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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알려준 스마트폰 중독 접근법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재난상황에서 이재민들이 가장 필사적으로 찾은 것은 다른 어떠한 긴급구호 키트보다 통신망에의 연결이었다고 말한다. 일회적으로 공급되는 식수와 먹을 것보다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피난처를 스스로 찾으려는 본능과 재난 속에 나홀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연결에 대한 본능이 드러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이제 글로벌 재난 구호에서 최우선 작업은 파괴된 통신망의 복구를 통한 사회적 연결망의 회복이다.

  • 구본권
  • 입력 2015.06.17 15:28
  • 수정 2016.06.17 14:12
ⓒ연합뉴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4월 '2014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2013년에 비해 인터넷 중독 위험군이 0.1%포인트 줄어든 6.9%로 낮아졌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2.4%포인트가 늘어 14.2%로 높아졌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금단현상 또는 내성이나 일상생활에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다. 컴퓨터 중독위험이 줄어든 인구보다 24배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중독위험에 새로이 노출된 것이다.

각계의 대책도 분주해지고 있다. 최근 국회, 정부, 대학 연구소 등이 각각 스마트폰 중독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어 참가했다. 토론회에서는 주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유난히 심각하니, 정부·가정·학교 등에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제언이 많았다. 가능한 한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이고, 자녀들의 구입 시기를 늦추라는 권유도 뒤따랐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병리적 현상이 심각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자를 중독군-비중독군, 청소년-성인 집단으로 구분해 기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거나 중독 현상에 대한 치유방법을 제시하는 게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2~3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청소년과 젊은층이 많았지만, 요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행인과 부딪히는 사람은 중년이나 어르신들도 많다. 콘텐츠가 게임과 카톡이냐, 드라마냐의 차이 정도다.

스마트폰 과잉 의존으로 인한 병리적 현상을 중독 치료와 예방이라는 틀로는 접근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 메르스 사태는 일깨워줬다. 재난 상황이나 예방이 어려운 전염병 창궐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정보에 의존하고 목말라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궁금한 정보들이 신속하게 제공되지 않고, 더욱이 정부당국의 장악력과 신뢰도가 추락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실낱같은 정보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신뢰와 장악력을 잃은 정부당국의 태도가 정보 불신 상황의 배경인 셈인데 부정확한 정보와 루머를 처벌하겠다고 나서자 오히려 정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진 이유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이 정부 당국의 메르스 병원정보 공개에 앞서, 지난 4일 공개한 메르스 병원 정보

정부는 뒤늦게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 18일 만인 6월7일 환자가 거친 병원 24곳을 공개했지만, <프레시안><뉴스타파>에서는 이미 사나흘 전부터 공개한 내용이었다. 이들 병원정보는 카카오톡과 여러 종류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전파되고 있었지만, 사람에 따라 정보의 도달 범위는 차이가 컸다. 카톡과 카페, 네이버 밴드를 늘 열어놓은 젊은층은 병원 명단 발표가 특별할 없었지만, 스마트폰이나 에스엔에스가 없거나 쓸 줄 모르는 노인층에겐 처음 접한 중요 정보였다.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재난상황에서 이재민들이 가장 필사적으로 찾은 것은 다른 어떠한 긴급구호 키트보다 통신망에의 연결이었다고 말한다. 일회적으로 공급되는 식수와 먹을 것보다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피난처를 스스로 찾으려는 본능과 재난 속에 나홀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연결에 대한 본능이 드러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이제 글로벌 재난 구호에서 최우선 작업은 파괴된 통신망의 복구를 통한 사회적 연결망의 회복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이어질 테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중요한 정보를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스마트폰과 에스엔에스를 의지하려 들고 이를 막기란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스마트폰 중독 대응법도 새로워져야 한다.

19세기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1부는 전염병에 대한 정보 접근 여부가 운명을 가르는 얘기로 시작한다. 당시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참판댁 일가는 경남 일대를 휩쓴 괴질 호열자(콜레라)의 대처법을 알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척 조준구는 호열자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음식물을 끓여 먹으면서 호시탐탐 노리다가 최씨 일가의 재산을 가로챈다.

스마트폰과 에스엔에스가 단순 편의 도구나 오락 기능이 아닌 생존과 직결되는 정보를 추구하는 개인의 본능에 연결된 도구라는 것을 알 때, 현명한 스마트폰 과잉의존 대응법도 가능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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