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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전쟁의 서막, 그 이름은 시.어.머.니

'육아'라는 변수를 맞이하자, 이런 인자한 시어머니와도 예전처럼 마냥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불편함이 시작됐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됐다. 본인이 겪었던 육아에 대한 경험만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시어머니와 내가 생각하는 육아가 맞다고 고집하는 며느리가 만나자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송선영
  • 입력 2015.06.16 09:57
  • 수정 2016.06.16 14:12
ⓒgettyimagesbank

[얼렁뚱땅 육아일기 #6] 육아전쟁의 서막, 그 이름은 시.어.머.니

결혼한 뒤 처음으로 맞았던 추석 명절이 생각난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며 낄낄 웃고 있는데, 나는 도저히 그 자리에서 웃을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왜 지금 여기 이러고 있나. 나는 왜 이 사람들 사이에 껴 있어야 하나'란 생각에서부터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란 생각까지. 생각 끝에, 결혼한 두 딸 때문에 두 분이서만 외로이 명절을 지내게 될 친정 부모님이 떠올랐다. 차마 울 수 없어 서러운 마음 안고 눈물만 훔칫 삼켰던 서글픈 날이었다.

이처럼, 사랑해서 만났고 사랑해서 결혼한 두 사람이었지만 결혼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서로 수 십 년 간 다르게 살아온 가족과 가족이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교과서 이론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게 낯설었고, 모든 게 다 생소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멘붕으로 다가왔던 존재는 시어머니였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우리 시어머니의 인생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한 평생을 희생하시며 사신 그 인생이 참 귀하다고 생각한다. 손주들에게도 한 없이 인자하실 뿐 아니라 매 명절 때마다 아들과 딸이 아닌 며느리들에게만 손수 용돈을 챙겨주실 정도로 인정이 넘치시는 분이다.

하지만 '육아'라는 변수를 맞이하자, 이런 인자한 시어머니와도 예전처럼 마냥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불편함이 시작됐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됐다. 본인이 겪었던 육아에 대한 경험만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시어머니와 내가 생각하는 육아가 맞다고 고집하는 며느리가 만나자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만 해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고분고분한 며느리였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난 뒤 시어머니가 쏟아 내는 말 하나 하나가 간섭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걱정되는 마음에 툭 내 던질 수 있는 말이었겠지만, 극도로 예민했던 시기에 들리는 말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느껴졌다.

"천기저귀가 그렇게 좋다더라" "수술로 아기 낳으면 안 좋다더라" "분유 보다는 모유가 그렇게 좋다더라" 등 시작해서 아기 세제, 아기 옷, 아기 물품 등 시어머니 본인이 경험한 것들이 최선인 것처럼 털어놓는 말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땠냐고?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100일도 안 된 갓난아기를 데리고 처음 시댁에 갔던 날, 나는 "젖줘라"는 말에 식겁했다. 난 지금도 정말이지 저 말이 너무 싫다. 애가 졸려서 울어도 "젖줘라" 애가 기저귀가 불편해 울어도 "젖줘라" 등 그 짧은 1박2일 사이에 "젖줘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을 게다.

또, 자연 진통 끝에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와 언니(자매)의 사연을 두고 "어째 둘 다 그러냐"며 '애 낳는 것은 유전'이라고 굳이 말씀하신 의도는 무엇일까. 더불어 발달이 느린 우리 아이가 돌잔치 때까지 걷지 못한 것을 두고 돌잔치 날 우리 엄마 앞에서 "우리 집안에는 이런 애가(이렇게 느린 애가) 없는데 ..."라고 굳이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내가 가장 시어머니에게 섭섭했던 점은 시댁에서 내 이름이 없어졌다는 거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 뒤 시댁에서 '하윤이'라고 불렸다. 내 이름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부를 때마다 "하윤 애미야"도 아닌 내 아들의 이름 "하윤아"라 부르셨다. 나도 하윤이, 우리 아들도 하윤이다. 그러면서 내 남편, 본인의 아들에게는 정확하게 본인 아들의 이름을 부르셨다. (세 가족 모두 하윤아라 부르셨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거다)

남편에게 몇 번을 분노하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호랑말꾸 같은 남편은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3년 동안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지난 설날 "어머님 제가 하윤이는 아니잖아요. 하윤 애미까지는 괜찮은데 하윤이라고 안 부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제 이름이 있잖아요."라고 대놓고 말을 해 버렸다. 수 년 동안 묵혔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지만 결국 이날 시어머니는 대판 삐지셨다. 손이 크신 시어머니는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해 명절 친정에 갈 때마다 차 트렁크가 가득하게 이것저것 싸주셨지만 이 날만큼은 싸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 흔한 나물조차도 싸주지 않으셨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져서 '하윤애미'로 불린다.)

지나온 모든 일들을 곱씹어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한 번 훅하고 웃어 넘길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으로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 하나하나는 시댁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됐다. 이 때 나는 굳게 다짐했다. 우리 아들은 결혼을 시키지 말자고. 남의 귀한 딸을 굳이 데려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어 '며느리'라는 역할을 씌우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굳이 이 예민한 주제인 시어머니를 이 글에 끄집어 낸 것은 한 번 쯤 시어머니들 또한 며느리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무엇보다 며느리 자체를 살뜰히 바라봐주셨으면 한다. 딸과 며느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딸 같은 며느리는 세상에 없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인 며느리는 딸보다 더 어려운 존재이니 더 어렵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또 모르겠다. 시어머니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다 보면, 지금처럼 티격태격 싸우다 보면, 나의 뾰족했던 마음들이 둥글둥글해져 서로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원하는지 척척 알아맞히는 날이 올지도. 그러니 그 때까지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친정 엄마, 아빠에게는 버럭 버럭 잘 대들면서도 시댁에 가서는 그저 네~네~만 하고 시키지 않아도 눈치 살펴가며 죽어라 설거지는 하는 1인 이지만, 결론은 시어머니... 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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