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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인터뷰] 일본의 첫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의원 '이시카와 다이가'

  • 김도훈
  • 입력 2015.06.23 12:54
  • 수정 2015.06.23 13:02

LGBT 인권에 있어서 지난 몇 년간 일본이 성취한 일은 놀라울 정도다. 특히 지난 3월 말 도쿄 시부야 구의회가 동성 커플에 대해 '결혼에 상당하는 관계'임을 인증하는 증명서 발급 조례안을 다수결로 가결함으로써, 일본은 '동성결혼 합법화'의 첫 관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바로 도쿄 도시마구 의원인 이시가와 다이가다.

이시가와 다이가는 커밍아웃한 게이 구의원이다. 당선 이후 커밍아웃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1년 4월 지방선거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의원 후보로 출마한 뒤 당선됐다. 이미 지난 2002년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책 '내 남자친구는 어디에 있나?'를 펴내고 커밍아웃한 뒤 성소수자 NPO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로서는 보다 실질적이고 법적으로 LGBT 인권 운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는 이후 도시마구 정책에 LGBT 인권 조항을 넣고 성소수자 자살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많은 인권 활동을 통해 '일본의 하비 밀크'로 불리고 있다.

이시가와 다이가 의원의 캠페인 포스터

한국을 방문한 이시가와 다이가 의원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그는 6월 13일로 예정된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서울지방경찰청의 방해로 인해 28일로 날짜가 변경되면서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서울 퍼레이드에 참여할 생각을 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저도 도쿄 퍼레이드에는 항상 스탭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한국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했던 일본 동료들이 퍼레이드가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3~4시간 동안 방해 공작을 받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제가 직접 와서 참석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퍼레이드가 연기되면서 참석은 불가능하게 됐고, 이렇게 된 바에야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싶어서 도시마구와 교류 관계에 있는 동대문구청장을 만나고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한국도 구글이나 각국 대사관들이 퍼레이드 기간 중에 부스를 열기 시작했는데요,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요?

=구글이나 의류회사 갭 같은 외국 기업들이 부스를 내고 참여를 합니다. 언론사로는 로이터가 부스를 차리지요.

-일본 로컬 기업들은 어떤가요? 한국은 로컬 기업이 부스를 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만.

=저는 LGBT 인권 활동이 벌써 15년 째인데요, 10년 전 LGBT 음악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JAL이 물품을 지원해줬으나 이름은 내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홍보 자료에서는 빠졌어요. 다만 그때와는 상황이 또 달라져서, 지금은 이름을 내는 것이 괜찮습니다.

-현재 일본 LGBT 인권 운동은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나요.

=국회에서 LGBT 인권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요구를 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으나 지금은 점점 늘어나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죠. 일단, 조금이라도 커밍아웃을 하기 쉬운 사회적 환경이 됐다는 게 큰 성과입니다. 회사에서 커밍하고 NPP에서 인권 활동하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전에는 회사에 말을 할 수 없어서 인권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프리터족(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회사에 정체성을 알리고 당당하게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은 아직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일본이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 퍼레이드 참가자는 한국이 더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행사에 사람이 많이 안 모이는데 한국은 모이니까 희망적이지요.

-한국은 원래 행사나 시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가 있습니다.(웃음)

=일본 사회는 자기 생각을 시위를 통해 표현하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시위 자체에 대한 알레르기죠.

도시마구와 교류 관계에 있는 동대문구 의원들과 만난 이시가와 의원

-구의원으로 두 번 당선되셨습니다(이시가와 의원은 2011년 구의원 당선되어 활동하다가 2014년 국가중의원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그리고 올해 4월에 다시 구의원으로 당선됐다). 주민투표로 당선되셨지만 주민들의 눈에 띄는 반발은 없었나요. 이를테면, 게이를 구의원으로 뽑을 수는 없다는 항의라거나요.

=한국처럼 직접적인 항의는 없었습니다만,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피하는 문화가 일본에는 있습니다. 처음 구의원으로 당선됐을 때 제가 사는 동네 주민들 중 일부는 제가 게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닌다거나, 그런 일들을 했죠. 다만,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일본은 소선거구 아니라 대선거구여서 당선되기가 좀 더 쉽다는 이점도 있지요. 제가 있는 도시마구는 서울 동대문구와 우호 관계입니다. 처음 동대문 구청장 밑 구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커밍아웃도 했습니다.

-맙소사.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본어 통역하시는 분이 그 말은 통역을 안 하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그랬을 겁니다.(웃음) 그래서 결국 제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만, 동대문구 관계자들은 그냥 제가 달고 있는 배지(그는 LGBT 인권을 상징하는 레인보우 배지를 항상 달고 다닌다)가 예쁘다거나, 도시마구 청사는 어떠냐 그런 이야기만 처음엔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구청장이 주민들의 의견이 바뀌지 않는 이상 구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소수자의 인권은 다수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이고, 구청장의 리더십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의원과 구청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조금 유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우호 관계를 갖고 근성 있게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일본은 시부야구가 동성커플 인증제를 확정하는 등 LGBT 인권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성결혼 합법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고 계신가요?

=국가 자체는 아베 정권이어서 유감입니다(웃음).

-저희도 여러모로 유감입니다.(웃음)

=하지만 지역별로 아베 정권이 이끄는 자민당 세력이 약한 지역이 있습니다. 동성커플 인증제도를 시작한 시부야구나 인증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 효고현의 다카라즈카 등은 제가 속해있는 사민당 국회의원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기도 하지요. 지금 일본이라는 국가는 보수적이지만 지역부터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도 버몬트주로부터 시작된 동성결혼 합법화의 물결이 미국 전체를 변화시켰으니까요.

지난 3월 31일 도쿄 시부야구의 동성커플 인증제 통과를 축하하는 이시가와 의원과 LGBT 활동가들

-일본 미디어와 손잡고 LGBT 캠페인을 하신다거나, 그런 활동들이 있는지요.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이 LGBT 이슈를 자주 다뤄주고 있어서 감사한 생각입니다. 저도 일본의 많은 단체와 함께 탤런트나 올림픽 선수들이 LGBT 자살 예방 관련 메시지를 보내는 캠페인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It Gets Better 캠페인을 참고하고 있지요. 한국도 LGBT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캠페인은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 싶네요. 도쿄와 서울과 타이베이가 좀 더 교류하며 함께 퀴어 퍼레이드를 해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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