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허핑턴 인터뷰]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단편영화를 만들때 하지 말아야할 5가지

  • 강병진
  • 입력 2015.06.23 11:01
  • 수정 2015.06.24 20:18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이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아모레 퍼시픽 ‘미쟝센’이 후원하는 이 영화제는 그동안 나홍진, 윤종빈, 조성희, 허정 등의 감독을 배출했고, 그 결과 이제는 다른 영화제에 비해 ‘목적’이 뚜렷한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만든 단편을 통해 영화계로 진출하겠다는 예비 영화인들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들 가운데에서 좋은 연출력을 가진 감독을 찾아보겠다는 제작자들이 그들의 영화를 보러온다. 또 기존의 영화감독들은 이곳에서 함께 일할 파트너를 찾기도 하며 이제껏 만나지 못한 배우들을 발견한다. 영화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그처럼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이 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단편영화들이 이곳에서 제작자와 영화감독들의 눈에 띌 수 있는 걸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이 질문은 세속적인 게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가장 필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제1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대표집행위원인 민규동 감독에게 던져보았다. 그 또한 ‘허스토리’, ‘새’ ,’열일곱’등의 단편영화로 연출력을 인정받아,  ‘열일곱’을 함께 만든 김태용 감독과 공동연출한 ’여고괴담 : 두 번째 이야기’로 데뷔했던 사례의 영화감독이다. 이미 오랫동안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오로도 참여했던 민규동 감독이라면,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더 구체적인 팁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듣고 보니,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겨냥한 예비영화인뿐만 아니라, 지금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였다. 또한 장편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들도 고민하는 문제였다.

 - 먼저 올해의 출품작들은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장편영화보다 단편영화가 지금 주목받는 영화적 스타일이나 이슈를 더 빨리 반영할 것 같은데. 

아직 다 못봤다. 예심을 할 때는 내가 심사를 맡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부문의 영화들만 본다. 보통 영화제가 개막하면 관객의 입장으로 찾아서 보게 되는 편이다. 어쨌든 단편영화에도 흐름이 있기는 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등장했을 때는 많은 한국의 단편영화들이 홍감독님의  연출방식과 주제에 접근했었다. 또 류승완 감독의 액션영화들이 각광을 받았을 때부터는 단편영화에서도 액션장르를 시도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게 어려웠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세상에 태어나야하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카메라도 민주화됐고, 단편 제작환경이 자유롭기 때문에 그런 주제의식에 억압받지 않는 분위기다.  

 

- 필름으로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현직 장편영화감독으로서 볼 때, 어떤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나. 

내가 영화를 공부할 때는,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이나 장준환 감독의 ‘2001년 이매진’이 하나의 레퍼런스였다. 당시로서는 기술력이 매우 뛰어난 영화였으니까. 35mm로 찍으면서 동시녹음까지 하는 단편영화가 있다는 게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단편영화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작품들이 너무 많다. 페이스북에서도 보고, 유튜브에서도 본다. 그만큼 어떤 단편영화가 좋은 것이라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적어졌다고 할까?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

장준환 감독의 단편 '2001 이매진'

 

- 단편영화의 제작방식이 자유로워진 것도 있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도 중요한 변화일 것 같다. 

그래서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영화산업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 된 거다. 제작자들이 와서 영화보고 감독이랑 바로 계약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나는 영화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때는 졸업영화제도 없었다. 사실상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끼리 보고, 어디에서 상을 받으면 소문이 조금 나는 정도였다.

- 단편영화를 많이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됐지만, 좋은 단편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감독들과 함께 심사를 할때는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 편인가

종종 이런 농담을 한다. 좋은 단편영화가 있으면, “이 감독이 우리의 라이벌이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일단 이 친구에게 상을 주자. 그러면 빨리 거품이 들 거고, 제작자가 데려가서 일을 시키다보면 빨리 망가질거야.”(웃음)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일단 영화를 평가한다면, 신선함과 재미, 감동 이런 걸 볼 거다. 그 중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신선함’인 것 같다. 전혀 다른 발상으로 만든 단편영화들이 있다. 그런 걸 볼 때면, 기존의 감독들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이 이 친구에게는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만나보고 싶고, 같이 일을 하고 싶어한다. 감독마다 취향이 있지만, 그런 신선함에 대해서는 모든 감독이 다 똑같이 느끼는 것 같다. 좀 더 미친 감독, 약 먹은 감독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다. 

 

- 단편영화를 만드는 모든 이들이 염두했으면 하는 점이 있을까?

 

어떤 단편영화가 좋은 단편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떤 단편영화가 좋지 않은 단편영화라는 기준은 확실히 있다. 그런 부분으로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 그렇다면  ‘단편영화를 만들때 하지 말아야 할 5가지’, 이런 방식으로 정리하는 게 좋겠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1)‘길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핵심이다. 사실 나도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절에 해보지 못한 거다. 어떤 이야기를 짧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최고의 경지다. 이때의 ‘짧음’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응축이 잘 되어 있는 가의 ‘짧음’이기도 하다. 단편은 아무래도 소설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인 매력이 큰 장르다. 응축을 잘 하려면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모든 영화감독은 자신에게 허락된 영화의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단편영화에서는 어떻게 응축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일단 만들었다가, 모니터 해준 친구들이 자르라고 하고, 나중에 선생님이 자르라고 해서 짧게 만든다. 그 결과 “정말 짧게 만들기만 했네”라고 생각이 드는 “길게 느껴지는 단편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이건 사실 단편이든, 장편이든 모든 영화감독이 평생 안고갈 숙제다. 

 

- 그렇다면 두 번째는?

(2)‘단편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 “이건 단편이니까 어설퍼도 돼”라고 방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기나 연출이 어색한데, 그걸 ‘단편’이라는 자기합리화로 도망갈 출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단편은 그냥 짧은 영화이지, 장편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단편에 CG나 특수효과 같은 물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세계 안에서는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빈틈이 보이면 정말 학생영화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태도는 평생 못 고칠 수 있다. 어떻게든 정면승부 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리고 세 번째는 (3)‘설명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단편영화에 대해 관객들은 설명을 기대하지 않는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다. 보통 단편영화가 장편영화를 압축한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설명을 하게 되는데, 결국 짧은 시간안에 설명을 해야하다보니 방황하게 되는 거다. 단편영화는 찰나의 묘사라고 생각해야 한다. 검객이 상대를 여기저기 다 찔러서 죽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베어버리는 상황이라고 할까?

- 설명하면 안된다는 건, 곧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걸까?

‘설명’은 화법과 스타일의 문제인데... 여기서 4번째 조건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4)“문학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적인 게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적인 영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많은 장편영화는 문학적 베이스를 가진 이야기를 시도하지만, 단편은 이미지 본연의 영화를 시도하는 게 좀 더 수월하다. 이야기로 먼저 영화를 구상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이미지를 고민한 후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방식이 감각을 단련시키는 데 중요히다.

- 자, 그럼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또 하나가 있다면?

(5)‘금기나 관습에 주눅들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단편영화는 흥행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나. 장편상업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유일하게 마음껏 만들 수 있는 놀이터가 될 거다. 관객을 염두하면,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표현 수위나 한계, 정해진 스타일이 주눅들지 말고 더 도발적이고, 전위적이고, 더 논쟁적이고, 더 미쳐도 된다. 이때 드러나는 신선함이 그에게는 장편영화로 데뷔한 이후에도 덕목이 될 것 같다.

- 결국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게 ‘신선함’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지금 영화감독은 언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다. 즉 그 감독이 이 영화를 연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대체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때의 이유라는 게 그 사람의 영화가 가진 독특함과 신선함이다. 단편영화는 그런 덕목을 미리 키울 수 있는 장이다. 만약 장편영화에 와서 주눅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게 될 테니까. 제작비 규모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 수 밖에 없지 않나. 하지만 단편은 오로지 감독 자신의 놀이터다.

- 사실 장편영화 감독들도 항상 고민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맞다. 그래서 지금 혹시 내가 너무 관습적인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웃음) 나부터도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단편영화라고 해서 미룰 수 있는 고민이 아니다. 오히려 일찍 경험할수록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고민이다. 그러니 지금 마음대로 싸워볼 수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싸워보기를 바란다.

*제14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은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아트나인 & 메가박스 이수에서 열린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쟝센 단편 영화제 #영화 #문화 #단편영화 #민규동 #영화감독 #허핑턴 인터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