자, 상병명, 처방내역만 기재되어 있고 상태와 치료 경과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 없다며 입증방해 행위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기재가 허위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기재 내용만으로도 당시 원고의 상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주장은 1심과 2심에 걸쳐 모두 기각되었다.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6) 방역에 동원된 의사, 병 걸려 사경 헤매도 배상 못 받는다?

보았듯 기사가 전한 정황과 실제 판결문에 담긴 정황이 완전히 다르다. 판결문의 내용을 살펴본 지금으로선 기사의 제목이 거의 허황된 수준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었느냐를 따지는 재판에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났는데, 어떻게 이를 두고 방역에 동원되어 감염되어도 배상 못 받는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7) 의료계의 불안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만에. 파이낸셜뉴스가 기사를 통해 보도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안을 유발한 건 오히려 해당 기사다. 실제 판결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맥락으로 보도함으로써 일선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료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게 되었고, 의료계와 정부의 오랜 갈등까지 덧붙여져 묘한 대립구도를 빚기도 했다. 네티즌들 또한 애먼 사법부와 국가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과 분노를 조성한 건 사법부의 판결이 아니라 잘못된 기사였다.

이 기사 정도면 확대해석, 축소해석 수준이 아니라 왜곡에 가깝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날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선동적인 성격도 다분하고. 과연 파이낸셜뉴스가 기사를 수정하고 정정 보도까지 할지 궁금하다. 사죄의 뜻을 담은 기사를 별도로 내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보는데 한국의 언론 생리에선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니면 그만인 동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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