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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5일 06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5일 14시 12분 KST

여자축구는 21세기 혁명운동이다

여자축구는 어떨까요. 그야말로 이곳은 남녀평등 차원에서 시베리아 벌판입니다. 주변에 조기 축구 경기를 하는 아저씨들은 많이 봤을 것입니다. 조기 축구를 하는 아주머니 본 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 축구클럽에 가보면 여자아이들이 1~2명 정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는 체격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남녀 합쳐서 팀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이런 클럽이 남자 초등생들만 모인 클럽하고 대결할 때엔 "야! 쟤 여자야!"라며 짓궂게 도발하는 친구도 있지만요. 그런데 중학교로 무대를 옮겨보면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통로는 완전히 막히게 됩니다. 남자 아이들은 틈만 나면 공 하나 가지고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데, 축구를 하고 싶은 여자아이는 속으로 삭여야 합니다.

연합뉴스

여자축구 월드컵과 남자축구 월드컵 어떻게 다를까요?

여러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참가국 수가 남자(32개국)와 달리 24개국이고, 국제축구연맹(피파)이 남자월드컵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여자월드컵 육성에 돈을 쓰고, 경기의 수준도 남자 월드컵에 비해 여자 월드컵이 떨어집니다.

 

저는 남자 월드컵을 인류가 만든 최고의 스포츠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현란한 발재간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때로는 축구가 내셔널리즘의 분출구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과거의 전쟁터가 아니라 잔디밭에서 공을 갖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인류가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물론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피파의 음습한 뒷거래는 빼고요.

여자축구는 어떨까요. 저는 여자축구를 단순히 스포츠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자축구는 혁명 없는 21세기에 사회 변혁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관념운동이고, 문화운동이고, 여권운동이고, 평화운동으로 바라봅니다. 성장의 한계에 이른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질적인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여자축구라는 신천지에서 바라보는 것이 지나친가요?

 

24일 귀국한 여자축구대표팀의 전가을 선수. 대한축구협회 제공

 

 

2013년 아시아나항공이 여승무원의 바지 착용을 허용하기까지는 25년이 걸렸습니다.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예뻐 보인다는 정책 결정권자의 생각이 그렇게 여자들의 옷 입을 자유를 묶어온 것이지요. 만약 아시아나항공의 정책 결정권자가 바지를 입은 여성이 모습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면, 진작에 바지 병용 허용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자축구는 어떨까요. 그야말로 이곳은 남녀평등 차원에서 시베리아 벌판입니다. 주변에 조기 축구 경기를 하는 아저씨들은 많이 봤을 것입니다. 조기 축구를 하는 아주머니 본 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 축구클럽에 가보면 여자아이들이 1~2명 정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는 체격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남녀 합쳐서 팀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이런 클럽이 남자 초등생들만 모인 클럽하고 대결할 때엔 "야! 쟤 여자야!"라며 짓궂게 도발하는 친구도 있지만요. 그런데 중학교로 무대를 옮겨보면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통로는 완전히 막히게 됩니다. 남자아이들의 체격이 훨씬 크고, 힘도 세기 때문에 여자가 함께 끼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틈만 나면 공 하나 가지고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데, 축구를 하고 싶은 여자아이는 속으로 삭여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만약 중고교 체육 선생님이 여자팀을 구성하려고 백방으로 뛰면 어떨까요. 아마 한 학교당 11명의 팀을 꾸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자체 경기는 불가능하지만 5명씩 나눠 풋살을 할 수 있고, 학교 간 대항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2013년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학원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야 하고, 지역별 대회에도 나가야 합니다. 아직 많은 학교에서는 여자축구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적은 인원으로 가능한 탁구나 농구 등 한정된 종목에서 여학생들을 모아 출전시키고 있습니다. 축구가 거친 운동이고, 땀을 흘리기 때문에 샤워시설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피구를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코트를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차고, 몸으로 부닥치고, 뛰어다니는 축구를 한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어떨까요. 축구가 다른 어떤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이 있다는 것을 여학생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여자한테 축구를 할 기회를 줄 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초등학교팀부터 실업팀까지 등록 선수 1705명에서 뽑힌 23명이 나가 16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기에는 참 민망합니다. 성적과 실제 그 나라의 여자축구 현실의 괴리가 가장 큰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축구연맹이 2007년 발표한 2006 세계축구통계 자료를 보면 당시 세계 인구의 4%인 2억6500만명이 축구를 즐긴다고 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여자는 2600만명으로 남자의 10분의 1수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자축구는 남자축구보다 규모에서 열세입니다. 그러나 피파는 "2000년의 2200만명에서 2006년에는 400만명이 더 늘어난 2600만명이 됐다. 여자축구 참여 인구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자축구 인구는 대개 미국과 유럽의 복지국가, 일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2006년 피파 자료를 보면, 미국의 여자축구 등록선수(167만명)가 가장 많았고, 독일(87만1000명), 캐나다(49만5000명), 스웨덴(13만6000명), 호주(11만2000명), 노르웨이(9만8000명), 영국(9만7000명), 네덜란드(8만4000명), 덴마크(5만6000명), 프랑스(4만9000명), 일본(4만5000명) 순입니다. 등록이란 각 나라의 축구협회에 선수로 적을 올리는 것인데요, 등록을 하지 않고 축구를 즐기는 여성은 등록선수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2014년 피파가 보완한 자표를 보면, 축구를 하는 전 세계 여성의 인구는 300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등록한 여자선수도 2006년(총 410만명)보다 늘어난 480만명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축구협회에 등록한 여자축구 선수가 1705명입니다. 그렇다고 등록을 하지 않고 축구를 즐기는 여성을 찾아보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풀뿌리 현장이 죽어 있는, 모래 위의 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월드컵 16강에 오르고, 2000년 17살 여자월드컵 우승을 한 선수들이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여학생 한 명이라도 더 축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게 저변을 두텁게 하면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지금처럼 축구 선수의 길로 접어들면 중도에 방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학부모나 축구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축구부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게 일본이나 프랑스, 미국 등이 여자축구의 강국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소수인데다, 어려서부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해 정작 성인이 돼서는 부상에 많이 시달립니다.

지금은 한국 여자축구의 과도기입니다. 과거의 소수 엘리트 선수 육성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주형을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대통령이 여성인데, 정말 깊게 고민하기를 바랍니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 스포츠 활동 강화, 스포츠 동아리 구성, 동아리별 지역·전국대회 출전 등을 위해 교육부와 문체부가 재정지원을 좀더 강화해야 합니다. 대회에 나가는 학생들 수송하는데 선생님들이 택시비까지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교장 선생님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합니다. 여전히 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제발 그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학교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고, 대한민국 여성 스포츠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엊그제 밤 버스에서 내려 신호를 기다리다가 학원 미니버스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밤늦게 학원 갔다 오느라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원 공부에 치이지 않고 신나게 몸을 부닥치는 여자축구나 여자농구 같은 것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자면 어머니들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죠. 만약 어머니 축구클럽, 어머니 조기 축구회가 많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육체 활동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필수적인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전인적 인격을 위해서라도 몸으로 부대끼는 운동이 얼마나 필요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격렬한 신체활동이 주는 쾌감을 느낀다면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보다 앞서 나가는 나라들이 여자축구를 확산시키기 위한 환경 조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다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 삶의 질은 여자축구의 활성화 정도에서 측정할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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