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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소주병 몇 개 남기고 세상을 떠나다

ⓒ극단신세계

연극배우 김운하(본명 김창규·40·사진)씨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평 반(4.6㎡) 공간은 작은 침대 하나 놓고 나니 문을 열기도 비좁았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궁핍한 처지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김씨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 휴대전화도 침대 위에 그냥 놓여 있었다. 여러 개의 소주병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본 김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고시원 폐회로텔레비전(CCTV)엔 지난 15일 새벽 2시께 방에 들어간 뒤 5일간 김씨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검시관은 ‘내재적 지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고 알코올성 간질환, 신부전, 고혈압 등을 앓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경찰은 타살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

3개월 전 이 고시원에 들어온 김씨는 연고자가 없다. 아버지는 1996년 세상을 떴다. 3살 때 헤어진 생모는 서류상 살아 있지만 거주지엔 없었다. 그는 무연고 주검으로 처리돼, 강북구 미아동 서울좋은병원 영안실으로 옮겨졌다.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한 달 뒤 관할 구청에서 부랑인 사망자들과 함께 집단으로 화장한다.

서울 성북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연극계 후배들이 모였다. 십시일반으로 추렴해 영안실을 꾸렸다. 그는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좋은 배우’라는 평을 받아왔다. 유작은 지난 4월 ‘예술공간 서울’에서 올린 김수정 연출의 연극 <인간동물원초>였다. 2015서울연극제 ‘미래야솟아라’ 부문에서 연출상을 받은 이 작품에서, 그는 감옥의 방장 역을 맡았다.

심사위원장이던 김진만 극단 앙상블 대표는 “방장으로서 감옥 안의 약육강식이라는 권력관계의 중심을 잘 잡아준, 선이 굵은 배우였다. 특히 그런 감정의 줄타기를,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끌고 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곧 두각을 나타낼 배우로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죽음 앞에 연극인들은 회한과 스스로의 무력함에 울분을 쏟아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더 답답할 뿐이다. 대한민국이란 곳, 연극판이란 곳에서, 나의 집에서조차 이렇게 초라하기 위해 그리도 힘겹게 달려왔단 말인가.” 공재민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의 반응이다.

최고은씨 사망 뒤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은 김씨에겐 저 멀리에 있었다. 극단 노을 대표인 오세곤 순천향대 교수는 “법에서는 미리 계획된 사업이 아니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 긴급복지는 당장 굶어 죽게 된 사람, 당장 병들어 죽게 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인데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3년에 3편 이상 출연작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그는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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