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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이런 엉터리 질문에 투표하면 안 되는 이유

그리스의 현 상황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1. 그리스는 IMF에 오늘(6월 30일)까지 갚기로 한 급한 빚 16억 유로(약 1조 8천억 원)가 있다. 이를 갚지 않으면 그리스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향한 행로를 걸어야 하는 상황.

3. 그리스가 이를 갚으려면 유로그룹에게 받은 마지막 구제금융 분할금 72억 유로를(약 9조원)받아 메꿔야 한다. 그런데, 유로그룹의 구제금융 만기도 30일. 결국 IMF에 빌린돈을 갚으려면 유로 존에 구제금융 연장을 승인 받고 분할금 72억 유로를 받아야 하는 상황.

4. 문제는 구제금융 연장에 대한 그리스와 채권단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 그리스에서 연금 수령 연령을 올리고 조기퇴직을 제한하는 안 등을 최종적으로 제시했지만 채권단은 이에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 인상을 추가적으로 주문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에 치프라스 정부는 '그리스인에게 굴욕감을 주려는 제안'이라며 분노.

5. 결국, 지난 5개월간 4차례에 걸친 그리스와 유로그룹간의 협상이 결렬. 그리스는 15억 유로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지난 27일 '유로그룹의 최종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일지'를 국민 투표에 부쳤다.

6. 현 그리스 치프라스 정부는 빚으로 빚을 갚는 것이 정부부채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결국 연말에 더 가혹한 각서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No'에 투표하라고 독려 중.

7. 7월 5일(일요일)에 국민투표 실시. 그러나 아직 그리스 국민은 채권단과 유로그룹이 제시한 최종안이 뭔지 모른다.

국민 투표를 하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예' 아니면 '아니오' 뿐이다. 그러므로 국민 투표에서 중요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영국에서 독립하고 싶은지를 두고 국민 투표를 했을 때, 질문은 모호하지 않았다. 가톨릭에서 금지하고 있는 이혼을 합법화해야 할지 이탈리아에서 국민 투표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요일에 그리스에서 국민 투표가 시행된다면, 그리스인들은 대체 무엇에 대해 '예'와 '아니오'를 던지게 되는 걸까?

유로그룹 채권단의 최종 협상안은 목요일에야 공식 문서가 아닌 형태로 처음 등장했고, 금요일에 수정되었고, 아직 상정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도 수정 중인 이런 형편없는 제안을 승인하느냐 거부하느냐를 국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이건 정치적인초현실주의다.

그러니 일요일에 던진 '예'와 '아니오'는 사후에야 제시될 질문에 대해 미리 답을 던지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수정안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 했던 특정 제안에 대해 '아니오'로 답하고, 나중에 등장할지 모르는 더 나은 제안에 '예'를 던지라는 것인가? 긴축 정책을 강화하며 유로존에 남아있자는 모든 제안에 대해 '아니오'를 던지자는 것인가? 유로존에 남아있는 것에 '아니오'를 택하라는 것인가?

명확하고 바뀌지 않는 대답으로 '예' 또는 '아니오'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대답에 따라 나중에 질문이 바뀌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투표를 한 그리그 국민이 아니라, 대답을 받은 측이 자의적으로 정할 것이다. 즉, 독일의 메르켈 수상, EU의 장클로드 융커, IMF의 의장, 시장 등등.

이것이 정부가 다시 생각해보고 국민 투표를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협상을 그만두고 국민 투표를 했을 때의 막중한 결과 너머, 우리 모두에게 명확해진 위험 너머에 있는 다른 무엇, 바로 진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이 엉터리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국민 투표가 존재하는 이유인 진짜 민주주의의 의미를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US의 'I Have The Answer. But What Is The Questio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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