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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 28주기 추모제 후기 | 추모와 기념 사이에서

배은심 여사가 이번 추모사에서 언급한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는 전두환 그 일당을 비유한 것이다. 사실 나는 배은심 여사가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 발언을 했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너무 과한 발언이 아니겠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언론들은 이번 추모제에 대한 기사에서 배은심 여사의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 발언을 '한열이를 죽인 자들'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배은심 여사의 이번 추모사 발언은 절대 과한 비유가 아니다.

  • 홍태림
  • 입력 2015.06.15 11:46
  • 수정 2016.06.15 14:12

▲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8주기 추모제 광경 ⓒ 홍태림

올해도 어김없이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피격당한 날인 6월 9일을 맞이하여 연세대학교에서 이한열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작년 이날에는 백양로 재창조 공사로 인해 추모제를 한열동산에서 열지 못하고 백양로 삼거리에서 진행했다. 지금도 여전히 연세대는 대규모 백양로 공사로 인해 흙먼지가 날리는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올해는 이한열, 노수석 열사의 추모비가 있었던 한열동산에서 추모제가 열릴 수 있었다. 올해 이한열 열사 28주기 추모제는 1988년부터 한열동산을 지킨 김봉준 작가의 이한열 추모비가 보존 작업을 거쳐서 연세대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이경복 작가의 이한열 기념비가 그 자리를 대신함을 공표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이한열 추모비는 왜 기념비로 바뀌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 올해 이경복 작가가 제작한 이한열 기념비 모습 ⓒ 홍태림

첫 번째는 27년 동안 갖은 풍화를 겪었던 이한열 추모비의 내구성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들어볼 수 있다. 김봉준 작가가 이번 추모제에 참석한 후에 페이스북에 남긴 포스팅을 살펴보면 1988년 당시 가난한 시절에 쇠도 청동도 못 구해 인조대리석으로 추모비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포스팅에 따르면 김봉준 작가가 제작한 추모비는 쇠나 청동이 아닌 인조대리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실외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연세대 백양로 재창조 공사 과정에 발생한 한열동산 훼손 사건이다. 연세대는 백양로 재창조 공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한열동산을 이한열기념사업회 등에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고 파헤쳤다. 다행히도 이한열 열사 추모비는 철거 전에 이한열기념사업회가 학교 측에 강하게 항의한 덕분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1996년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외치다 숨진 노수석 열사의 추모비는 예고 없이 철거돼 학내 현장 사무소 앞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노수석 열사 추모비 건립 당시 추모사업회 회원들이 비석 아래 묻었던 타임캡슐이 굴착기 삽날에 깨진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연세대학교 측은 뒤늦은 사과와 함께 예정대로 한열동산을 원상복구 하고 이 과정에서 기념사업회 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한열동산 훼손 사건은 추모비를 새로 세운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건의 심각성에 비추어 봤을 때 추모비 재건립을 위한 방아쇠 중에 하나가 되었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

세 번째는 언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이한열기념사업회의 입장이다.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한열동산에 세울 기념비가 이한열이라는 개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헌신과 희생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한열 열사가 품은 상징가치를 관성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가치로 재구성하여 우리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적 가치로 확장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 김봉준 작가가 1988년에 제작한 이한열 추모비 ⓒ 이한열기념사업회

전술된 세 가지 정황이 이한열 추모비가 왜 기념비로 새로 새워졌는가에 대한 대략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유에서 그간 이한열기념사업회가 기존의 이한열 추모비를 새롭게 세우는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심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이경복 작가가 제작한 이한열 기념비는 충남 보령에서 가져온 52t짜리 검은색 오석을 원석으로 삼아 높이 약 1.4m, 길이 약 4.5m로 제작되었다. 기념비 전면에는 '198769757922'라는 숫자와 그 의미를 설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숫자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6월 9일, 사망일인 7월 5일, 국민장이 치러진 7월 9일, 당시 그의 나이 22살을 뜻한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경복 작가가 이번에 제작한 이한열 기념비는 김봉준 작가가 제작한 이한열 추모비와 외관상으로도 굉장히 상반된 모습이다. 이한열 추모비의 전체적인 외관과 질감은 건조하고 고요한 느낌이 강하지만, 비석에 새겨진 도상이 분출하는 기운은 매우 역동적이다. 이한열 추모비의 이러한 역설적인 역동성은 마치 장승처럼 세로로 길게 뻗은 형태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한열 기념비는 이한열 추모비에 비해서 장중하면서도 매끈한 느낌이 강하다. 또한, 이번 이한열 기념비는 추모비와 다르게 도상이 아닌 숫자를 통한 의미 전달에 더 무게추를 실었으며 좌대도 없다. 그리고 이한열 기념비는 이한열 추모비처럼 세로로 높지 않고 가로로 넓고 길게 뻗어있다. 이한열 기념비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보면 이한열 기념비는 1988년에 제작된 이한열 추모비에 비해서 현대조각의 특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1980년대 당시의 역사성과 시대정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김봉준 작가의 추모비가 새로 제작된 기념비보다 좋다. 왜냐하면, 이번에 새로 제작된 기념비는 장중하고 매끈해진 탓에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과 시대정신이 서둘러 봉합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한열 기념비가 장중함과 매끈함 덕분에 한열동산을 보다 확고하게 점유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향유적 장소로 재규정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한열 추모비, 기념비가 한열동산에 함께 있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만약 재정적 여유가 있었다면 이한열 추모비를 야외에서 보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새로 제작된 이한열 기념비와 같이 놔두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이한열 추모비의 비판적 가치가 현재와 미래를 가로지르는 향유적 가치와 호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열 추모비가 야외에서 보존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으므로 보존처리 후에 연세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차선일 것이다.

이번에 새로 세워진 기념비는 이한열이라는 개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헌신과 희생들을 기억하자는 의미와 자칫 박제화되기 쉬운 과거의 역사를 현재와 미래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세워진 기념비는 1987년 이후의 민주화가 낳은 현상들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보다는 그러한 성찰을 서둘러 봉합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이한열 열사라는 상징가치가 비판과 향유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은 이번 추모제 때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신 배은심 여사의 추모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추모비가 그립습니다. (...)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들이 연희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기념비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저는 한이 많습니다. (...) 우리 아기를 망월동에 가져다 묻어 놓고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념비랍니다."

▲ 이한열 기념비를 어루만지는 배은심 어머니 ⓒ 홍태림

배은심 여사가 이번 추모사에서 언급한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는 전두환 그 일당을 비유한 것이다. 사실 나는 배은심 여사가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 발언을 했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너무 과한 발언이 아니겠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언론들은 이번 추모제에 대한 기사에서 배은심 여사의 '한열이를 죽인 연희동 살인마' 발언을 '한열이를 죽인 자들'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배은심 여사의 이번 추모사 발언은 절대 과한 비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두환은 이한열 열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꿈꿨던 수많은 국민을 죽인 살인마인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죄로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 원 처분을 받았지만 1997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고 추징금도 전 재산 29만 원 농담 따먹기나 하며 아직 완납하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2015년 현재 전두환은 참회록이 아닌 회고록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1987년 체제의 성과는 대통령 직선제로 수렴되었다. 그러나 이한열 열사와 우리가 꿈꿨던 진정한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와 등가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일까.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방아쇠가 되어 손에 넣은 민주주의는 완성된 가치가 아니라 앞으로 끊임없이 닥쳐올 모순과 위기 속에서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할 진행형 가치다. 이 진행형 가치가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전두환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으로 고통 받은 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죗값을 하루빨리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두환은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것뿐만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그러니 배은심 여사가 이번 추모제에서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들이 연희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기념비입니다.'라고 발언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한열 열사가 산화한 지 28년이 지났지만, 그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대하여 죗값을 치러야 할 인간이 아직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과거가 정당했다고 끊임없이 우격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한열 열사라는 상징가치에 내포된 비판적 가치와 향유적 가치는 여전히 동일한 강도로 동시에 다뤄질 필요가 있다. 김봉준 작가가 제작한 이한열 추모비에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과 시대정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한열 추모비를 통해서 이한열 열사라는 상징가치가 품고 있는 비판적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사수하고 더불어 현재 오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더욱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김봉준 작가의 이한열 추모비가 이경복 작가가 제작한 이한열 기념비와 한열동산에서 나란히 서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즘 대학 내에서 민주, 노동열사와 관련된 추모비가 때때로 훼손되거나 방치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한열 기념비만이라도 한열동산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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