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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취약한 공룡의 탄생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삼성서울병원과 메르스

▶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삼성이 운영하는 삼성서울병원이 바이러스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1980~90년대를 거치며 빅5(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의 독과점 체제가 안착됐고, 앞으로 영리병원 등이 허용되면 의료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한국 근현대 의학사를 연구하는 황상익 서울대 교수가 삼성서울병원의 위기를 한국의 의료체제 변화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장면 1 6월11일 오전 ‘국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장

메르스 확산의 ‘2차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우리 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 출석한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 “삼성서울병원이 애초에 (감염 확산을) 막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는 박혜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추궁에 정부의 ‘병원 이름 미공개’ 방침으로 충분한 정보가 없어 대응할 수 없었다며 국가책임론을 내세운 것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 정부가 병원들과도 감염 경로와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감염내과 과장의 답변에 대해,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삼성병원 또는 삼성그룹의 위세를 과시한 것이라는 힐난이 많았지만, 그보다는 감염병 전문가로서의 견해 내지는 소신을 피력한 것으로 여겨진다. 납작 엎드려 적당히 사과함으로써 난처한 처지를 모면하려는 낯익은 장면들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 회의는 메르스 확산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 소재를 가리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였으나 성토와 질책에 가려 진지한 토론이 크게 부족했음은 매우 아쉽다. 그 뒤 삼성병원이 철저하게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인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장면 2 6월17일 오후 충북 오송의 국립보건연구원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입을 꾹 다문 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연신 고개를 숙입니다. 국립보건연구원에 불려와 사실상 ‘질책’을 받은 겁니다. 박 대통령은 투명한 정보 공개와 확실한 방역을 강조했습니다. “하여튼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면, 모르면 대책이 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잘 알리고, 전부 이렇게 해가지고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질책에 송 원장은 죄송하다고 답했습니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방문 도중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을 만나 메르스 퇴치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커밍아웃

조선시대 왕실 주치의인 어의(御醫)들은 진료하던 국왕, 왕비의 상태가 나빠지면 처벌을 받곤 했다.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도 선조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하여 나이 일흔에 1년8개월 동안 평안도 의주로 귀양을 갔다. 하지만 역병(전염병) 관리에 실패했다 하여 의사를 문책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국왕이 자신의 ‘부덕’(不德)을 자책하거나 역병 발생 지역 주민들에게 구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리들을 처벌하는 것이 상례였다.

봉건시대의 왕권국가가 아닌 현대 민주국가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누구든지 그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메르스 방역 실패에는 분명히 삼성병원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정부의 책임은 그 이상이다. 삼성병원의 감염내과 과장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삼성병원장이 정부의 최고책임자에게 머리를 조아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사과할 대상을 잘못 찾았거니와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에게 부당하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연 삼성병원장의 그러한 행동이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을까?

송재훈 원장의 ‘진사’가 있은 바로 다음날인 6월18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때문에 부분 폐쇄된 삼성서울병원 재진 환자들에게 전화진료와 처방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삼성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간절히 바랐고, 반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반대해온, 법이 금지한 ‘원격진료’를 삼성병원에만 허용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즉시 “메르스 확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삼성서울병원이 원격의료 도입을 요청한 것이나, 이를 허용한 보건복지부 모두 국민 상식에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통렬한 자기반성이 부족하다”며 철회를 촉구했고,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삼성서울병원장이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얻은 것이 원격의료 허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항간에는 ‘여름철 세뱃값’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장면 3 6월23일 오전 삼성전자 다목적홀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다목적홀에서 3분간 읽었다. 지난 5월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 확진 판정이 처음 나온 지 한달여 만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에게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쳤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어 “메르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유족, 아직 치료 중인 환자, 예기치 않은 격리조치로 불편을 겪은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환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겠다.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회장은 또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과문에 대해 여러 가지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있지만 가장 주목할 점은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 소속이며, 병원의 최고책임자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자 현재 삼성그룹의 사실상 오너인 이재용씨라는 사실을 널리 밝혔다는 것이다.

공공성의 탈각과 재벌의 진출

이제 삼성서울병원이 탄생하던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1980년대까지 규모로나 진료 수준으로나 대표적인 의료기관은 국립 및 사립 대학병원들이었으며, 국립의료원과 각도의 도립병원들이 뒤를 이었다. 방금 국립대학병원이라고 했지만, 1980년 전후해서 이 병원들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서울대학교병원이 1978년 서울대학교로부터 독립하여 특수법인이 되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그때부터 서울대학교와 별도의 기관이 되었으며, 국립기관이 아닌 정부투자기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의 국립대학병원들도 1980년대부터 순차적으로 국립대학의 부속병원에서 지방공사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렇게 국립대학병원들의 성격이 바뀌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재정적인 이유였다. 요컨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고 독립채산제를 강화한 것이다. 국립의료원과 도립병원들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평균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소득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산 대비 정부의 공공의료기관 지원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었다. 그 결과 인구당 병원 수로나 병상 수로나 한국의 공공의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빈약하다. 사적 의료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미국보다도 더 열악한 형편이다.

이러한 가운데 1990년 전후해서 당시 3대 재벌기업이 병원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9년 6월23일 현대그룹의 서울아산병원(아산사회복지재단 소속)이 문을 열었고, 1994년 9월12일 대우그룹의 아주대학교병원, 같은 해 10월1일 삼성서울병원(삼성생명공익재단 소속)이 개원했다.(아산사회복지재단은 그에 앞서 1970년대 말부터 정읍, 보령, 영덕 등에 100~200 병상 규모의 병원을 개설했다.)

왜 하필 1990년 무렵에 당시 ‘3대 재벌기업’이 대규모 병원을 개설했을까?

먼저 1980년대 들어 의료비, 다시 말해 의료 수요가 크게 늘어난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병원 사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을 재벌기업들이 간파한 것이다. 이처럼 의료비가 급증한 데에는 소득수준의 향상과 건강보험(1998년까지는 의료보험)의 도입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처음 실시된 의료보험제도는 불과 12년 만인 1989년 7월1일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현대그룹의 서울아산병원이 1989년 6월에 개원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이 진료를 시작한 게 1994년이지만 삼성그룹은 1982년 5월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고(1991년 4월 삼성생명공익재단으로 명칭 변경), 1년 남짓 뒤인 1983년 9월 종합병원 사업시행 허가를 얻었다. 삼성그룹이 이 재단을 설립한 주목적은 병원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병원이 메르스 환자 발생과 관련해서 굳이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병원내 감염이 환자들에게 줄 피해보다 감염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환자가 줄어들 것이 더 걱정인 점에서, 다시 말해 의학적 판단보다 경영적 판단이 우선인 상황에서 정부의 비공개 정책에 동조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재벌기업이 병원사업에 뛰어든 또다른 이유는 이미지 개선이나 제고이다. 현대와 삼성그룹 모두 먼저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고 병원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의 석유재벌 존 록펠러(1839~1937)가 자신과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과 비슷한 행보이다. 록펠러 자선사업의 중요한 부분은 국내외에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을 지원한 것이었다. 다만 한국 재벌기업의 병원사업은 자선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록펠러와 다르다. 역설적이지만, 이미지 제고를 위해 설립한 병원이 오히려 감염병 전파의 진원지라는 오명을 얻게 될까 전전긍긍하여 숨기려든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이유로는 다른 사업과의 연계성을 들 수 있다. 특히 삼성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생명보험회사인 ‘삼성생명보험’은 병원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물론 환자의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활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 운영 경험이 생명보험사업의 평가와 계획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당시부터 초현대식 건물, 첨단장비와 시설, 실력 있는 의료진 등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고, 거기에 걸맞게 진료, 연구, 교육 면에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하여 삼성서울병원은 다른 ‘메이저 병원’들과 더불어 한국 최대, 최고의 병원이라는 평가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병원이 되었다. 그런 한편, 병원의 양극화와 독과점이라는 폐해도 심화되었다.

공룡의 혁신은 도움이 될까

이러한 한국 최고의 병원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맞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신종 감염병을 치료하고 방지할 시설, 장비, 인력, 경험의 부족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지만, 더 큰 문제는 거버넌스에 관련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의 실제 소유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은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혁신이 필요한데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나을 것이다. 하지만 오너의 결단과 지시가 있어야만 혁신의 시동을 걸 수 있는 조직이라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장면 2에서 언급될 수 있는 정치권력과의 부당한 결탁과 거래는 누가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가?

삼성생명공익재단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체계적인 사회공익사업을 수행하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설립 목적이 오너의 선의에 의해서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 자체가 공공재인 병원은, 설립 주체가 민간이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든, 그 운영과정이 구성원과 시민사회에 열려 있을 때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은 이것이며, 삼성서울병원의 미래를 향한 출발점도 바로 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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