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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동료'가 아니라 '동료'다

내가 경험한 연예계나 그것과 매우 다른 지금의 법조계에서도 남녀가 함께 팀으로도 일하지만 비판을 듣고 울거나 사랑에 빠져 자기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비판을 수용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할 상황이면 당당히 의문을 제기하는 여성들을 본 것이 전부이다. 설령 힘든 하루의 일을 마치고 혼자 눈물을 흘릴지라도 사회 생활의 현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그것을 여성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세상 어느 논리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 이소은
  • 입력 2015.06.18 05:39
  • 수정 2016.06.18 14:12
ⓒgettyimagesbank

지난주 우리나라에서 세계과학기자대회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며칠 뒤, 뉴욕타임스에서 놀라운 기사를 보았다. 노벨상에 빛나는 팀 헌트라는 과학자가 여성에 대해 한 발언에 관한 것이었다. 여성이 실험실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로, 여성이 있으면 사랑에 빠지고 (결국 과학에 집중 못하다는 것), 여성은 비판을 하면 울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기사는 그의 발언에 대한 세계 여성 과학자들의 반응과, 논란이 된 후 헌트 박사가 사과한 내용, 그리고 결국 그가 강단에서 물러나게 된 내용을 보도했다.

팀 헌트 박사는 과학에 기여한 바가 큰 과학자이며, 많은 시간을 실험실에서 고민하면서 보냈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했다는 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논란이 일고 난 후, 그가BBC 라디오에서 한 사과 내용이 더 놀라웠다. 사과의 요지는 "기분이 나빴으면 미안하지만, 난 사실대로 말한 것" 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여성의 행동은 과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진리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에서 '명제'라는 것을 배울 때, 여러 가지 오류에 대해서도 배운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 기준에도 그 영향을 받는다. 팀 헌트 박사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만나고 교류한 여성 과학자들이 설령 그랬거나, 헌트 박사의 인식에 그렇게 남았다고 간주해도 경험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사실이 될 수는 없다.

내가 경험한 연예계나 그것과 매우 다른 지금의 법조계에서도 남녀가 함께 팀으로도 일하지만 비판을 듣고 울거나 사랑에 빠져 자기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비판을 수용할 수 있으면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할 상황이면 당당히 의문을 제기하는 여성들을 본 것이 전부이다. 설령 힘든 하루의 일을 마치고 혼자 눈물을 흘릴지라도 사회 생활의 현장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사랑에 빠지는 것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그것을 여성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세상 어느 논리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현장에 있지 않고 언론의 보도만으로 정확하게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알기 힘들다. 앞뒤를 보지 않고서는 완전하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떤 맥락에서 봐도, 헌트 박사의 말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거나 의견이라는 차원보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그가 강조하는 진리 추구의 걸림돌이 되는 편견이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고, 정확한 정황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이 사건과 관련된 우리 나라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그가 우리 나라 주입식 교육을 비판한 내용과 메르스 사태에 관한 코멘트에 관한 보도는 있었지만, 당일 헌트 박사의 발언을 문제삼은 우리나라 언론 기사를 보지 못했다 (나의 검색 능력의 한계 일수도 있다. 있었다면 독자들이 알려주시길). 그 자리에서 헌트 박사의 발언을 듣고, 그 말에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하거나 지적한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정보를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이 또한 슬프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열린 행사이니만큼, 그 자리에서 따끔한 지적이 나왔었으면, 그리고 우리 나라 언론에서 먼저 그의 발언을 문제 삼고 보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몇 년 전, 지인이 여성들과 일하는 고충에 대해 한 말이 떠오른다. 그분의 말의 요지는, 여자들은 잘못을 했을 때 나무라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술 한잔 하면서 풀 수도 없고, 이래저래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 당시 나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말 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성이면 막 대할 수 있어서 편하고, 여성이면 조심스러워서 불편하다는 것은 옳지 않는 생각이다. 사회는 남자 여자를 떠나서 상호존중과 프로페셔널리즘을 서로 지키면 되는 것이다. 헌트 박사도 그렇고, 내 지인도 어찌보면 비슷한 이유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남자로서는 여성 선후배 혹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데 익숙지 않거나 안타깝게도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한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이유이지 않을까? 여성의 사회 진출은 미래의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헌트박사와 같은 구태의연한 사고와 발언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능력 있고 리더쉽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더 많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나라 언론과 각 분야 종사자들이 이 이슈에 대한 대화의 장을 더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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