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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한 달' 송두리째 바뀐 우리의 일상 4가지

  • 원성윤
  • 입력 2015.06.21 06:52
  • 수정 2015.06.21 09:06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전례 없는 혼돈은 우리 사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외출을 삼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비·문화·생활 패턴이 바뀌었고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지역경제는 희비가 엇갈렸다.

1. 병문안·조문·결혼식 발길 '뚝'

19일 오전 메르스 환자가 격리 치료 중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환자실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음압치료시설 내부가 보이고 있다.

메르스 확산 만큼이나 불안감도 커지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은 일단 피하자는 심리가 팽배해진 탓에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으로 여겨오던 병문안·조문·결혼식 풍속도마저 바꾸고 있다.

청주에 사는 주부 이모(35)씨는 시아버지가 몸이 아파 경기도의 한 병원에 보름째 입원 중이지만 아직 병문안을 못 가고 있다.

시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이 메르스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많은 병문안 과정에서 메르스가 전파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혹시 모를 감염도 걱정이지만 경기도로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말만으로도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라 죄송스럽지만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오히려 유족들이 장례를 마친 후 부고를 알리거나 조문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공지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친목회는 지난 15일 도교육청 게시판에 이 학교 교장의 장인상을 알리면서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조문은 받지 않습니다"고 안내했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의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 의심 증세를 신고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조문을 하자니 께름칙하고, 안 하자니 유족이 서운해할 것 같아 고민하는 친지와 지인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일종의 배려다.

결혼식이나 돌잔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축하를 해줘야 하는 자리이지만 초대하는 쪽이나 참석하는 쪽 모두 부담이 돼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2. "병원 가기 무서워"…병원은 '발열 환자' 사절

19일 오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투석실에 다녀가 일반환자의 신규 입원이 중단된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로비가 한산하다.

메르스의 최초 진원지가 병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원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불안감에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고통을 참겠다는 환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5살짜리 자녀를 둔 주부 이모(33)씨는 "요즘 엄마들은 감염 걱정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며 "꼭 가야 한다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자가 적은 작은 동네 병원을 수소문해 간다"고 전했다.

이런 병원 기피 현상은 약국과 간단한 의약품을 파는 편의점의 반짝 특수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비타민 등이 메르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확산하면서 간편한 건강보조식품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회사원 김모(34)씨는 "감기 몸살로 힘들지만 병원 가기가 부담스러워 병원 치료 대신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규모가 작은 동네병원들은 수입 감소보다 '발열 환자'의 방문이 부담스럽다.

일부 병원은 아예 출입문에 '체온이 37.8도 이상인 환자는 메르스 거점 의료기관으로 가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까지 내걸었다.

만에 하나 내원 환자가 메르스 의심 환자나 확진 환자로 판정나고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병원 운영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회식·모임 자제에 식당가 '울상'…배달 음식점은 '특수'

14일 오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로 인해 손님이 줄어 한산한 모습이다. 수산시장 상인들은 "메르스 여파로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계절적 비수기인 장마철까지 이어지면 생계가 어려워진다"며 메르스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기를 바랬다.

직장인 최모(37)씨는 요즘 귀가시간이 빨라졌다. 회식이나 모임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주변에서 술을 마시자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절하고 있다"며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직장인들의 회식·모임이 줄면서 식당가는 매출 감소에 울상이다.

지난해 세월호 때보다 분위기가 더 좋지 않다는 게 업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청주지역 요식업계나 유통업계의 매출이 30%, 심한 경우 절반까지 감소했다는 집계도 나왔다.

청주시 가경동에서 고깃집을 하는 김모(46)씨는 "세월호 때는 술 손님은 적었어도 그나마 가족 단위 손님은 좀 있는 편이었다"며 "지금은 아예 손님의 발길을 끊겨 이달 가게 임대료를 어떻게 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외출이나 회식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배달 음식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외식 대신 집에서 가족들과 마음 편하게 식사를 즐기겠다는 심리에서다.

청주시 산남동에서 중화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5)씨는 "최근 들어 저녁 시간대 배달 주문이 30%가량 늘어 직원도 한 명 늘렸다"며 "메르스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매출이 늘어 힘든 줄도 모르게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4. "청정지역 찾아 떠나자"…여름휴가 앞당기기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로 해외 여행을 계획했던 내국인과 국내 여행을 하려던 외국인들의 국적 항공기 예약 취소 인원이 최근 13일간 17만4천12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카트가 모여 있는 가운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학부모 이모(44·여)씨는 얼마 전 메르스 확산 우려로 12살짜리 딸아이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자 아이를 시골 친정집에 맡기고 왔다.

인파가 많은 도심보다는 친정집이 안전하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언제 어디서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할지 모르는데 차라리 메르스 절정기가 지나갈 때까지 청정지역으로 피해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으로 여름휴가를 앞당겨 쓰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33)씨는 "여행 삼아 안전지대로 피해 있고, 이 참에 떨어진 체력도 충전해 면역력을 높이면 메르스 감염 위험도 그만큼 줄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교수는 "사람이 밀집된 장소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만 면역력이 있으면 감염 가능성은 적다"며 "개인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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