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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인가? 연예인인가?

박 대통령이 시장을 돌아다닐 시간에 했어야 할 일은 방역 및 보건 관련 정부기관들과 민간병원 사이에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게 하고, 일사불란한 공조체계를 구축하게 하며, 모든 자원을 동원해 확진자가 감염시켰을 수도 있는 감염의심자를 추적,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장에 나가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짓고 물건을 사는 방식을 통해 이반된 민심이 돌아올 리도 없지만,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일상생활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전염병 관리가 아닌 지지율 관리에 집중하는 대통령을 목격하는 심정은 무참하다.

  • 이태경
  • 입력 2015.06.17 07:54
  • 수정 2016.06.17 14:12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동대문 밀리오레를 방문한 이후 청와대에서 낸 서면 브리핑을 읽는 시간은 참혹했다. 북한 김씨 왕조를 연상케하는 수준의 서면 브리핑을 읽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메르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사망자와 확진자와 격리자가 속출하는 시기에 대통령이 시장통을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돼 여러 채널로 시시각각 수집되는 메르스 관련 정보들을 인지하고, 모인 정보들을 토대로 적확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그 대응책의 차질 없는 집행을 지시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난데없는 시장 방문이란 말인가?

동대문 상점가 방문 관련 대변인 서면브리핑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확산으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국내 소비 위축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대문 상점가 밀리오레를 예고 없이 방문하여 상인들을 위로하며 민생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오늘 방문한 밀리오레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고, "진짜 박근혜 대통령 맞아? 대박!!", "대통령 파이팅, 힘내세요" 등을 외치며 몰려드는 탓에 근접 경호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경호에 애를 먹기도...

시민들은 대통령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응원을 해 주었으며, 많은 시민들은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는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시민들은 연신 휴대전화 셔터를 눌러대며 촬영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보여주기 위해 안거나 목마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사진 촬영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상인들은 "더운데 우리들을 도와주시려고 일요일인데도 나와 주셨네요. 대통령 최고!!", "다른 바쁜 일도 많으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없어 어렵다", "너무 어려운데, 대통령님이 잘 해결해 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1층에서 지하 1층, 다시 1층으로 이동하며 20여 개의 상점을 들러 상인 및 쇼핑객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당초 예상된 방문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대통령은 동대문 상점가에서 원피스 2벌, 머리끈 2개, 머리핀 1개를 구입하고, 상인으로부터 네잎클로버 브로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쇼핑객 중 말레이시아, 몽골, 중국인들도 몰려들어 대통령에게 말을 걸며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특히 말레이시아 관광객(3명)은 사진 촬영 이후 "한국대통령과 사진 찍게 돼 놀랍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건물을 나오는 길에 도로 맞은편에 운집해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고, 일부는 환호와 함께 손을 흔들기도. 이를 본 대통령이 차에 바로 타지 않고, 길을 건너 기다리던 시민들과 반갑게 악수했습니다. 길을 건너면서 2층 카페에 있던 젊은 여성들이 손을 흔들자 잠깐 발길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박 대통령이 시장을 돌아다닐 시간에 했어야 할 일은 방역 및 보건 관련 정부기관들과 민간병원 사이에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유하게 하고, 일사불란한 공조체계를 구축하게 하며, 모든 자원을 동원해 확진자가 감염시켰을 수도 있는 감염의심자를 추적, 확인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의 확산을 억제하고 퇴치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대신 메르스 방역실패로 이반된 민심을 다스리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시장에 나가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짓고 물건을 사는 방식을 통해 이반된 민심이 돌아올 리도 없지만,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일상생활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전염병 관리가 아닌 지지율 관리에 집중하는 대통령을 목격하는 심정은 무참하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정치인에게 연기라는 덕목이 요구된 건 맞다. 정치인에게 집권과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기는 필요하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의 속성 중 일부에 불과한 연기를 정치의 본령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늘 연기를 하고 지지율(인기)에, 오직 지지율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연예인의 멘털리티를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나라가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대통령이지, 인기에 연연하는 연예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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