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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러 가는 이탈리아 북부 식탐 여행지 4곳

  • 박수진
  • 입력 2015.06.19 10:12
  • 수정 2015.06.19 10:24

눈부신 이탈리아의 햇살은 대지를 살찌우는 신의 선물이다. 북부 볼차노부터 남쪽 시칠리아섬까지 잘 익은 농산물이 넘쳐난다. 이탈리아인들의 삶과 죽음에는 음식이 있다.

프로슈토(햄의 일종)로 시작한 수다는 티라미수(디저트)로 끝난다. 정치논쟁에도 파스타가 끼어드는 나라다. 1990년대 말 이탈리아 연합정권을 이끈 총리 마시모 달레마는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좌파들을 향해 ‘토르텔리니나 만드는 관대한 활동가들’이라면서 비난했다. 토르텔리니는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대표적인 파스타다. 새로운 여행 콘셉트로 미식투어가 뜬다. 이탈리아는 전국이 미식투어의 맞춤여행지다. 올해는 ‘2015 밀라노 엑스포’가 열려 관람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다. 밀라노를 시작으로 한 이탈리아 북부 미식여행 참고서를 준비했다.

밀라노 - 롬바르디아 주

"절대 슈니첼이 기원이 아니"라는 밀라노식 커틀릿과 갈비찜

밀라노 피오리 키아리 거리

지난 1일(현지시각) 밀라노의 첫 끼니를 파스타와 피자로 한껏 채워보겠다는 부푼 꿈은 도심의 한 식당 ‘리스토란테-피체리아 사바티니’(Ristorante-Pizzeria SABATINI)에서 무너졌다. 식당을 안내한 교민의 “밀라노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란 소리가 화근이었다. 음식도 도플갱어(분신·복제)가 있단 말인가! 이곳에서 넓적하고 양이 많아 서민들에게 인기인 서울의 ‘금왕돈까스’를 만났다. 그러나 순간의 실망감은 이내 눈 녹듯 사라졌다. 얇게 저민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빵가루 등에 묻혀 버터로 구운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는 밀라노 전통음식이다. 바삭한 식감이 고기 특유의 맛을 깨운다. 일본 돈가스도 이 밀라노식 커틀릿이 출발점이다. 밥값 계산보다 음식의 기원을 더 따지는 이탈리아인들은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에서 온 음식이라는 일부 주장에 1148년 때의 문서를 들먹거리면서 논쟁에 열을 올린다.

오소부코

식당에서 만난 또다른 도플갱어는 ‘오소부코’. 우리의 갈비찜과 유사한 모양이다. 송아지 뒷다리에 백포도주 등 각종 소스를 뿌려 끓인 찜 요리로, 뼈와 골수를 제거하지 않고 조리해 진한 맛이 특징이다. 1946년에 문 연 사바티니는 문 연 지 ‘고작 69년’이다. 이탈리아에는 수백년이 된 식당이 많아 이 정도는 노포 축에 끼지도 못한다.

토속음식에 취해도 이탈리아는 역시 ‘피자’다. 엑스포 행사장과 연결된 로 피에라 역에서 동쪽으로 한 정거장인 로 역에는 4인이 먹기에 충분한 마르게리타가 4유로(한화 5000원)인 피자집 ‘피체리아 산 코노’(PIZZERIA SAN CONO)가 있다. 그저 작은 소읍의 지나치게 평범한 피자집이지만 무려 50여가지 피자가 제 자랑을 늘어놓는 식당이다. 도심의 피자 가격이 최소 10유로 전후인 점을 고려한다면 주머니 가벼운 여행객이 눈독 들이기에 충분한 피자집이다.

‘2015 밀라노 엑스포’ 우루과이관의 스테이크

개막한 지 한 달여가 지난 ‘2015 밀라노 엑스포’는 세계 145개 나라가 참여한 맛의 축제장이다. 각국은 식당까지 운영해 미식 여행객에게는 먹고 마시기 좋은 놀이터이기도 하다. 자연생태계의 지표가 되고 있는 벌을 형상화해 구조물을 지은 영국관,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의 메시지를 전하고 수백장의 접시를 영상화한 스페인관 등 볼거리가 넘친다. 3주마다 메뉴를 교체하는 프랑스관이나 숯불에 구운 두툼한 스테이크가 고기 향을 피우는 우루과이관은 찾는 이가 많은 엑스포 인기 레스토랑이다. 한국관은 개막 초 전시관이 부실하다는 평을 받아들여 개선해 현재는 외국인 관람객들이 줄 서는 곳으로 변모했다. 씨제이푸드빌이 운영하는 한식당은 개막 초와 다름없이 호황이다. 잡채, 만두튀김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피에몬테 주

'피아트'와 '누텔라', '라바짜'의 고향

피에몬테의 농가 풍경

피에몬테는 미국의 땅콩버터에 대항해 만든, 치명적인 단맛의 초콜릿 크림인 ‘누텔라’의 고향이다. 자동차 피아트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커피업체 라바차의 본사도 토리노에 있다. 지난 5일, 라바차의 연구센터를 찾았다. 올해로 창업 120주년을 맞은 라바차는 미국이 주도하는 ‘스페셜티 커피’(고급 원두커피) 문화에 꿈쩍하지 않고 예전 방식대로 블렌딩한 원두를 판매한다. 2007년에야 캡슐커피를 생산할 정도로 ‘느린 커피’ 문화를 지향하는 라바차는 센터에 1960~70년대 커피추출기계 여러 대를 전시해 고객을 기다린다. 연구센터 매니저인 프란체스코 비아리초는 “미국 수출용만 ‘싱글 오리진’(한 종류 원두만 포장)을 판다”며 “전통이 깊은 유럽의 커피문화는 미국과 다르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날 밤 잠을 청한 곳은 구릉지역에 걸린 구름이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농가 ‘베비오네 아그리투리스모’(Bevione Agriturismo)였다. 피에몬테 파릴리아노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로 치자면 전통의 멋이 깃든 한옥 숙박업소쯤 된다. 소박한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토리노에서 조명기구 판매업을 하던 다비데 베비오네(43)는 15년 전 아내 안토넬라(47)와 귀농해 포도 농사와 숙박업을 겸하고 있다.

베비오네의 이탈리아 가정식

“옛날에는 치약으로 썼어요.” 안토넬라가 알쏭달쏭한 말을 던지면서 튀긴 파프리카, 가지 등 각종 튀김요리가 가지런히 놓인 접시를 들고 나타난다.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다비데가 손톱 크기의 작은 튀김을 가리키며 “살비아!”라고 외친다. 세이지라고도 하는 허브 향 가득한 풀이다. 한국에서도 쇠비름 같은 풀로 튀김요리를 하지만 살비아 튀김은 낯설다. 이어 도톰한 고기완자에 치즈마요네즈를 듬뿍 뿌린 요리가 나온다. 딱히 이름이 없다. “할머니가 옛날부터 해줬던 것”이라는 말이 답이다. 라비올리인 듯 아닌 듯, 토르텔리니인 듯 아닌 듯 딱히 정의 내리기 어려워 보이는 파스타가 메인 요리다. 이 역시 “어머니가 쭉 만들어준 파스타”다. 먹거리에 이름을 붙이고 규정하려는 도시인의 습성이 겸연쩍어지는 순간이다.

볼로냐 - 에밀리아로마냐 주

볼로냐에서는 '볼로녜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지난 8일 볼로냐의 낮 12시는 분주했다. 식재료 상점이자 식당인 ‘탐부리니’(Tamburini)에는 손님이 많다. 토르텔리니는 파스타 탈리아텔레, 라자냐와 함께 볼로냐의 자랑거리다. 여관의 아름다운 여주인을 훔쳐보다 그의 배꼽에 반해 만든 파스타라는 토르텔리니. 얇게 빚은 만두 모양의 면 안에 고기나 채소 등을 으깨 넣고 삶은 파스타다. 라구(미트소스)를 듬뿍 뿌려 나온 토르텔리니는 빵빵해진 배를 가려서라도 더 먹고 싶을 정도로 쫀득하다. 매니저 니콜로 담브로시오는 라구를 아는 체하느라 “볼로녜세 소스”라 떠드는 여행객에게 일침을 가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충 부르는 말일 뿐, 라구는 라구다.” 그가 프로슈토, 판체타(삼겹살로 만든 햄) 등의 햄을 지역 와인인 람브루스코와 파르미자노 치즈와 함께 서빙하자 큼큼한 발효향이 식탁을 가득 메운다. “아! 드디어 에밀리아로마냐에 왔구나”를 실감한다.

파르마 -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마산 치즈'가 생산되는 곳

파르미자노 치즈 생산업체. 직원이 치즈 품질검사 시연을 한다.

다음날 파르마로 넘어가 우리에게는 파마산, 파르메산 치즈로 알려진 파르미자노 치즈 생산업체를 방문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즈에만 ‘파르미자노 치즈’란 이름을 붙인다. 하루 오전과 오후 3~6시, 두번에 나눠 짠 우유를 섞어 만든다. 주인 프랑코 캄파니는 “과거 우유가 귀하던 시절 단백질과 지방을 오랫동안 섭취하는 방법으로 치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휘휘 쇠막대기를 돌릴 때마다 두부공장에서 풍기는 향이 난다. 팔뚝이 굵어 힘 좋아 보이는 안내자가 42㎏의 치즈 한 덩어리를 꺼내 망치를 이리저리 두들긴다. 그는 “소리로 라벨을 붙이는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10개월, 30개월, 40개월 등 숙성 시간이 다른 치즈 맛을 봤다. 기간이 길수록 맛이 강하고 아미노산 결정체 알갱이가 크다. 북부 여행에서 지겹도록 먹는 햄이 프로슈토다.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건조시켜 만든 햄으로 딱딱하게 구운 긴 막대 모양의 빵인 그리시니에 주로 돌돌 말아 먹는다. 씹고 마시고 떠드는 동안 이탈리아의 밤은 깊어간다. 먹보 이탈리아인의 피가 수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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