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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 출판인'의 좌충우돌 책 만들기

솔직히 나는 장르소설을 즐기지 않아서 <아발론 연대기>도 감탄과 경외만 했을 뿐 그 비싼 가격에 대한 부담도 되고 해서 사지도 못한 처지였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때 그' <북스피어>가 여태껏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던 게다. 그러나 10년 전 출현할 때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출판사와 그 사장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판인생과 주변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주문을 했고 받자마자, 들고 다니던 소설책을 집어 던지고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박균호
  • 입력 2015.06.24 08:23
  • 수정 2016.06.24 14:12

이 책을 말하기 위해서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10년 전의 그나마 순수했던 디씨인사이드 '도서갤러리'를 먼저 이야기할지, 아니면 적어도 내게는 북스피어출판사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기억되는 <아발론 연대기>를 우선해서 이야기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지독한 난독증에 시달리던 지난 한 달간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대략 10년 전 당시까지만 해도 디씨인사이드의 도서갤러리는 서로 도타운 정을 나누던 따뜻한 도서 커뮤니티였다. 오순도순 책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었고 책에 대한 고수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가 책에 대해서 티격태격하거나, 도저히 해결 못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때 , 불쑥 나타나 위기에 빠진 중생들을 현란한 책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를 열광케 한 gksrud이란 유저가 그 대표적 인물.

그러니까 2006년 조용하던 도갤이 떠들썩할 만한 빅뉴스가 떴는데 기존에 <아서왕 이야기>라고 알고 있던 대작이 <아발론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새로 나온다는 소식. 아서왕의 일대기를 켈트신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판타지 소설이다. 8권으로 구성된 이 대작을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가 무리를 해가면서 겨우 겨우 4권까지 내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폐업을 해버렸다.

당시 아웃사이더의 직원이었던 김홍민과 직원 몇몇은 의기투합하여 <북스피어>라를 회사를 차리고 그 대업을 계속 이어가는 패기를 발휘했다.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한편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결국 <아발론 연대기>로 이름을 바꾼 8권 전집을 완전히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망한 출판사가 완성하지 못한 대업을 직원들이 회사를 새로 차려서 완성한 희귀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도서갤 유저들은 화려한 장정과, 멋진 표지 디자인을 가진 완성된 <아발론 연대기>에 열광했고 모두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북스피어>라는 출판사는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개인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그리고 장르소설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아발론 연대기>는 시대를 앞서가는 화려한 디자인과 장정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설립된 <북스피어>가 책임이 질 이유가 없는 <아웃사이더>판 <아서왕 이야기 1권~4권>을 구매한 독자를 위해서 새로 나온 <북스피어>판으로 보상업그레이드 해주는 보기 드문 미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북스피어>의 대표인 김홍민씨가 교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 이벤트지 실상은 독자를 공짜로 부려먹기'위해서 기획한 '독자 교정자 제도'에도 열광을 했고 실제로 많은 도서갤의 유저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스로 무급 교정 일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제 8권 말미에 이른바 '독자 교정자 제도'에 참여했던 독자들의 이름을 기재해준 꼼꼼함과 교정에 참여한 답례로 <아발론 연대기>를 선물한 배려는 <북스피어>를 여느 다른 출판사와는 다르게 인식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출판계 인사들은 자주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과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에 대항해서 더 재미난 책을 만들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책이 그나마 잘 나갔던 시절에 없던 경쟁자와 맞서서 싸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어찌 되었든 살아남기 위해서 책을 더욱 매력적이고 재미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소설 한 권을 항상 지니고 다녔지만 당최 읽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복잡한 사정도 있었거니와 어쩐지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라는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의 저자가 10년 전 우리를 열광케 한 <북스피어>출판사의 사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장르소설을 즐기지 않아서 <아발론 연대기>도 감탄과 경외만 했을 뿐 그 비싼 가격에 대한 부담도 되고 해서 사지도 못한 처지였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때 그' <북스피어>가 여태껏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던 게다. 그러나 10년 전 출현할 때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출판사와 그 사장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판인생과 주변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주문을 했고 받자마자, 들고 다니던 소설책을 집어 던지고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나절 만에 다 읽어내려 갔다. 역시 기대대로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났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재미'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해야만 한다. '재미'라는 것이 굳이 '고급지지 못한'것과 동일선상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아쉬웠던 것이 정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문 것이었다. 그래서 '열린책들'의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보석처럼 아끼는데 실로 오래간만에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를 만나니 감개무량하다. 이 책에서 '야매 출판인' 김홍민은 매우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계층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비전을 이야기 한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가 대형출판사 사장의 진솔한 출판이야기라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책과 관련된 모든 계층을 향해서 자신의 '험난한' 경험을 통해서 얻은 '영업비밀'을 가감 없이 '재미나게' 말하는 책이다.

특히 '버려지는 띠지에 숨겨 놓은 것', '독자들이 빌려준 5000만 원' 이야기 등과 같은 북스피어만의 독특한 마케팅방법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반드시 4의 배수인 이유와 판권 페이지에 대한 설명까지 책과 관련된 스프레이식 지식의 향연를 자랑한다. 출판이나 독자들을 위한 제언뿐만 아니라 과거 편집자로 일하는 재미난 일화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그렇다.

모 잡지사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첫 직장이었고, 나는 경력이 전무한 편집자였다. 모든 일에 미숙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필자들의 원고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엄연히 마감 시한이 정해져 있건만 열에 두셋은 당연하다는 듯 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대개 유명한 필자들이라 나로서는 감히 독촉 전화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부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상당히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체면을 좀 지켜드리자는 차원에서 이분의 이름은 생략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는데, 글쎄 이러시는 거다. "홍민 씨. 홍민 씨는 왜 나한테 독촉 전화를 안 해? 나는 독촉 전화를 자꾸 받아야 글이 써지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으니까 한 글자도 안 써지잖아. 앞으로는 나를 좀 못살게 굴어줘. 제발.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해도 무시하고 전화해야 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홍민씨가 북스피어 독자 잔혹사라고 부르는 독자 교정이벤트는 사실 독자들에게는 환장하게 참가하고 싶었던 재미난 기회였다. 2005년 당시 <아발론 연대기>교정작업에 '운이 좋게' 참가했던 도갤러 <후훗...>씨의 참가 소감을 읽어 보자. 물론 10년전에 작성된 글이다.

'아발론 연대기' 교정작업 다녀왔습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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