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메르스 유행 진정되면 병원감염 수술대 올려야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병원은 '혹'(질병)을 떼러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병원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혹'(메르스)을 하나 더 붙여주는 곳이 됐다. 1번 환자를 제외한 모든 메르스 환자들이 현재까진 병원에서 '혹'을 얻었다. 1차(평택성모병원)ㆍ2차 유행(삼성서울병원)의 발원지도 병원이었다. 아직까지 메르스의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알고 보니 병원 밖(지역사회) 세상이 훨씬 안전한 장소였다. 메르스 사태로 병원들이 '민낯'을 드러냈다. 의사 등 의료인의 실력과 병원 시설은 세계 수준일지 몰라도 안전·위생은 부끄러운 상태였다.

  • 박태균
  • 입력 2015.06.15 07:05
  • 수정 2016.06.15 14:12
ⓒ연합뉴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을 지켜보면서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였다"는 혹부리영감 설화가 떠올랐다.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병원은 '혹'(질병)을 떼러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병원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혹'(메르스)을 하나 더 붙여주는 곳이 됐다.

1번 환자를 제외한 모든 메르스 환자들이 현재까진 병원에서 '혹'을 얻었다. 1차(평택성모병원)ㆍ2차 유행(삼성서울병원)의 발원지도 병원이었다.

아직까지 메르스의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알고 보니 병원 밖(지역사회) 세상이 훨씬 안전한 장소였다.

메르스 사태로 병원들이 '민낯'을 드러냈다. 의사 등 의료인의 실력과 병원 시설은 세계 수준일지 몰라도 안전ㆍ위생은 부끄러운 상태였다.

병원은 메르스 등 각종 병원체에 노출되기 쉬운 곳이다. 의사의 손ㆍ치료 도구ㆍ병실 시트 등 병원 환경 대부분이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어서다. '뉴하트' 등 의료 드라마에서 집도의가 팔을 씻은 뒤 팔을 수직으로 올린 채 수술실로 들어가는 광경은 역설적이지만 수술실에 각종 병원체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응급실ㆍ입원실ㆍ진료실ㆍ수술실 등 병원 곳곳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세균ㆍ바이러스 등 병균들이 우글거린다.

우송대 간호학과 오향순 교수가 국내 200병상 이상 병원 75곳에서 일하는 감염관리간호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2013년)는 충격적이다. 75개 병원 간호사 모두가 "우리 병원에서 MRSA가 검출된 적 있다"고 응답했다. MRSA는 메티실린이란 항생제로 죽일 수 없는 황색 포도상구균을 가리키며, 전 세계적으로 병원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균중 하나다. 심지어 '슈퍼 박테리아'로 통하는 CRE는 44곳(58.7%), VRSA는 8곳(10.7%)의 병원에서 검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보건의료산업학회지' 2014년8권).

병원은 어떤 공중시설보다 감염관리를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공간이다. 암ㆍ당뇨병ㆍ만성 폐질환ㆍ만성 콩팥병 등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거나 심신이 취약한 사람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이다. 외래 치료를 받거나 입원 중인 사람들은 바이러스ㆍ세균 등에 더 쉽게 감염되며 이로 인한 결과도 더 위중하다. 사우디 환자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메르스 환자라도 지병이 있는 사람의 치사율은 44.3%로 건강한 사람(10.7%)의 4배였다.

병원에서 전염병을 얻는 것(병원 감염)은 국내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미국 질병예방관리센터(CDC)는 연간 대략 170만 건의 병원감염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이로 인해 매년 9만9000명이 숨진다고 추산했다.

의료 선진국인 미국이 이 정도라면 국내 병원을 방문했다가 MRSA 등에 감염돼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보다 분명히 많을 거다. 국내 병원 환경은 병문안 문화, 가족 간호, 전염성이 높은 감기ㆍ독감 등 호흡기 환자가 다른 환자들과 함께 수용된 다(多)인실 구조, 닥터 쇼핑(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 전쟁터 같은 응급실, 북새통 광경 등으로 인해 미국보다 감염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위(胃) 수술을 받은 뒤 수술 부위에 감염이 생길 위험이 미국에서 같은 수술을 받을 때보다 6.2배나 높다는 것(서울대 의대 김의종 교수팀)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의 전국병원감시체계(KONIS)에 따르면 환자들은 지난해 한 해 동안 94개 병원 중환자실에서만 498명이 폐렴, 841명이 요로(尿路)감염, 1021명이 균혈증(菌血症)을 얻었다. 이는 인공호흡기ㆍ카데터 등의 장비에 오염된 병원균이 환자에게 옮겨진 결과다. 중환자실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삶을 이어가는 환자에게 병원 감염이 마치 바람 역할을 것으로 비유할 수도 있는데 그 치료비용을 환자가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내 병원들이 병원감염을 막는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 없는 일이라고 봐서다. 건강보험공단에선 병원감염 억제 비용은 거의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 병원감염이 다루는 대상이 환자의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균ㆍ바이러스 등인 것도 병원들이 감염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이유다.

병원 감염을 최소화하는 데 있어 음압 격리실ㆍ소독보다 중요한 것은 병원ㆍ의료진의 지속적인 경계심과 손 씻기 등 기본이다.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고도 아내와 1박2일 필리핀에 다녀오는 마인드라면 애꿎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혹'을 얻는 일은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이다. 병원에서 의료인의 손 씻기 실천 비율이 30∼50%에 불과하다(기본간호학회회 2011년5월).

병원감염으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환자가 해당 병원을 상대로 송사(訟事)를 벌이면 병원들은 "병원감염은 병원의 잘못이 아니다. 의료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병원감염으로 인한) 치료비는 환자와 건강보험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대한내과학회지 2009년79권). 메르스 확산의 '2차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이 11일 국회에서 '(병원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병원들이 오류ㆍ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병원감염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병원은 감염관리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병원감염 관리 수준을 의료기관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정부의 대책도 효과가 의심스럽다.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잘 모르고 당해 왔지만 이미 국내 병원감염 실태는 관심ㆍ우려를 넘어 경계ㆍ심각 단계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병원감염은 반드시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페이스북 팔로우하기 |

트위터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메르스 #병원감염 #슈퍼 박테리아 #mrsa #사회 #박태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