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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들어 먹는 한끼 식사에 ‘황금 레시피'는 없다

  • 박세회
  • 입력 2015.06.17 13:39
  • 수정 2015.06.17 13:46

쌀뜨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넣고 잔멸치와 건새우 한 줌을 넣어 끓인 뒤 껍질 벗긴 아욱을 넣고 한소끔 끓여 아욱의 숨을 죽인다. 아욱이 흐물흐물해지면 향신즙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하고 약한 불에 5분 정도 끓인 다음 불을 끄고 뚜껑을 덮은 채로 식을 때까지 하룻밤을 기다린다.

나의 아욱국은 왜 그녀에게 특별했을까?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그녀는 집에 남아 어젯밤 끓여둔 아욱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갓 지은 진밥에 당신이 끓여놓은 아욱국에 밥 한술을 떴습니다. 식힌 아욱국에 뜨거운 밥을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뚝딱 비웠지요. 손맛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어쩌면 특정 부류의 사람들 손에 감칠맛 세포 같은 게 내장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멀쩡히 조리 공정을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맛은 그렇게밖에 달리 설명이 안 됩니다.”

맛이란 아욱국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조합해 조리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특정 부류의 사람들 손에 내장된 감칠맛 세포에 의해 결정적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만든 아욱국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다. 아욱은 동네 마트에서 샀고 된장과 고추장은 청정원에서 출시한 그저 그런 공산품이었다. 쌀뜨물, 멸치, 새우, 마늘, 생강, 불 조절, 기다리는 시간….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지만 그녀에게 내가 만든 아욱국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녀가 씻고 있을 때 나는 아욱 줄기의 껍질을 정성을 다해 벗겨냈다. 그깟 아욱 껍질을 벗기든 안 벗기든 별다른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운 아욱국을 먹이고 싶어 한 줄기 한 줄기 다듬었고 그 노력이 대단히 즐거웠다.

억센 줄기는 골라 버렸고 큰 줄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쌀을 오랫동안 씻어 농도 짙은 쌀뜨물을 받아놓았고, 간을 맞추기 위해 몇 번이고 맛을 보았다. 아욱의 숨이 죽기를 기다리고 불을 줄이고 불을 끄기까지의 시간은 정확히 5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어떤 감이었던 것이다. 그 감은 문장으로, 말로, 동영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설령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 해도 독자는 이해할 수 없는 방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끓인 아욱국. 당신에게도 특별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된장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이 자명하지 않은가.

"시크릿 레시피를 노출한 것 아니냐"는 우려

얼마 전 운영하는 식당의 블로그에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려 섞인 의견을 전달해왔다. 요약하자면 너만의 노하우와 시크릿 레시피를 너무 쉽게 노출해버린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 우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명했다.

“이제 시크릿 레시피 따위 없는 세상이지 않으냐.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든다 해도 그 맛은 만드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내 레시피로 누군가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든다면 그 소스는 그 사람만의 데미글라스 소스다.”

레시피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레시피를 알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을 비롯해 수천 가지 조리법이 담긴 애플리케이션과 조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해 보여주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부터 동파육을 만드는 기나긴 과정이 동영상으로 기록돼 있고, 미역·다시마를 채취하고 건조하는 방법,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여러 가지 식재료를 손질하는 방법까지 책으로, 음성 서비스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장인의 레시피 공개는 감춰진 어떤 비밀 혹은 ‘정답’을 알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연 비밀의 문이 열렸다 하여 문 너머에 존재하는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정답을 알게 되었다 하여 그 정답을 알게 된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떤 문제든 정답과 오답이 있는 학습만 받아온 세대의 우매한 풍경으로 보인다. 레시피에는 정답이 담겨 있을지 모르지만 그 레시피를 참고해 만든 당신의 음식은 정답도 오답도 아닌 당신의 음식이다. 비밀의 문 안으로 들어서면 당신 안에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생겨난다. 이 무한한 ‘정답’의 확장 앞에 나만의 레시피를 공개하는 행위는 전혀 우려스럽거나 놀라울 것 없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의미를 넘어서지 않는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그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금 더 정확하고 세세한 레시피를, 매뉴얼을, ‘정답’을 갈구한다.

제이미 올리버의 화두가 자유로움이건만

얼마 전 서점에 들렀을 때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북이 눈에 띄어 펼쳐보고는 쓸쓸해지고 말았다.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북에 적힌 조리법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이 자유로운 영혼이 책에 갇혀버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특정한 재료를 준비하지 않고 눈에 띄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이용해 즉흥적으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요리사다.

그의 요리는 순간적인 붓 터치로 펼쳐놓은 추상화이거나, 고요 속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강한 인상을 남기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리는 즉흥연주와 같다. 그런 사람이 만든 요리가 책에 담겼다. 마치 즉흥연주된 음악을 악보에 담거나, 벽면에 흩뿌린 물감의 흔적을 액자에 담은 듯 어색하고 안타깝게 여겨졌다. 반드시 그 재료를 이용해야만 하는 음식도 아니고 반드시 조리 시간을 지켜야 하는 요리도 아닌데 올리버의 음식은 단어와 문장과 숫자 사이에서 정형화돼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기묘한 ‘그림’으로 책갈피 사이사이에 진열돼 있었다. 마치 쇼윈도 안에 놓여 있는 밀랍 요리처럼 말이다.

자유로운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라던 제이미 올리버의 음식도 책으로 정형화된다.

제이미 올리버가 요리계에 던진 화두는 자유로움과 비정형화였다. ‘레시피를 집어던지고 네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너만의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지 않던가. 그러한 그의 말이, 요리가, 한 권의 책으로 정형화돼버린 것이다. ‘맛과 영양이 가득한 제이미의 초간단요리’라는 솔깃한 부제를 달고 말이다. 비정형을 정형화해버리는 이 시대의 상술에 언제나 격한 감동으로 화답하며 ‘정답’을 탐닉하는 대중의 모습에 부르르 떨리는 오르가슴이 닭살과 함께 솟아오른다.

오차 없는 맛, 음식 아닌 공산품

너와 나의 밥을 지어 먹는 ‘삶’이라는 행위에 정확한 레시피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제시한 어느 요리의 레시피는 대략적인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일 뿐이다. 당신의 냉장고와 시렁 위에 얹어 있는 재료를 활용해 레시피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파가 없다면 양파로, 꿀이 없다면 설탕으로, 사과가 없다면 파인애플주스로…. 각 재료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만 있다면 타인의 레시피를 통해 당신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다보면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1천 인분의 소스를 끓여야 한다거나 피클 1t을 담가야 한다거나 코카콜라 1만ℓ를 만들어야 할 때 오차 없이 정확한 재료의 양과 조리 과정이 제시돼야만 한다. 이처럼 대량의 음식을 만들 때 1%의 오차로도 치명적인 맛의 변화를 불러온다. 이것은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산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정성으로 끓여낸 한 숟가락의 소스이거나 한 모금의 음료가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설비, 공정으로 만들어진 알싸한 설탕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나의 레시피, 누나 음식의 기억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처음으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누나들이 종종 이런저런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줬는데 그중 달걀을 풀어 넣고 볶은 달걀볶음밥이 맛있었다. 누나도 없고 엄마도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집에 남아 있을 때 할머니에게 볶음밥을 해주겠다며 풍로에 성냥불을 붙였다. 나는 누나가 만들어줬던 볶음밥을 떠올려봤다. 밥알 사이사이에 달걀이 함께 볶아져 있었고 이런저런 채소들이 들어가 있었다.

어쩐지 달달한 것도 같았고 짭짤한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고소한 맛은 분명 참기름인 듯싶었다. 그중 달달한 맛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우선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붓고 밥을 넣었다. 그 위에 달걀 몇 알을 깨트려 넣었고 파도 얼기설기 썰어 넣었다. 소금을 조금 넣고 설탕을 몇 숟가락 퍼넣었다. 그리고 뒤적였다. 프라이팬 바닥에는 달걀이 엉겨붙었고 밥은 진창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뒤적여도 밥이 볶아지는 것이 아니라 죽이 되어갔다. 바닥은 눌어붙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아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봤다. 밥알 사이에 노릇노릇 달걀이 섞여 있긴 했지만 누나가 만들어준 볶음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맛있는 냄새는 났다. 그래서 한 숟가락 떠먹고는 그대로 땅을 파고 볶음밥을 묻었다. 밥이 달아서 도저히 못 먹겠는 거다.

며칠 뒤엔 설탕을 넣지 않았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여전히 눌어붙었다. 참기름 대신 식용유를 몇 국자 들이부었다. 느끼해서 누렁이에게 먹였다. 다음번엔 식용유를 적당히 넣었고 밥을 먼저 볶고 나중에 달걀을 깨서 넣었다. 나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할머니는 몇 숟가락 뜨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또 누렁이에게 먹였다. 누렁이는 내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김치부침개, 호박전, 비빔밥, 칼국수, 수제비…. 새로운 음식에 도전할 때마다 실패했고 그 음식들은 누렁이가 먹거나 땅에 파묻혔다. 그 과정을 통해 달걀이 무엇인지, 밀가루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는 어떻게 다듬어야 하고, 양파는 어떻게 썰어야 하는지, 설탕은 무엇이고, 소금은 무엇인지, 미원은 어떤 맛을 내고, 각 조미료마다 적당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레시피는 누나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본 기억과 할머니의 조언뿐이었다.

음식을 만들었는데 실패하셨나? 개에게 먹이시라. 너무 짜서 개도 먹지 않는가? 땅을 파고 묻으시라. 그리고 소금이나 간장을 덜 넣고 다시 만들어보시라. 집에서 1천 인분의 김치찌개를 끓이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당신이 만들어 먹는 한 끼의 식사에 정답은 없다.

네 맛대로 살아라.

전호용 : 식당 주인·<알고나 먹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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