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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디로

게다가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인성교육이 강조되더니, 마침내 올해 7월부터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 이제 인성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입시와 취업에 반영하기 위한 평가지표 이야기도 나오고, 인성교육 인증제는 벌써 진행중이다. 과연 이 법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창의력과 협업능력, 도전정신이 요구되는 21세기에 예와 효를 앞세우는 것부터가 수상쩍기 그지없다. 더욱이 인성을 항목별로 평가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정광필
  • 입력 2015.06.10 13:45
  • 수정 2016.06.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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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중학교에 입학해 이우학교의 궂은 역사를 써온 친구들이 있다. 학내 최초의 폭력, 음주, 흡연, 집단갈취 등등. 선생님들이 흘린 눈물의 가장 큰 부분은 그들과 관련 있다. 그들과 함께 씨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이들의 내면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교육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그들도 자율성과 연대의식을 갖춘 멋진 청년으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20살이 되는 2010년 12월29일 한밤중 그들과 몇몇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학교 근처 낙생저수지에서.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영하 15도를 넘는 한파로 저수지의 얼음은 두껍게 얼어 있었다. 그들은 얼음을 깨고 "멍청한 청춘을 위하여!"라는 외침과 함께 물속에 뛰어드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렀다.

그런데 요즘 이런 야성(?)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취업할 곳이 여의치 않고, 열악한 비정규직이 넘쳐나며, 부모의 그늘에서 빌붙어 살아가야 하는 20대. 이 시대의 가장 큰 희생양인 20대가 너무 조용하다. 시대 상황에 질문을 던지는 청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수는 고시와 취업준비라는 좁은 외길을 한눈팔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찬호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말하듯, 지금의 20대는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라!'는 자기계발 논리를 내면화한 탓에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함으로써 저 높은 고지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그러다 지치면 '힘들었지? 나도 힘들어.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보자!'는 힐링 담론에서 위안을 얻는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부재 시대'에 부권을 대체하는 엄마들의 촘촘한 일상 관리가 아이들의 야성을 시들게 했나?

게다가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으로 인성교육이 강조되더니, 마침내 올해 7월부터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 이제 인성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입시와 취업에 반영하기 위한 평가지표 이야기도 나오고, 인성교육 인증제는 벌써 진행중이다. 과연 이 법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창의력과 협업능력, 도전정신이 요구되는 21세기에 예와 효를 앞세우는 것부터가 수상쩍기 그지없다. 더욱이 인성을 항목별로 평가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랑'과 '훈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어른들의 억압과 규제에 대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반항하고 정당하게 문제제기하는 것까지 봉쇄하겠다는 뜻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의자놀이'를 하는 이 사회에서 모두가 사이좋게 앉을 의자를 만들어야 할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리고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아이들 내면에서 찌그러져 있지만 언제나 꿈틀대고 있는 야성을 끌어내 보자. 내면의 야성이 살아있어야 진정한 자율성과 이웃과의 협력과 나눔도 가능하다. 메르스로 많은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을 집에 붙들어 놓아야 무엇을 하겠는가? 적지 않은 아이들이 피시방에 죽치고 있느라 눈만 빠질 것 같다. 이럴 때 아이들이랑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을 찾아 떠나보자. 친구와 함께 큰 산에 도전하며 느끼게 되는 호연지기가 아이들의 가슴을 펴게 하지 않을까? 한없이 작아지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뭔가를 저지를 수 있게 숨구멍을 만들어 주자.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나서는 청소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이도저도 힘들면 학원 한 번 빠져도 좋다는 말 한마디라도 슬며시 건네 보자. 혹시 모를 일이다, 내 자녀가 나에 대한 원한으로 '잔혹 동시'나 소설을 쓰고 있을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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