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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고' 좀 치워주길 부탁해

미디어는 외모, 배경, 실력을 사랑한다. 그것을 가진 (만들어진) 스타가 가져다 주는 시청률과 광고비를 사랑한다. 그것은 세계 어느 곳의 미디어나 다 그렇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는 앞의 두 가지에 특히 더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월한 유전자' 같은 낯간지러운 표현을 지겨워하지도 않고 꾸준히 쓰는 그들의 키워드들을 뽑아내면 확연히 두드러진다. 맹기용의 경우에는, 앞의 두 가지를 가졌지만 마지막 것을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 '맹장고'가 욕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 꿀곰
  • 입력 2015.06.15 14:21
  • 수정 2016.06.15 14:12

이해는 한다. 맹기용이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오는 이유를. '뜨는 동네의 좀 생긴 셰프'가 요리 프로그램의 사랑을 받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번지수가 틀렸다.

미디어는 외모, 배경, 실력을 사랑한다. 그것을 가진 (만들어진) 스타가 가져다 주는 시청률과 광고비를 사랑한다. 그것은 세계 어느 곳의 미디어나 다 그렇다. 그러나 한국의 미디어는 앞의 두 가지에 특히 더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월한 유전자' 같은 낯간지러운 표현을 지겨워하지도 않고 꾸준히 쓰는 그들의 키워드들을 뽑아내면 확연히 두드러진다. 골프선수 박인비는 첫번째 것을 갖추지 못해서 미디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랭킹 1위를 오르내리며 누적상금 100억을 훌쩍 넘긴 그녀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박인비를 '스타'라고 부르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 박인비는 한때 국내에서 스폰서를 구하기 힘들어 일본 기업의 협찬을 받아야 했다. 그녀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박인비의 외모가 김연아나 손연재와 같았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맹기용의 경우에는, 앞의 두 가지를 가졌지만 마지막 것을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 '맹장고'가 욕을 먹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현재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단연 <냉장고를 부탁해>와 <삼시세끼>라 할 것이다. '먹방'의 트렌드는 맛집에서 요리로 넘어와 요리를 소재로 한 예능의 인기는 이 두 프로그램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두 프로그램까지는 아니지만 성시경 신동엽의 <오늘 뭐 먹지>도 있다. 여기에 백종원까지 가세했다. 일본의 사례를 비추어보며 요리와 육아 프로그램의 인기는 장기불황에서 비롯된 것, 혹은 현실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대리만족을 반영하는 세태라든지 저마다의 해석은 분분하지만 지금 가장 'Hot'한 소재가 요리라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이중에서도 <냉장고를 부탁해>가 특별히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요리프로그램이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냉장고>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진짜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다. 덕분에 <냉장고>에서는 연예인의 대단찮은 요리실력이나 시덥잖은 레시피에 호들갑을 떨며 뻔한 감탄을 늘어놓는 진부한 리액션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한국 토크쇼 형식이라면 으레 메인이 되는 게스트들의 신변잡기 늘어놓기도 없다. 대신 냉장고 속 평범한 재료들이 고급 레스토랑 정식요리로 변하는 고수들의 마법 같은 실력이 있다. 그렇다고 그 고수들이 여유를 부리며 '참 쉽죠?' 했으면 흥미가 반감 됐을 텐데, 정해진 시간 내에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가져다 주는 감동 같은 것도 있다. 인간은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는다. 하물며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집중하는 모습은 오죽할까. 그렇다고 쟁쟁한 셰프들만 나와서 맛으로 승부를 겨룰 경우 자칫 오디션/경연 프로그램 같은 진지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진지함을 빼기 위한 예능의 양념으로 김풍, 홍석천, 박준우처럼 직업이 요리사가 아닌,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면서도 '집에서 냉장고를 털어 따라할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의도도 같이 살릴 수 있는 출연진을 함께 배치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그리하여 <냉장고>는 예능이나 요리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TV 앞에 앉혀놓는 데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완벽하다.

문제는 맹기용은 '셰프'의 포지션을 가져가기엔 한참이나 함량미달인데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는 <냉장고>에 출연하면서 김풍이나 박준우처럼 요리 비전문이란 점을 상기시키지 않고 '셰프'로서 등장했다. 진짜 한식전문 요리사인 이원일조차 몇 주 동안이나 '인턴 셰프'라는 자막을 숱하게 달고 신입 아닌 신입으로서의 텃세(?)를 겪었다. 진행자 김성주와 정형돈은 맹기용이 '20대 셰프'라고 추켜세워준다. 거기엔 나이에 비해 성취가 빨라 대단하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기대하게 된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20대에 셰프가 된거지?' 그러나, 그가 내놓은 요리는 "동원F&B의 시가총액 1312억을 날려보냈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킨 '맹모닝'이었고,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 그가 다른 채널에서 출연했던 온갖 괴레시피가 올라와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그의 개인 SNS계정마저 털렸다. (물론 프로그램 차원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지 개인에 대한 공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그는 3주 연속 화요일마다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맹기용의 요리법을 검증하다 : ize)

물론 '셰프'는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처럼 까다로운 자격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셰프'라고 했을 때 <냉장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있는 기준은 '주방장(廚房長)'이지 '식당 주인'이 아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실력이 있는 '주방장'이기 때문이지 돈 많아서 가게 차린 '식당 주인'이었다면 어림도 없다. 맹기용은 요리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도제 시스템을 거친 것도 아니다. 그냥 가게를 냈고 직접 요리를 한다. 그것을 '주방장' '셰프'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맹기용은 '주방장'으로서 최현석, 이연복, 정창욱, 샘킴, 미카엘 등 쟁쟁한 기존 출연진에 끼어 있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맹기용은 프로야구 경기에 끼어있는 고교 야구선수, 챔피언스리그에 뛰고 있는 조기축구 회원, F1 레이싱에 난입한 김기사 같은 느낌이다. 논란까지 갈 것도 없다. 먹는 것을 평가하는 데에 대단한 전문가가 필요한가? 시청자는 그들의 요리를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누가 진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잘 쳐줘야 '김풍 정도의 포지션'으로 보이는(심지어는 김풍보다도 못한 것 같다) 맹기용이 왜 셰프들의 틈새에 억지로 끼워 넣어져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맹기용을 검색해서 마주하는 정보는 요리에 대한 이력이 아니라 배경에 대한 이력이다. '엄빠가 카이스트 교수' '동생이 대전에서 수능 1등하고 서울대' 같은 난데없는 집안 학력자랑이다. (심지어 본인도 아니다) 모르겠는가? 우리는 이제 이런 것을 보는 데에 신물이 났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금수저를 물고 있는지, 얼마나 잘생겼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라디오스타>나 <나 혼자 산다>에 나온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문제는 <냉장고>는 요리 프로그램이란 점이다.

논란이 되자 제작진은 그를 위해 특별히 한참의 변명의 시간 또한 마련했다. 지난 6월 8일 방송 회차의 마지막 '맹기용을 위한 변명' 부분을 보고 또 많은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표출했다. 단순히 '처음이라 그랬다'면서 김성주는 "뭐 이연복 셰프도 마찬가지시고요" 라는 식으로 걸고 넘어진다. 그러나 단순히 첫 방송 출연이어서 떨었던 것과 그냥 못하는 것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SNS에 글을 남겼던 최현석 셰프와의 어색한 분위기까지 방송을 탔다. 기존의 출연진을 깎아내려 가면서까지 맹기용을 지키려고 하는 저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 날 대결에서 김풍이 이기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는 승부 결과가 맹기용이 이기도록 이미 설정되어있었다는 '승부조작'설까지 나오고 있다. (SNS에 '냉부 조작'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라)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리얼리티 컨셉의 프로그램이 조작을 의심받는 순간 그 생명은 끝이다.(냉장고 맹기용 일병 구하기가 조작설에 휘말린 이유 : tistory)

이쯤되니 시청자들 사이에서 맹기용이 '삼성전자 스마트오븐'의 모델이기 때문에 억지 출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방송국 또한 JTBC이고, 삼성전자는 '셰프콜렉션' 브랜드로 협찬을 하고 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날 오븐을 쓰는 요리를 했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이며, 사실관계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최현석, 정창욱, 미카엘 또한 삼성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시청자들의 반발을 방치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맹기용을 고집하는 이유를 딱히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는 '노력과 실력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따른다고 믿기 떄문이다. 오승환이 돌직구를 던지는데 그의 부모님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강정호의 형제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는 낙하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력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거기엔 학벌, 빽 같은 -우리가 현실의 한국사회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아온- 본질 이외의 요소가 작용하지 않는다. (학벌과 패거리로 선수선발을 했다는 의혹을 받은 2014년 월드컵 대표팀 홍명보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상기해보라)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리를 하겠다고 만든 프로그램이라면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집안 좋은 미남이 아니라. 광고주는 원할지 몰라도 시청자는 아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외면하다간 광고주가 좋아하는 시청자도 등을 돌릴 것이다. 시청자 잃고 냉장고 고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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