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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자'의 부담과 책임

완강하게 노조를 거부하는 삼성의 경영 철학도 새삼 재평가 대상이다. 비정규직 이송요원인 137번 확진 환자가 발병 후 수 일간 업무를 계속하도록 관리를 소홀히 한 삼성서울병원의 시스템을 납득할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악마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병균은 사원의 연봉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외국자본 '엘리엇'을 후원하는 소액 주주와 국민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3년의 SK·소버린 사태 때와는 판이해진 국민 정서다. 왜 그럴까? 국민 기업 삼성은 '큰 자'인데도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데는 인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안경환
  • 입력 2015.06.23 07:59
  • 수정 2016.06.23 14:12
ⓒ연합뉴스

온 나라가 마비 상태다. 민심도 흉흉하다. 웬만한 일로는 미동조차 않아 오연(傲然)한 인상마저 풍기던 박근혜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것 같다.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면서 예정된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지지율도 20%대로 곤두박질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랴? 그러나 국민은 불운과 불만을 표출할 대상을 구한다. 정부의 수장이자 국가권력의 상징인 대통령 말고 달리 어디 있겠는가! 결코 적지 않은 흠에도 황교안 새 총리가 비교적 쉽게 국회 인준을 받은 데는 곤경에 처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동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역사에서 역병은 항다반사였다. 교류와 소통 폭이 넓어질수록 세균 부대의 준동도 득세했다. 많은 나라에서 '전염병해의 기록'들은 당시 인간 안보와 방어 체제를 가늠하는 사료로 축적되어 있다. 해방 이후로 이 땅에 전염병은 연례행사였다. 어떤 해는 순식간에 수백명이 죽었다.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초등학교 시절부터 '법정 전염병' 리스트를 외고 살던 우리다. 장·노년 한국인 중에 전염병에 급우나 친지 하나쯤 잃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정부를 매도하지는 않았다. 기꺼이 나라에 목숨도 바친 국민이었기에 그저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고 부주의를 반성할 뿐이었다. 나라의 형편을 알았기에 기대도 높지 않았고 자신이 주인이라는 민주 의식도 취약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여론의 질타를 당하고 있다. 병원의 젊은 의사가 국회에서 내놓은 답변은 방자했다. "삼성이 뚫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메르스에 뚫린 것입니다." 엘리트 청년의 패기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실언이다. 아무리 정부가 미워도 국민은 기업보다는 정부 편을 드는 법이다. 뒤늦게 삼성 사장단과 이재용 부회장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은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다수 국민도 외국인도 그렇게 느낀다. 국민 기업, 삼성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시샘도 느낄 수밖에 없다. 서로를 탓하지만 실은 삼성과 정부의 유착 때문에 사태가 커졌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의심할 만한 정황도 있다. 완강하게 노조를 거부하는 삼성의 경영 철학도 새삼 재평가 대상이다. 비정규직 이송요원인 137번 확진 환자가 발병 후 수 일간 업무를 계속하도록 관리를 소홀히 한 삼성서울병원의 시스템을 납득할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악마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병균은 사원의 연봉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외국자본 '엘리엇'을 후원하는 소액 주주와 국민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3년의 SK·소버린 사태 때와는 판이해진 국민 정서다. 왜 그럴까? 국민 기업 삼성은 '큰 자'인데도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데는 인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큰 자의 저주'(The Curse of Bigness·1934). 역대 미국 판사 중에 가장 존경받는 루이스 브랜다이스(1856~1941) 대법관의 명저다. 건전한 자본주의의 성패는 대기업의 횡포를 방지하는 데 달려 있다는 요지다. '큰 자'에게는 단순히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는 것 이상의 책임이 따른다. '약한 자'도 함께 보살펴야 한다. 근래 들어 유엔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정부는 작은 국민의 한숨에 귀를 기울인다. 마찬가지로 좋은 기업은 가진 자의 관용과 배려의 미덕을 가꾼다. 그래서 억울한 비판과 질시도 참아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이 있다. 미국을 욕하는 것은 세계인의 특권이 되었다. 구체적인 잘잘못을 떠나 대국 중의 대국이기 때문이다. 대국을 비판하면서 국제사회는 일종의 정서적 안정과 균형을 찾는다. 소설가 신경숙과 출판사 창비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구체적인 진상은 다툴 여지가 남아 있지만 숨은 원리는 비슷하다. 대표적인 인기 작가와 문화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전염병 메르스야 이내 잡겠지만 큰 걱정이 남는다. 막 가는 정치와 실종된 시민 의식은 다스릴 방법이 없다. 메르스 소동, 불과 1년 전 세월호 참사의 복사판이다. 겉치레만 번듯한 건설 공화국의 민얼굴이다.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무능한 정부와 오만한 삼성보다 뻔뻔한 국민이 더 걱정이다. 내 몸, 내 아이에 대한 분별 없는 집착에 눈멀어 의사 가족을 따돌리는 학부모, 돌출적 행동으로 공동체 질서를 유린하는 환자, 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가진 자' '큰 자'의 횡포다. 정말이지 '선진' 한국의 주인 되기에 합당한 책임 있는 공동체 의식이 아쉽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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