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의 3가지 커밍아웃 이야기

  • 김도훈
  • 입력 2015.06.17 12:04
  • 수정 2015.06.20 08:14
ⓒAustin Fisher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기리기 위해, 허핑턴포스트 US의 영 보이시스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는 십대와 20대 초반의 커밍 아웃 이야기를 싣는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나?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나? 별 것 아니었나? 커밍아웃을 하기는 했지만, 몇 사람에게만 했나? 커밍 아웃을 했다는 게 당신에겐 어떤 의미였나? youngvoices@huffingtonpost.com와 huffkorea@gmail.com으로 당신의 경험담을 보내 달라.

오스틴 피셔, 20세

나는 늘 커밍아웃이라는 게 과대평가된 개념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커밍아웃을 할 때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내 성적지향을 선언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지금도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꼬마였을 때 늘 스프라우스 형제들이나 잭 에프론 같은 매력적인 TV 스타들을 동경했다. 난 그게 그저 나도 크면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존경심이라고 생각했다. 내 큰형이 게이라고 커밍 아웃했을 때 큰 변화가 찾아왔다. 형은 그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뒤였고, 나는 형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자기가 진짜 누구인지 마침내 표현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치에 맞았다. 그리고 형이 게이라는 걸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졌는데 어두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해가 지날수록 더 강해졌고 모든 것이 다 들어맞았다.

오해는 말라. 매끄러운 과정은 아니었다. 형이 커밍 아웃했을 때 엄마는 많이 우셨고 엄마에겐 울 권리가 있었다. 엄마가 형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아니, 엄마는 형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응원해주셨다. 엄마는 두려우셨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게이에 대해 아시는 건 뉴스에서 본 게 전부였고, 형이 커밍 아웃 하기 얼마 전에 LGBT인 사람들이 클럽 밖에서 맞고, 공개적으로 괴롭힘 당하고, 사람들에게 고함을 듣고, 차별당하는 것이 보도되었다. 엄마가 아시는 건 그게 전부였다. 형은 엄마에게 세상이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한참이나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세상은 아직도 그렇다. 뉴스에 나오는 것만큼 나쁜 건 아니지만, 아직도 그런 일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나의 다른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나는 중학교 때 ‘수줍음 많은 괴짜(nerd)’내지 ‘패배자(loser)’라는 딱지가 붙었던 것이 싫어서 변하기로 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다. 16살 무렵에는 나는 마음 속 깊이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진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괴롭힘 당할까봐 두려워서였을까? 사회적 압박?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게이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피했고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사귀게 된 처음 몇 주 안에 나는 그녀에게 내가 양성애자라고 했다. 내가 게이라는 걸 말했을 때 뒤통수를 맞게 하는 건 싫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때는 그 행동이 바로 뒤통수치는 짓이라는 걸 난 몰랐다. 내 삶은 아주 혼란스러웠고 내가 태어난 환경의 사회적 기준이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것을 아주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1년 반 후(긴 시간이란 걸 나도 이해한다) 나는 마침내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적절한 시기가 온 것 같았다(물론 1년 반 전이 적절한 시기였겠지만, 나는 내 스스로 인정할 용기가 없었고 그녀에게 말할 용기는 더 없었다).

이제 내 첫 번째 커밍아웃 이야기를 하겠다.

1: 부모님께 내가 양성애자라고 말하는 것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개방적이고 정직한 방법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나의 방식이었다. 부모님의 반응은 이상적이지는 못했다. 아빠는 왜 내가 먼저 부모님께 먼저 상의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냐고 물으셨다. 나는 두 분이 이해하시길 바랐기 때문에 참을성있게 대했지만, 두 분은 사람이 두 성을 다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당최 이해하지 못하셨다. 가능한 일이다. 나는 썩 좋은 예는 아니었지만, 이 일로 두 분은 더욱 개방적이 되셔야만 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검색을 해보신 다음 두 분은 다시 아주 편안해지셨고, 집에서의 생활은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때 양성애자로 알려지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헐리우드에서 묘사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고, 다른 모든 아이들과 똑 같이 취급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가 양성애자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조롱도, 얕보는 시선도 받지 않았고, 사실은 워낙 시시한 일로 취급되어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했고, 그 아이들이 만나는 아이들 사이에는 퍼졌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당시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이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사회가 마침내 발전하고 있는 걸까?

고등학교의 마지막 2년 동안 나는 제일 친한 이성애자 친구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내겐 형제나 다름없었고, 나는 그가 여성을 100%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사귀면 정말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봄방학 때 같이 여행을 갔다가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 내가 당시 하고 있던 생각을 다 털어놓았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고맙게도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반응했다. 그는 이해했다. 내가 그에게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자신은 비슷한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그는 정말 잘 받아들였고, 지금까지도 우리 우정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2: 게이로 커밍아웃하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으로 넘어가자. 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커밍 아웃을 하고,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가 게이라고 커밍 아웃하고,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서 새 출발을 하고 있다.

내 전 여자 친구가 그 상황을 받아들인 방식은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는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곧 – 내가 대학으로 가자마자 – 그녀는 내게 등을 돌리고 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우리 관계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에게 아주 끔찍했고 시종일관 무례했다고 말이다. 그들은 다 거짓말을 믿었고 나는 정말 친한 친구들을 몇 잃었지만, 고맙게도 내 가장 친한 친구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늘 진실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응원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대학교 첫 학기는 새 친구들을 사귀고 새 도시에 익숙해지며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는데 전념했다. 나는 관계에 쏟을 시간은 없었고 그저 학교를 즐기고 싶었다. 나는 공부에 정신이 팔려서 부모님께 이제 내가 100% 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만 집에 갔다.

2학기 들어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알려 드려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엄마께 “어쩌구저쩌구…… 저 게이에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유일한 부정적인 반응은 그렇게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알렸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 불만이나 걱정도 없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부모님은 LGBT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가 적극적인 지지자로 변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이걸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 부모님이 당신이 동성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님들은 그저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고, 그건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며칠, 몇 주 만에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쉽지는 않지만 기다릴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기다리는 동안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에겐 이런 면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당신이 부모님을 많이 사랑한다는 걸 일깨워드리는 것뿐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남자 친구와 거의 3개월 동안 만난 뒤 헤어졌다. 서로 잘 맞지 않았고, 솔직히 우리 둘 다 누군가에게 전념할 상태가 아직은 아니었다.

그와의 관계를 끝내고, 나는 틴더(모바일 데이팅 앱)을 써보기 시작했다. 틴더는 평판이 좋지 않은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사귈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오직 섹스만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둘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앱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지만, 99%는 잘 되지 않았다. 테크놀로지컬 게이 바보다는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확률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 언급해두자면 이성애자 틴더는 게이 틴더와 아주 다르다. LGBT끼리만 모일 곳은 드물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좀 어렵다. 클럽에서 ‘저 남자’가 게이인가 그저 감정적인 취객인가 알아내려고 낭비한 시간이 참 많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실패로 끝난 데이트들을 이어가다 마침내 틴더로 돌아갔다. 2015년 1월에 거의 한 달 전에 들어온 미확인 메시지를 발견했다. 그 남자의 세부 정보를 확인해보자 관심이 생겼다. 나는 그가 아직 싱글이길 바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거의 바로 답이 와서 나는 가슴이 뛰었다.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 바로 다음 날 만나서 중국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속으로 이 남자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이후 행복하게 사귀고 있고, 문제는 아무것도 없…… 하나밖에 없다.

3: 그의 커밍아웃

그렇다. 그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숨기지 않았지만, 고향의 친구와 가족들에겐 숨기고 있었다. 나는 이미 두 번에 걸쳐 커밍아웃을 한 뒤였고, 그와 함께 세 번째로 커밍아웃을 하게 된 셈이었다.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확실하게 한 다음, 그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는 거라고 했다. 그는 불안해 했지만 분명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는 진작에 준비가 되어 있었고, 격려만 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는 집에 가기 전에 내게 아주 부정적인 반응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아주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여러 죄악들과 더불어 게이를 근본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교회의 일원이었다. 부모님이 그 교회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하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분들은 그러리라는 기대를 받았고 자라면서 알아오신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집에 다녀왔다. 그가 들어왔을 때 그는 미소짓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상처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기겁하셨다. 그들은 이게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거부하셨고 이것이 ‘지나갈 일’이며 그가 ‘치료’될 수 있다고 믿으셨다. 그들은 친척들이 알지 못하도록 그가 조용히 있기를 원하셨다. 그들은 이게 사라질 거라고 확신하셨다.

다행히 그가 다시 집을 찾아갔을 때 부모님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의 그런 면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으셨다. 그래서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아직도 종교적인 믿음과 자기 아이의 성 정체성 사이에서 힘들어 하고 계시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그 분들은 아이들을 무척이나 아끼시고 내 남자친구를 깊이 사랑하신다. 언젠가는 그 분들도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실 거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당분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분들이 익숙해지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내가 왜 이 모든 걸 설명하고 있느냐고? 오늘날의 폭발적인 소셜 미디어 때문에, 아무것도 은밀하지 않고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일종의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을 경멸하고, 우리 관계의 처음부터 내 삶에 이 새로운, 멋진 남자가 등장했고 이 남자는 늘 내 곁에 있으리라는 걸 포스팅하고 온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가족과 페이스북 친구 절반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타임라인에 당장은 아무것도 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기 전에는 내 타임라인에만 올리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에게는 말했지만, 나는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친구들을 정리했고 자신의 업데이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분리해서, 우리는 아무 제한없이 올리고 싶은 걸 다 올릴 수 있다.

내가 그와 했던 모든 것을 억누르는 것은 나는 정말 힘들었다. 물론 우리는 함께 외출하면 손을 잡고 우리 사랑을 수용했지만, 늘 주저해야 했다. 누군가 공공장소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 그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내 손을 놓았다. 우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을까 봐서였다. 그의 뿌리는 늘 그에게 그의 정체성이 죄악이며 신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알았던 사람들은 전부 같은 교회에 다녔고 같은 믿음을 공유했다. 그래서 그가 외부 세계에 들어섰을 때도 그 공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우리는 가족이든 학교든, 다음 장애물을 넘어설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한 번도 패배감이나 무력감을 느낀 적은 없다. 함께 있는 우리는 강하다. 그와 나는 서로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내가 보기엔 이것이 강한 관계이다. 그의 부모도 언젠가는 이해하리란 것을 나는 알고, 나는 그들을 얼른 만나보고 싶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우리가 어느 정도는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유지하는 동안 그가 우리 가족 모임에 계속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그의 부모님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아직 모르신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낡은 클리셰 ‘나아진다.’인 것 같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겠지만,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당신만이 정할 수 있다. 나는 나의 모든 이슈들을 긍정적인 태도와 낮은 기대를 가지고 대했고, 그래서 내 부정적인 마찰들은 그저 학습 곡선에 그쳤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게 기쁘다. 적당한 양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꾸준한 참을성(이런 상황에서 큰 참을성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을 가지면, 가장 부정적인 베이비 붐 세대라도 사랑과 수용으로 넘어올 수 있다. 걱정말고 그냥 기다려라.

허핑턴포스트US의 'The 3 Sides To My Coming Out Stor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트위터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게이 #동성애자 #동성애 청소년 #동성애 #LGBT #성소수자 #인권 #커밍아웃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