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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부터 아침까지, '비주류 세계' 위로하는 손맛

  • 남현지
  • 입력 2015.06.27 07:23
  • 수정 2015.06.27 07:26
ⓒ심야식당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도시의 밤이 환한 낮보다 위로가 되는 이들이 있다. 어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깔리고 내보이기 싫은 상처의 방어막이 되어준다. 도쿄 신주쿠의 후미진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밥집 ‘메시야’는 그 상처 입은 밤의 인간들을 위한 식당이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에야 비로소 개장 준비를 하고 밤 12시가 되면 문을 여는 이 가게를, 단골손님들은 그냥 ‘심야식당’이라 부른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자정에서부터 아침까지만 운영하는 독특한 밥집에 관한 이야기다. 정식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단 한 가지, 반주는 한 사람당 3잔까지만 허용된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그저 마스터라고만 불리는 주인(고바야시 가오루)도 독특하긴 마찬가지다. 손님들의 수다를 성실히 들어주고 재료만 있다면 원하는 메뉴는 무엇이건 만들어주는 그는 마치 다양한 사연이 담긴 신청곡을 틀어주는 과묵한 심야 라디오 디제이 같기도 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 최고의 매력은 깊은 밤의 적막을 따뜻하게 파고드는 음악처럼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정서에 있다. 그 위안의 핵심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는 문이다. 작품 안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는 소리보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더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심야라는 시간대의 특성상 비주류 세계 손님들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야쿠자, 게이바 주인, 스트립 댄서가 좁은 테이블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은 그 자체로 편견을 허물고 우리 모두가 실은 동일하게 외롭고 쓸쓸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준다.

심야식당의 손님들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새롭게 갱신되는 세상에서 오래도록 변치 않는 가게라는 것도 큰 위로다. 시즌 3의 한 에피소드에서 식당을 찾아온 옛 단골이 “전혀 안 변했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언제나 남편과 함께 멘치카츠(민스커틀릿. 다진 고기에 다진 양파 등을 넣고 튀긴 요리)를 주문하곤 했던 그녀는 그가 죽은 뒤 8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여전한 그때 그 맛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이 작품이 시즌 3에 이르도록 동일한 오프닝을 사용하는 까닭도 그래서다. 도심의 야경 위로 낮게 깔리는 주제곡 ‘추억’과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는 마스터의 내레이션으로 문을 여는 꾸준한 오프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단골집의 정겨운 간판 같은 구실을 한다.

지금 <심야식당>은 국내에서 특히 성수기다. 지난주 국내에서 개봉한 극장판 <심야식당>이 순조로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고, 오늘부터는 동명의 리메이크 드라마도 방영을 시작한다. 황인뢰 감독이 연출하고 김승우가 주연을 맡은 국내판 <심야식당>은 서울 종로 인근에서 개업해 뒷골목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그릴 예정이다. 먹방, 쿡방 등 음식 콘텐츠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점에서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소박한 위로의 맛을 전했던 원작의 정서를 얼마나 재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심야식당" (深夜食堂, Midnight Diner) 30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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