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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돌려막기'? 메르스에 밀려난 취약계층

  • 허완
  • 입력 2015.06.13 11:55

국립중앙의료원(국립의료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운영되면서 저소득 에이즈환자 및 취약계층 진료와 풍토병 예방접종 등 공공의료 기능이 속속 중단돼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3일 보건의료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에 따르면 국립의료원이 5일 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으로 지정된 후 9일까지 기존 입원환자를 모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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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를 진료할 격리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국립병원을 비우는 바람에 국립의료원 입원 환자 다수가 경제적 여건이나 환자상태 등을 이유로 민간병원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최근 보건복지부로 공개질의서를 보내 국립의료원에서 내보낸 노숙인과 결핵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광진구보건소 차량을 타고 온 한 환자가 보건소 관계자와 함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선별 진료 접수처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단체는 "국립의료원이 수행한 공공의료 기능 중에는 노숙인 진료도 포함돼 있다"면서 "국립의료원이 환자에게 스스로 전원 갈 병원을 알아보라며 퇴원을 종용하거나 적극적 전원 대책을 펴지 않아 노숙인들이 다른 병원 전원을 거부당하거나 아예 거리로 내쫓기는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립의료원의 에이즈 입원환자 13명 중 10명은 국립의료원이 연계한 전국 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3명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입원 의료기관을 끝까지 정하지 못해 자택 등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HIV 감염인에 대한 거부감이 의료계에서조차 심해 HIV 감염인임을 털어 놓고 진료를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이즈환자대책위)의 권미란 활동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선 받아주는 병원으로 옮긴 환자들도 병원비 부담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취약계층 진료뿐만 아니라 황열병 등 해외감염병 접종과 국제공인예방접종 증명서 발급 업무도 국립의료원에서 중단됐다.

국립의료원은 해외감염병 접종예약 문의에 수도권의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북부 주민들이 공인예방접종을 받으려면 국립의료원 대신 인천공항검역소나 분당서울대병원을 이용해야 하므로 불편이 커졌다.

권미란 활동가는 "국내 에이즈 환자와 노숙인은 공공의료에 의존하고 있는데, 메르스 같은 감염병 사태가 터지면 공공의료의 도움을 받기조차 힘들어진다"면서 열악한 공공의료 현실을 지적했다.

평소에도 부족한 공공의료 인프라가 신종감염병 차단에 동원돼, 민간이 수행하기 어렵거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에 투입할 자원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권용진 국립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은 "지금 상황에서 메르스 진료와 에이즈 감염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너무도 분명하지 않으냐"며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공공의료 실태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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