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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는 대신 받는 대통령

사진 속 광경은 정말 기괴하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도 아닌데 삼성서울병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배꼽사과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 사과를 당연하다는 듯 받는 박 대통령도 신기하다. 짐작컨대 이 장면의 연출자는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삼성서울병원에 전가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과하는 삼성서울병원장과 사과받는 박근혜 대통령, 질책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질책받는 삼성서울병원장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말이다.

  • 이태경
  • 입력 2015.06.19 12:40
  • 수정 2016.06.19 14:12

나는 지금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장이 17일 오후 청주시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머리를 조아리며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사진이다. 연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사진 속 광경은 정말 기괴하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도 아닌데 삼성서울병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배꼽사과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 사과를 당연하다는 듯 받는 박 대통령도 신기하다.

짐작컨대 이 장면의 연출자는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삼성서울병원에 전가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과하는 삼성서울병원장과 사과받는 박근혜 대통령, 질책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질책받는 삼성서울병원장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방역과 보건의 최종, 최대의 권한과 책임이 있는 정부가 아무리 나쁘게 봐도 정부보다 잘못이 크다고 할 수는 없는 민간병원을 희생양 삼으려는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의 통절한 책임인정과 사과표명조차 없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메르스 사태가 백미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과에 놀라울 정도로 인색하다. 책임과 사과는 항상 박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사과에 야박한 것일까? 보통 진솔한 사과는 염치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고 부끄러워해야 비로소 반성과 솔직한 사과가 가능하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성찰도, 진정한 사과도 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어떤 무능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의 부재 보다 위험하고 절망적이진 않다는 사실이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나아지거나 좋아질 수 없다. 메르스 사태가 증명하듯 박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현저한 어려움을 겪는 박 대통령이 지금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건 난망이다.

그런 박 대통령 치하에서 세월호 보다 메르스 보다 더 무섭고 엄중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운을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첩첩산중에 사면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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