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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 맥린 교수가 미군 시절 찍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모습(인터뷰, 화보)

  • 박수진
  • 입력 2015.06.24 08:01
  • 수정 2015.06.24 08:33

"더운 여름날 군용 트럭들이 다니는 길 사이로 동생을 업고 지나가던 작은 소녀가 잊히질 않는군요. 너무도 지쳐보여 말을 걸고 싶었지만 사라진 후였죠.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 소녀는 어떻게 됐을까 자꾸 생각이 납니다."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세계적 지질학자로 이름을 남긴 듀이 맥린(Dewey McLean, 84) 박사. 그는 한국전쟁 기간인 1952년부터 1953년까지 미8군 제3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하며 250장의 컬러사진을 남겨 최근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진에는 폐허가 된 시내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부터 푸른 한강, 지금은 사라진 조선신궁 등 다양한 서울의 모습이 담겨있다.

맥린 박사는 한국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연합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당시 사용한 사진기는 캐논의 1949년 IIB(Version 1) 모델이다. 계속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폐허 속에서도 이어진 서민의 일상이나 자연풍경을 많이 찍었다. 기록을 위해 다 찍은 필름을 봉투에 담아 우편으로 미국의 필름 제조사인 코닥에 보내 현상한 뒤 다시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13년 연합뉴스를 통해 공개된 조선신궁과 1천개의 계단 사진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기도 했다.

맥린 박사는 "조선신궁에는 자주 올라갔었다. 서울의 이국적이고 절묘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쟁통에도 잔해 하나 없이 푸른 한강의 사진과 관련해선 "가끔은 사람의 뼈나 해골 더미가 흘러가는 것을 보기도 했지만 한강은 참 아름다운 곳이어서 자주 건너다녔다"고 설명했다.

맥린 박사는 한국전쟁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맥린 박사는 "참전 당시의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어렸고 세계 정세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국가가 불러서, 또 호기심에 겁없이 참전했지만 사실은 그런 끔찍한 전쟁의 현장을 직접 마주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작은 고아들의 모습은 나를 세상에 도움이 되는 한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재촉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스탠퍼드대학에서 지질학과 생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얻고 교수가 됐으며 백악기 후반의 거대한 화산폭발이 공룡멸종의 시작이라는 학설 등을 제기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맥린 박사는 반세기 만에 전쟁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고 급속도로 성장한 한국에 대해 "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부지런한 국민이 자유를 성취한 훌륭한 모델"이라며 "앞으로도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여전히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 대해선 "북한에 건설적이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는 게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맥린 박사는 다시 한번 한국을 찾고 싶고, 한국전쟁 중 찍은 사진들로 책도 내고 싶다고 밝혔다. 맥린 박사는 "세 차례에 걸친 뇌 수술로 신경병을 앓았는데 한 달 전 치료를 끝내고 회복하고 있다"며 "쓰고 있는 책들이 있어 그것부터 끝내야겠지만 사진집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다면 남산에 올라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신한 서울을 보며 머릿속 옛 모습과 비교해보고 싶다. 옛 서울역과 미군 PX가 있던 신세계백화점, 기지가 있던 용산고등학교도 모두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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