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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연애의 일부가 아니다

이름을 알만한 진보적 논객의 데이트 폭행에 대한 폭로가 있었고, 그에 따른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3자의 입장에선 차분히 두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인 이야기를 왜 까발리느냐, 왜 둘이 해결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구느냐, 는 이야기를 몇 번 읽었다. 그에 찬성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야기가 둘이 사귀었다더라, 헤어졌다더라, 의 문제를 넘어서 폭력에 관한 폭로로 넘어가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남녀상열지사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합의 하에 벌어지는 SM 플레이의 경험에 대한 상세 까발림도, 상대의 성격적 결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거다. 폭행이고, 상해에 대한 것이라고.

  • 김세정
  • 입력 2015.06.21 05:34
  • 수정 2016.06.21 14:12
ⓒgettyimagesbank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은 한 사무라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네 명이 그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 다르다. 한 죽음에 관한 네 가지의 설명. 명백한 하나의 사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조차 다 다를진대, 두 사람의 감정과 그에 얽힌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구구하게 다른 설명들이 가능하겠는가.

이혼 소송에 얽힌 양 측의 증언에서 이에 관한 매우 극단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어떠한 일화가 여자 측의 입에서 나올 때와 남자 측의 입에서 나올 때, 이는 도저히 같은 일이라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인 것이다: 아내는 바람을 피운 남편이 적반하장 격으로 뻔뻔하게도 길거리에서 자기 팔목을 비틀며 이 따위니까 너랑 못살지! 라고 화를 내며 자기를 밀쳤다고 주장한다. 남편은,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의심마귀가 든 아내가 길거리에서 나가 죽어! 라고 외치며 핸드백으로 자기를 죽일 듯이 내리쳤기 때문에 이를 막은 것 뿐이라고 하고. 둘 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앞뒤 맥락을 생략하거나 본인의 부당한 행위를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의 부당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상대가 왜 저러는지 모르기도 하는 거고.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본인은 모르거나(극단적인 예로 친척 누군가에게서 부당한 이야기를 들었다거나), 서로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때도 있다. 어쩌겠나. 부족한 것은 인간일지라.

길게 썼지만,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남녀상열지사는 본인들만이 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본인들 사이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거 참 좋겠지. 조용히. 남 시끄럽지 않게. 가능하면 우호적으로. 그러면 세상도 고요하고 본인들 면도 안 상한다. 훨씬 좋다. 그러나.

이름을 알만한 진보적 논객의 데이트 폭행에 대한 폭로가 있었고, 그에 따른 설왕설래가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3자의 입장에선 차분히 두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인 이야기를 왜 까발리느냐, 왜 둘이 해결하지 못하고 시끄럽게 구느냐, 는 이야기를 몇 번 읽었다. 그에 찬성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야기가 둘이 사귀었다더라, 헤어졌다더라, 의 문제를 넘어서 폭력에 관한 폭로로 넘어가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남녀상열지사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합의 하에 벌어지는 SM 플레이의 경험에 대한 상세 까발림도, 상대의 성격적 결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 거다. 폭행이고, 상해에 대한 것이라고.

더구나, 가족 내에서의 폭행이나 연인 사이에서의 폭행은 그 성격이 특수하다. 일방이 여러가지 사유에 의하여 불법적인 상황을 파국에 이를 때까지는 감내하거나, 피치 못하여 용인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다. 설마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남편이 때릴 때 공권력이 그 피해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보호하는지 그 실상을 한번 떠올려 보라. 애인 관계는 좀 더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가 아닌 감정에 의하여 정상적이고 단호한 권리행사를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의 폭력,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온 피해자에게(본인의 평판 역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여야만 하는데), 왜 둘 사이의 일을 둘이서 조용히 해결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일견 공정한 듯한 발언이지만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수단을 막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피해자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권리 행사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위에 쓴 바와 같다.

누군가가 피해자라며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할 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할 때, 공권력에게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할 때, 하물며 대중교통에서 어이 없는 일을 당했다고 주장할 때, 이거 둘이 해결하거나 경찰에 가서 조용히 처리하지 왜 세상 시끄럽게 하느냐 그 사정을 누구도 모른다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사건도 법에 호소하면 되는 것이고 그 구체적 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말이다.

가정 폭력도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범죄라는 거다. 사실관계를 모르니 제3자로서는 사건의 추이를 차분히 객관적으로 보자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남부끄럽게 남녀 간의 일을 세상에 대고 떠드느냐고 한다면, 이는 부당하다. 필요한 것은 이미 시끄러워진 사건을 당사자 간의 스캔들로 한정하여 소비하지 아니하고 사회적 논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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